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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회담에서 휴전 논의 거부하고 “침공 안 했다” 주장한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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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회담’이었지만 ‘휴전’은 협상 테이블에 오르지도 못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와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지역 독립 등 기존 요구사항을 돌림노래처럼 반복했다. 남동부 도시 마리우폴에서 민간인 대피를 위해 24시간 휴전을 하자는 우크라이나의 제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았다”는 억지 주장만 늘어놨다. 빠른 시일 안에 외교적 해법으로 총성을 멈추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보름째인 10일(현지시간) 터키 남부 안탈리아에서 마주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서로 입장 차만 확인하고 90분 만에 빈손으로 헤어졌다. 개전 이후 양국 간 첫 고위급 회담이라 기대를 모았으나, 예상대로 합의점 도출은 쉽지 않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현 상황에 대해 논의조차 못하게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쿨레바 장관은 “라브로프 장관은 마리우폴 지역 휴전 같은 우크라이나의 제안에 대해 협의하러 온 것 같지 않다”며 “의사 결정권자는 다른 곳에 있다”고 말했다.
라브로프 장관도 “휴전은 회담 의제가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가입 금지를 위한 헌법 개정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 영유권 인정 △분리주의 지역인 자칭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독립 인정 등을 우크라이나가 받아들여야만 공격을 멈출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쿨레바 장관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항복을 요구하고 있다”며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침략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라브로프 장관은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러시아는 다른 나라를 침공할 계획이 없으며 우크라이나를 공격하지 않았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까지 했다. 러시아는 ‘침략’ ‘침공’ ‘전쟁’이란 표현을 부정하며 이른바 ‘특별 군사작전’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의 산부인과ㆍ어린이 병원을 폭격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가짜뉴스”라고 반박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민병대가 병원을 점령했고,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이 문제를 경고했다”면서 “출산을 앞둔 임신부들은 이미 병원 밖으로 쫓겨났다”고 주장했다.
서방국가 기자들이 ‘병원에서 숨진 아이들이 찍힌 사진이 있다’고 지적하자, 라브로프 장관은 신경질적인 반응까지 보였다. 그는 “당신은 내 말을 듣지 않느냐”면서 “안보리에서 우리가 그 병원에 무슨 일이 있는지 설명했다는 사실에 대해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고 화를 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하고 새로운 나치 국가를 건설하려 한다거나 우크라이나 안에 미군의 생화학 부대가 비밀리에 주둔해 있다는 온갖 ‘음모론’을 또다시 늘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가디언은 “라브로프 장관은 협상가가 아니라 선동가로 활약했다”며 “이번 회담은 러시아의 피포위 심리(항상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믿는 강박 관념)와, 객관적 진실을 서방의 거짓말로 낙인 찍는 능력을 가장 잘 보여준 자리였다”고 촌평했다.
다만 양국 간 대화의 끈이 끊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라브로프 장관은 추가 회담에 관해 “어느 시점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상들이 직접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쿨레바 장관도 터키 공영방송 TRT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는 아직 나토 가입을 포기할 의사는 없지만, 서방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안전과 경제적 보장을 약속한다면 나토 가입에 대한 대안을 마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을 중재한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 미래 안보에 관해 더 발전시킬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며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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