盧· MB 충돌 시즌2 되어선 안 돼

입력
2022.03.25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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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권 교체 중 신구 권력 충돌은 2007년
노무현· 이명박 충돌로 정치 보복 악순환
당시와 흡사한 상황, 양측 자제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신임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간담회장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신임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간담회장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민주화 이후 정권교체는 이번까지 포함하면 네 차례다. 1997년 김대중,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시기에는 전임 정부가 사실상 무너진 상태여서 신구 권력이 갈등을 겪을 새도 없었다. 1997년 IMF 구제금융 후 당선된 김대중은 일찌감치 전면에 나서 외환 위기 수습을 주도했다. 탄핵과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된 상태에서 당선된 문재인은 인수위도 없이 선거 승리와 동시에 곧바로 임기를 시작해야 했다.

지금의 신구 권력 충돌과 비교할 만한 유일한 시기는 2007년 이명박 당선인이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정권을 인수받을 때다. 이 당선인은 대선 후 8일 만에 노 대통령과 회동하긴 했으나 정권 인수 인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참여정부 정책들을 비판하는 인수위를 향해 노 대통령은 “인수위는 호통치고 자기반성문 같은 것을 요구하는 곳이 아니다”며 불편한 감정을 쏟아냈다. 인수위가 참여정부 흔적을 지우려는 점령군처럼 군다는 얘기였다. 인수위 역시 구 권력의 새 정부 발목 잡기라는 불만으로 들끓었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 후 펴낸 회고록에서 이 당시 노 대통령이 한미 쇠고기 협상을 마무리 짓지 않고 자신에게 떠넘긴 데 대한 불만도 적어 놨다.

큰 충돌을 빚었던 것은 정부조직 개편이었다. 취임과 동시에 새 정부 조직을 출범시키려면 취임 전에 새 입법과 이를 위한 노 대통령의 서명이 필요했으나, 노 대통령은 통일부 폐지 등의 개편안이 참여정부의 철학과 가치를 허무는 것이라며 거부권 행사까지 시사했다. 취임 며칠 전에야 가까스로 여야 간 타협이 이뤄져 새 정부 조직이 출범했으나 인수위가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으려는 과정에서 구 권력과 충돌을 빚은 것은 지금 상황과 흡사하다. 새 정부 조직 대신 이번에 등장한 사안은 새 대통령 집무실이지만 인수위의 월권 논란이나 구 권력의 발목 잡기 논란 등은 마찬가지다.

공교롭지만 정치 세력도 비슷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뗄 수 없는 관계인 문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핵심 측근들은 MB계 인사들이다. ‘친노 대 친이’ 충돌이 ‘친문 대 친윤’으로 바뀌었으나 노무현 대 MB 충돌의 시즌2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회고록 ‘운명’에서 참여정부가 차기 정부를 위해 여러 일을 성심껏 챙겼으나 모두 허망한 일이었다고 적었다. 바로 광우병 사태 이후 전개된 노 전 대통령 망신 주기와 수사에 대한 원한 때문이었다.

노무현 대 MB 충돌은 책임 소재를 떠나 한국 정치사의 불행한 사태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물고 물리는 정치 보복의 시발점이었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대선에서 압도적 표차로 승리한 보수 진영이 오만했다면, 광우병 사태로 정권 퇴진까지 밀어붙인 진보진영에선 대선 불복 심리가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상대를 절멸시키고야 말겠다는 진영 논리의 정념에는 이 우울한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당시 정권교체 과정이 순탄했다면, 이명박과 노무현이 대립이 아니라 협치의 첫 단추를 잘 꿰었다면 정치사의 경로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청와대나 인수위 모두 그 증오의 정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07년과 달리 지금은 구 권력과 신 권력의 세력까지 팽팽하다. 당시처럼 정치보복에 당하지 않을 것이란 구 권력이나 그때처럼 발목 잡기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신 권력의 기세싸움은 한 치 양보도 없어 보인다. 2007년 정권 교체 과정은 반성적 교훈이 아니라 이상한 방식의 앙금으로 남아 다시 귀환하는 것 같다. 이 역사가 또다시 반복되는 것일까. 기우이기만 바랄 뿐이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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