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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ID 불가능한 거 다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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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보름을 넘겨 장기전 태세다. 지난달 24일 개전 후 ‘초전 박살’로 무너질 것이라는 러시아의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우크라는 결사항전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도 러시아에 전례 없는 제재폭탄을 퍼붓는 등 이미 글로벌전으로 비화 중이다. 이념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vs 권위주의 체제의 대결, 속살을 들여다보면 미·러 대리전 양상이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일찌감치 “미군의 우크라 파병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우크라에 첨단 무기를 공급하며 러시아군의 진군에 제동을 걸고 있다. 미국은 경험칙으로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꺼린다. 멀리는 베트남에서, 가까이는 아프간에서 쓰라린 학습효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는 러시아다. 미군의 파병은 곧 3차대전 발발, 공멸로 가는 길이다. 군사력만 놓고 보면 러시아의 승리는 시간문제다. 하지만 상처뿐인 영광이다. 옛 소련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헛된 야망에 러시아는 국가 부도 상황에 내몰렸고, 글로벌 왕따 신세를 자초했다. 초토화된 국민들의 삶에 제국의 부활이 무슨 소용일까.
일부에서 전쟁발발 원인으로 우크라가 ‘부다페스트 각서’를 과신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부다페스트 각서는 우크라가 소련 연방시절 보유한 핵탄두 1,800여 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 영국 러시아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은 문서다. 거꾸로 말하면 우크라가 핵탄두를 넘기지 않았다면 전쟁은 없었다는 이야기다. 핵무기를 가진 나라끼리의 무력충돌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에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더구나 오늘은 제20대 대통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날이다. 국가를 보위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권한을 위임받은 대통령의 외교안보 철학은 향후 5년 동안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한다.
국제사회는 수차례 핵실험에 이어 대륙간 및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까지 쏘아 올린 북한을 상대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 방식을 요구하며 비핵화를 압박해왔다. 하지만 러·우크라전을 지켜 본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실현 불가능한 CVID ‘희망고문’ 대신 실행 가능한 카드를 내놓아야 한다. 북핵 해법에 만병통치약은 없다. 더디게 보일지라도 소소한 교류를 통한 신뢰 회복만이 가장 빠른 걸음이다. 만약 지금도 북한이 CVID 카드에 응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순진하거나 바보거나 둘 중 하나다. 우선 북한의 시각으로 북핵을 바라보는 힘을 길러야 한다. 이 와중에 경계해야 할 것은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며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단세포적인 발상이다. 이른바 ‘공포의 균형’으로 안보를 확보하자는 말인데, 이는 효과 대비 비용 측면에서 경제적 자살행위에 가깝다. 오히려 한반도의 불안정성만을 고조시켜 코리아 디스카운트 지수만 높일 뿐이다.
실제 남북한이 서로의 턱밑에 핵을 겨누면, 이웃 일본과 대만은 구경만 하고 있을까. 나아가 동북아 전체가 연쇄 핵무장에 나서면 우리의 삶에 평화가 오고, 살림살이도 나아지는 것일까. 널리 인용되는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의 본뜻은 무한대의 군비확장이 아니라 방심하지 말라는 의미다.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 지향점이 공멸을 부르는 전쟁이 아니라면, 공존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CVID를 주술처럼 되뇐다고 북한의 비핵화가, 한반도에 봄이 절로 오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상대를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멸공, 주적 같은 낡은 프레임에 갇혀서는 한반도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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