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와 촛불 든 시민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민간인 보호하라"

입력
2022.03.25 13:00
수정
2022.03.25 15:47

3월 24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한 달
러시아대사관 앞서 앰네스티 주관 평화 기원 행사
약 90명 시민 "종전 기원, 민간인 보호"

24일 오후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주최한 우크라이나 평화기원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촛불과 손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24일 오후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주최한 우크라이나 평화기원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촛불과 손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아내와 길을 걷던 중 갑작스런 폭발이 있었어요.
눈앞에 있던 모든 것이 피범벅이 되었어요"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유치원에서
집속탄 공격을 받은 민간인 피해자 남성

"유방암 치료를 받으며 투병 중인 38세의 엘레나는 말합니다, '암에 걸렸기 때문에 치료를 받아야 해요. 하지만 내가 살아 있는 표적이라고 생각하니 움직이는 게 두려워요.'" 엄숙한 분위기 속 생생한 증언이 계속된다.

24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 앞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휠체어를 탄 사람도, 앳된 얼굴도,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어린이도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공기가 차가워졌지만 모인 이들의 수는 점점 늘었다. 한 손에는 촛불을, 다른 손에는 우크라이나 국화인 해바라기를 들고 섰다. 바람이 불어 촛불이 꺼지면 시민들은 서로의 불을 빌려 촛불을 다시 밝혔다. 해바라기에 묶인 노란 리본에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보호하라'는 뜻의 'Protect Civilians In Ukraine'이 써 있었다.

퇴근길에 걸음을 재촉하던 시민들도 멈춰 서서 촛불과 해바라기를 손에 들었다. 지나가던 러시아 대사관 직원들은 걸음을 재촉했다. "러시아는 폭탄을 쏘고, 사람들을 죽이고 있어요"라며 김재윤(10)군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저지르고 있는 일을 똑똑히 알고 있다고 말했다.


24일 중구 정동제일교회 앞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침공 한 달 공동행동' 행사장에 등장한 깃발. 소진영 인턴기자

24일 중구 정동제일교회 앞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침공 한 달 공동행동' 행사장에 등장한 깃발. 소진영 인턴기자

24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딱 한 달이 되던 날.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우크라이나 침공 한 달을 맞아 행사를 열었다. 해가 먼저 뜨는 한국, 일본, 뉴질랜드에서 시작해 미국, 스페인까지 총 15개 지부가 시간 차를 두고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공동 행동은 ①국제앰네스티가 확인한 러시아군의 공격과 인권침해 현황 공유 ②우크라이나 민간인 피해자 증언 낭독 ③탄원서 낭독으로 이뤄졌다. 90명 가까운 시민이 현장에 모여 뜻을 함께했다. 본 행사를 기획한 김은아 간사는 "러시아 대사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였다"며 "러시아에 전쟁을 그만둘 것과 민간인 피해 책임을 촉구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친구들과 함께 온 진영인(18)양은 "민간인 증언 낭독 시간이 가장 충격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앰네스티는 분쟁 현장에서 만난 우크라이나인들의 증언을 통해 참혹한 현장을 전했다. 우크라이나인을 대신해 낭독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김지나, 이은진 이사는 "우크라이나 민간인 중에는 대피소가 멀어서 이동이 불편해서 발이 묶인 사람들이 많다"며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안전한 대피와 인도주의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러시아가 금지한 단어를 쓴 시민들이 사흘 만에 140명 이상 구금"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주최로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기원 행사에 시민들이 참석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제공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주최로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기원 행사에 시민들이 참석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제공

윤지현 사무처장은 "2월 17일: 유치원 공격, 2월 24일: 유치원 집속탄 포격...3월 16일: 주택, 학교, 유치원, 의료시설 등 민간 기반시설 폭격"이라며 한 달 동안 러시아가 감행한 민간인 폭격과 인권 탄압 실태도 공유했다. 민간인을 향한 공격과,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350만 명 이상(3,557,245)의 난민이 겪고 있는 인권침해, 러시아 언론 탄압과 시민 구금 현실을 고발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러시아인도 눈에 띄었다. 울리아(26)씨는 "러시아가 벌이고 있는 전쟁이 부끄럽고 전쟁을 끝내길 촉구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또 러시아에 있는 가족들을 통해 언론 탄압의 심각한 상황을 들을 수 있다며 "독립 언론은 다 탄압을 당했고, 공영방송 하나만 남은 상황"이라고 증언했다.


"러시아 당국은 침공을 중단하고, 우크라이나 민간인 보호하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주최한 우크라이나 평화기원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 연합뉴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주최한 우크라이나 평화기원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 연합뉴스

한 시간 정도 진행된 공동 행동은 탄원서 낭독으로 마무리되었다. 신민정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장은 "러시아 당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을 즉각 중단하라", "민간인을 보호하라",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집속탄의 사용과 민간인 공격 가해자 책임을 규명하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낭독했다. 현장에 모인 시민들은 함께 "중단하라", "보호하라"는 목소리를 복창했다.

참석자 박진희(20)씨는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묻고 싶다"고 했고 문혜빈(21)씨는 "민간인이 죽는 걸 보면서 남 일 같지 않았다"며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장이 있어서 좋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함께 인권 공부를 해 오던 앰네스티 소모임 회원 7명이 함께 하기도 했다. 연제헌(50)씨는 "우크라이나 침공 한 달이다. 민간인 학살을 이제 멈춰라"고 촉구했다. 그는 또 "전쟁이 우리 삶에 실제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나"라며 "빨리 전쟁 끝나야 한다. 이런 목소리를 지속해서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우연히 참석했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는 대학생 문예원(24)씨는 "전쟁에 무관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이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에만 관심이 있었지 민간인 피해가 심각하다는 건 처음 알았다"며 "종전이 시급한 일이고 이를 남 일처럼 여기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내비쳤다.

소진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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