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폭한 러시아, 홀로코스트 추모관·주택에도 맹폭… 2차 협상 불투명

입력
2022.03.02 08:11
수정
2022.03.02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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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타워 폭격으로 5명 사망… 송출 중단
"홀로코스트 조작 러시아, 추모관 공격"
하르키프 아파트 폭격, 민간인 피해 급증
美 "러군, 사기 저하…작전 정비 가능성"

1일 러시아군 폭격으로 폭발한 우크라이나 키예프 TV타워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1일 러시아군 폭격으로 폭발한 우크라이나 키예프 TV타워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는 침공 엿새째인 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와 제2도시 하르코프를 맹폭했다. 키예프에선 국가 기반시설인 TV타워와 홀로코스트 추모시설이 공격당했고, 하르코프에선 주정부 청사와 아파트가 무너졌다. 민간인 사상자도 속출했다. 러시아군이 예상보다 느린 진격에 무차별 공세로 돌아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가 폭격을 멈추기는커녕 공격 강도를 더 높이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협상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키에프에선 TV타워가 파괴돼 국영방송 송출이 중단됐다. 사망자 5명, 부상자 5명도 보고됐다. 시당국은 보안 및 방송과 관련된 정부기관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당분간 채널이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렸다. 다만 일부 채널에선 곧 백업 방송이 활성화될 예정이다.

TV타워 공습으로 근처에 있는 홀로코스트 추모관도 피해를 당했다. 이곳은 1941~1943년 바이빈 야르 지역에서 나치에게 학살된 희생자를 기리는 장소다. 당시 키예프에 거주하던 유대인 7만~10만 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폭탄이 바이빈 야르 같은 장소에 떨어질 때 세계가 침묵한다면 80년 동안 ‘다시는 (학살은)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게 어떤 의미인가”라고 호소했다. 추모센터 자문위원장인 나탄 샤란스키도 성명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은 주권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불법적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홀로코스트를 조작하려 한다”며 “나치 최대 학살인 바이빈야르를 폭격함으로써 키예프 공격을 시작한 건 상징적”이라고 규탄했다.

1일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프 주정부 청사와 중앙 광장. 하르키프=AFP 연합뉴스

1일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프 주정부 청사와 중앙 광장. 하르키프=AFP 연합뉴스

전날부터 이틀째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하르키프는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했다. 주정부 청사가 위치한 중앙광장에 미사일이 떨어져 10명이 숨지고 35명이 다쳤다. 건물 잔해에 매몰됐던 10명은 다행히 구조됐다. 몇 시간 뒤에는 미사일이 병원 인근 아파트를 강타해 폭발이 일었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현장 영상에선 아파트 주변 거리에 쓰러져 있는 시신이 목격됐고, “건물이 사라졌다”며 울부짖는 주민들 목소리도 담겼다. 아직 구체적인 인명 피해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화상 연설에서 “하르키프에 대한 공격은 전쟁범죄이자 러시아의 국가 테러리즘”이라고 비난했다.

남부 도시 헤르손에도 우크라이나군이 시내로 진입한 러시아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남동부 도네츠크 지역 친(親)러시아 반군은 진군을 계속해 아조프해에 접한 항구도시 마리우폴로 진격한 러시아군과 합류했다고 러시아 신문 ‘노바야 가제타’가 전했다. 마리우폴이 완전히 점령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북부 도시 체르니히우에서도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의 남진을 저지하면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CBS는 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러시아군이 일주일 안에 키예프를 고립시킬 수 있고, 그후 30일 안에 도시를 장악할 수 있다는 게 현재 미국의 평가”라고 보도했다. 당초 며칠 이내에 키예프가 함락될 것이라는 초기 평가보다는 시간이 늘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저항, 군수물자 공급 문제 등에 부딪혀 작전을 정비할 가능성도 거론됐다. 이 당국자는 “진격이 예상보다 지체되는 러시아군 사이에서 사기 저하가 나타나고 있으며 일부 병사들은 전투도 하지 않은 채 항복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군사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정부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군사시설과 민간시설을 가리지 않고 더욱 격렬한 무차별 공격에 나설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군의 장갑차와 탱크는 키예프 외곽 25㎞ 떨어진 곳까지 접근했고, 북쪽에서 키예프를 향해 진군하는 군사 장비 대열이 무려 65㎞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러시아군이 광폭해지면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2차 협상 개최도 불투명해졌다. 일부 러시아 매체에서 1차 회담 장소였던 벨라루스 고멜주(州)에서 이르면 2일 2차 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으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도시에 대한 폭격을 중단해야만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고 못 박았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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