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3국 정상, 키이우 전격 방문… “나토 군사 개입해야” 거세지는 압박

입력
2022.03.16 19:36
수정
2022.03.16 22:0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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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체코·슬로베니아 총리, 젤렌스키와 회담
"우크라이나 혼자 두지 않을 것" 연대·지지 표명
폴란드 부총리 "우크라이나에 평화군 파견해야"
‘레드라인’ 효과 의문…"군사 개입해야" 목소리도

15일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폴란드, 체코, 슬로베니아 4개국 합동 기자회견이 끝나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오른쪽)이 야네스 얀사 슬로베니아 총리(가운데)와 악수를 하고 있다. 이날 회담에 참여한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폴란드 부총리 겸 여당 대표는 평화유지군의 우크라이나 파병을 촉구했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15일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폴란드, 체코, 슬로베니아 4개국 합동 기자회견이 끝나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오른쪽)이 야네스 얀사 슬로베니아 총리(가운데)와 악수를 하고 있다. 이날 회담에 참여한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폴란드 부총리 겸 여당 대표는 평화유지군의 우크라이나 파병을 촉구했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에서 포성을 멈추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가 무기 지원뿐 아니라 군사적 개입을 고려해야 한다는 국제적 압박이 커지고 있다. 최근 러시아군이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 접경 지역 나토ㆍ우크라이나군 훈련시설을 폭격한 데 이어 우크라이나 안팎에 대량살상무기와 생화학무기를 투입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는 탓이다. 러시아가 나토를 직접 위협하는 상황에서 더는 뒷짐지고 있을 수는 없게 됐다.

15일(현지시간)에는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와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 야네스 얀사 슬로베니아 총리가 빗발치는 포탄을 뚫고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났다. 지난달 24일 개전 이후 외국 정상이 키이우를 찾은 건 처음이다. 영국 BBC방송은 “군용기는 러시아가 도발로 간주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정상들은 열차를 타고 목숨 건 여행을 했다”며 “회담 중에도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고 전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우크라이나가 우리를 위해서도 싸우고 있다는 걸 안다. 잔인한 침략자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투쟁을 존경한다”며 지지와 연대를 표했다. 피알라 총리와 얀사 총리도 “우크라이나인들은 유럽의 기본 가치를 수호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를 절대 혼자 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 나라가 우크라이나에 특별히 동병상련을 느낄 수밖에 없는 동유럽 국가라고 하더라도, 유럽연합(EU) 회원국이자 나토 회원국이라는 점에서 이번 방문의 정치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이 자리에는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폴란드 부총리 겸 집권당 법과정의당 대표도 함께했다. 카친스키 부총리는 2008년 러시아가 조지아를 침공했을 당시 위험을 무릅쓰고 조지아를 찾았던 고 레흐 키친스키 전 폴란드 대통령의 쌍둥이 형제다. AP통신은 “폴란드의 실질적 지도자인 그가 키이우에 왔다는 건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짚었다. 카친스키 부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나토 혹은 더 큰 국제기구 차원에서 평화유지군을 우크라이나에 파견해야 한다”며 “평화 유지 등이 주요 임무지만 동시에 군대와 무기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파병이나 다름없는 군사력 개입을 나토에 요구한 것이다.

16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러시아군 폭격으로 폭발이 일어난 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키이우=AFP 연합뉴스

16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러시아군 폭격으로 폭발이 일어난 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키이우=AFP 연합뉴스

러시아가 대량살상무기와 생화학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이러한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 공격을 비롯해 러시아의 핵 위협도 여전하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13일 BBC방송 인터뷰에서 “만약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량살상무기를 쓴다면 전쟁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며 “이제 나토 회원국은 테이블에 모여 앉아 무엇을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역시 군사 개입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국가 경제적 파탄을 불사한 러시아의 호전성은 나토를 압박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휴전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던 각국 정상들조차 “푸틴은 전쟁을 중단할 생각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나토 영토 1인치도 건드리지 말라”는 ‘레드라인’ 선언은 오히려 러시아에 무력 도발 허용 범위를 설정해줄 뿐, 실질적 억지 효과가 없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체코 싱크탱크인 유럽안보정책평가센터 베로니카 비호바 부국장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매일 죽어가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나토가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만 주고 있다”며 “러시아가 대량살상무기로 도발할 때 나토의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러시아 측에도 분명히 알리고 성명을 통해 대외적으로도 공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토는 16일 국방장관 회의, 24일 정상 회의를 연다. 동유럽 나토 병력 증강 및 상시 배치, 방어 체계 강화를 위한 방위비 증액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나토와 미국이 확전 위험을 이유로 수차례 거부했던 우크라이나 상공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전투기 지원 문제가 다시 의제로 오를지도 관심사다. 국방장관 회의에 초청된 올렉시 레스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화상 연설에서 나토의 지원을 재차 요청할 계획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나토 가입 포기를 시사한 이상,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제시할 안보 방안도 논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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