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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작?… 英 국방장관 노린 '우크라 총리 사칭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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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현지시간) 폴란드를 순방 중이던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에게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우크라이나 총리’. 그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대신해 영국의 모든 도움에 감사를 표한다”고 운을 뗐다. 격려와 화답으로 시작된 대화는 갑자기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총리’가 돌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와 우크라이나의 협상 상황, 영국의 안보 전략 등 민감한 질문을 꺼내 든 것. 의아하게 여긴 월러스 장관은 9분 만에 통화를 중단했다. 이후 자신의 트위터에 “우크라이나 총리라고 주장하는 사기꾼이 대화를 시도했고, 몇 가지 오해 소지가 있는 질문을 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무력 도발로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상황에서 주요국 안보 수장이 하마터면 정체를 속인 인물에게 핵심 정보를 공개할 뻔한 아찔한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 국방부는 신원 불명의 남성이 장관과 통화하게 된 경위를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BBC방송 등 영국 현지 매체들은 이번 ‘사기 행위’가 상당히 정교하게 짜였다고 입을 모은다.
발단은 영국 정부의 한 부처 앞으로 온 이메일이다. 자신을 ‘주 영국 우크라이나 대사관’ 소속 보좌관이라고 소개한 발신인은 데니스 슈미갈 우크라이나 총리와 월러스 장관과의 통화를 요청했다. 해당 부처가 다시 국방부와 통화 일정을 조율하면서 대화가 성사됐다. 만남은 마이크로소프트(MS) 화상회의 프로그램 ‘팀즈’를 통해 진행됐다. 사칭범이 우크라이나 국기 앞에 서 있었던 데다, 생김새와 목소리가 실제 슈미갈 총리와 거의 비슷한 탓에 처음에는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화가 이어질수록 의구심이 커졌다. ‘가짜 총리’는 영국이 흑해에 군함을 보낼 것인지, 우크라이나가 핵 무기를 보유해야 하는지, 나토 가입을 포기하고 중립국이 될 여지가 있는지 등 질문을 쏟아냈다. 실제 총리라면 묻지 않았을 우크라이나 관련 광범위하고 민감한 질문이 이어지자 월러스 장관은 연결을 끊었다. 영국 스카이뉴스는 “사칭범은 장관에게 ‘우리가 보낸 물질을 받았느냐’고 묻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영국 정부가 사건을 조사하고 있지만 아직 해당 남성이 누구인지, 배후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 정부의 소행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수세에 몰린 러시아가 적국 고위 각료를 겨냥해 민감한 정보를 빼돌리거나, 발언을 왜곡해 서방국 간 단결을 훼손하려는 의도로 접근했다는 의미다. 월러스 장관은 “아무리 러시아가 더러운 속임수를 쓰더라도 인권 유린과 우크라이나 불법 침공으로부터 주의를 돌릴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번 전화를 “(러시아의) 필사적인 시도”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칭범’은 이번 시도에선 큰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월러스 장관의 부적절한 발언을 유도하는 질문이 이어졌지만, 예민하거나 적절하지 못한 답변은 삼갔다는 게 영국 국방부 주장이다. 그러면서 이들의 수법을 폭로하고 대화가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건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프리티 파텔 영국 내무장관도 “이번 주 초 나도 이런 일이 있었다”며 “어려운 시기에 우리를 분열시키려는 한심한 시도다. 영국은 우크라이나와 함께한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사례는 언급하지 않았다. 월러스 장관의 글에 ‘진짜’ 우크라이나 총리도 답변을 달았다. 슈미갈 총리는 “러시아의 모든 공작에도 세상은 진실이 우크라이나 뒤에 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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