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한 우크라… 푸틴의 돌파구는 핵카드?

입력
2022.03.23 19:08
수정
2022.03.23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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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군, 도시 속속 탈환하며 전세 역전
미 국방부 "러 전투력 당초 90% 이하 수준"
백린탄 쏜 러, 핵 무기 사용 가능성 열어놔

22일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에서 한 군인이 경계를 서고 있다. 하르키우=EPA 연합뉴스

22일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에서 한 군인이 경계를 서고 있다. 하르키우=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군이 반격에 나섰다. 개전(開戰) 이후 한 달간 동ㆍ남ㆍ북쪽에서 밀려드는 적군을 막아내는 데 사력을 다했던 이들은, 이제 빼앗긴 도시를 속속 되찾으며 전세를 뒤집고 있다. 이에 반해 당초 속전속결로 우크라이나 땅을 빼앗으려던 러시아는 신승이라도 바라야 하는 처지가 됐다. 러시아군은 쉽게 물러나지 않으려는 듯, 더욱 잔혹하고 노골적인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수세에 몰린 러시아가 핵 위협 수위를 날로 높이면서 국제사회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을 종합하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는 전세 역전 분위기가 속속 감지되고 있다. 민간 위성업체 플래닛랩스가 공개한 위성사진을 보면, 러시아군은 21일 전후로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공항에서 모든 군용 헬기를 철수시켰다. 이 공항은 3일 러시아군이 헤르손을 점령하면서 넘어갔는데, 우크라이나군이 다시 확보했다는 관측이다.

공항 수성 의미는 작지 않다. 흑해 연안에 위치한 헤르손은 남부지역 전략적 요충지다. 특히 헤르손 공항은 남부 장악 작전의 핵심 기지로 꼽혀 왔다. 러시아군의 남부 점령 전략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프레데릭 케이건 미기업연구소(AEI) 프로젝트 책임자는 “적어도 당분간 러시아군이 남부 점령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헤르손뿐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군의 탈환 소식은 곳곳에서 들려온다. 남부 보즈네센스크는 이틀간의 전투 끝에 러시아군을 동부 전선으로 몰아냈다. 이 지역은 군사 요충지이자 국제적 물동항인 오데사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러시아군의 서진(西進)을 막아냈다는 얘기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헤르손 북부 초르노바이우카에서도 정부군이 러시아군을 격파했다고 전했다. 전날 수도 키이우 인근 마카리우 지역을 수복한 데 이은 승전보다. 동북부 하르키우 인근 소도시이자 동부 돈바스 지역으로 가는 길목인 이지움에서도 우크라이나군이 반격을 시작했다. 서방은 우크라이나가 전략을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했다고 본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추격해 점령지에서 몰아내는 상황이 최근 많아졌다”며 “공격을 더 강화하고 있는 징후”라고 설명했다.

일진일퇴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뒷심’을 발휘한 것은 러시아군 전력 약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러시아군은 휘청거리고 있다. 미 국방부는 러시아군 전투력이 애초의 90% 이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일부 병사들은 적절한 방한 장비도 갖추지 못해 동상에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군 역시 러시아군의 식량, 탄약, 연료 비축량이 사흘 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6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지역에서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민병대가 우크라이나군이 버리고 간 미국 대전차 미사일을 살펴보고 있다. 도네츠크=EPA 연합뉴스

16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지역에서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민병대가 우크라이나군이 버리고 간 미국 대전차 미사일을 살펴보고 있다. 도네츠크=EPA 연합뉴스

더 나아가지도, 물러날 수도 없는 러시아는 더 잔인해졌다. 전세를 뒤집기 위해 비인간적인 수단을 거침없이 꺼내 들며 ‘레드라인(위험선)’을 넘나들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올렉시 빌로시츠키 키이우 경찰 부국장을 인용, 러시아가 이날 도네츠크주(州)에서 국제법상 사용이 금지된 화학 살상무기 백린탄을 또다시 사용했다고 전했다. 가장 끔찍한 참상이 벌어지고 있는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는 설상가상으로 러시아군의 해상 포격마저 단행됐다. 시민들이 러시아군의 항복 요구를 거부하고 결사항전에 나서자, 육로와 영공에 이어 ‘앞바다’인 아조프해에서도 공격에 나선 셈이다. 민간인을 대피시키기 위해 마리우폴로 향하던 인도주의적 호송 버스 11대마저 빼앗으면서 도시에 발이 묶인 10만 명의 민간인들의 한 줄기 희망은 또다시 무너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이날 푸틴 대통령의 ‘입’으로 불리는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미 CNN방송 인터뷰에서 ‘어떤 조건에서 핵을 사용할 것이냐’는 질문에 “국가 존립에 위협이 있을 경우”라고 답했다. 러시아 당국이 핵무기 사용 조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지난달 24일 침공 이후 처음이다. 푸틴 대통령이 궁지에 몰릴 경우 ‘인류 최악의 무기’를 선택할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NYT는 군사 전문가들을 인용, “그간 러시아는 재래식 전쟁에서 핵 전쟁으로 전환해 전략적 우위를 점하는 훈련을 해왔다”며 “푸틴이 벼랑 끝 전술로 덜 파괴적인 (소형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평화 협상은 좀체 진전이 없는 가운데 전황은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CNN은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관계자를 인용, “대표적 러시아 맹방인 벨라루스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려는 조치를 밟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 역시 수일 내에 약 5,000여 명의 벨라루스 전투 병력이 우크라이나로 투입될 것으로 관측했다. 국제전으로 비화할 공산이 커졌다는 의미다.

허경주 기자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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