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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회의 주목과 기대에도 짓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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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니 킹(Rodney G. King, 1965.4.2~ 2012.6.17)은 백인 경찰의 무차별 폭행 피해자로 1992년 LA폭동 이후 인종 차별·갈등의 상징적 존재로 부각된 인물. 사건 당시 그는 1988년 강도사건으로 기소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나 있던 처지였다. 사건 이후 그는 사회의 주목 속에 자잘한 비행과 범죄로 점철된 삶의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투했고, 자신을 영웅시하는 기대에 짓눌렸고, 더러 불행했다.
폭동은 1992년 4월 폭행에 가담한 백인 경관들이 무죄로 석방되면서 시작됐다. 약 일주일간 이어진 LA폭동으로 50여 명이 숨졌고, 2,000여 명이 다쳤고, 10억 달러 규모의 재산피해가 났다. 폭동 사흘째 킹은 방송에 출연해 폭동을 멈춰 달라며 "우리 다 함께 잘 지낼 수 없느냐?(Can We All Get Along?)"고 호소하기도 했다.
일련의 사태 이후 그는 인권단체 등에 의해 '선량한 피해자' 혹은 '저항적 반차별주의자'로 호명되곤 했다. 한 기자회견에서 그는 "사람들은 나를 맬컴 엑스나 마틴 루서 킹, 로자 파크스 같은 존재처럼 여기곤 한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며 사는 게 무척 힘들다"고 말했다. 사태 이후에도 그는 알코올 중독과 마약의 유혹과 싸웠고, "내가 경찰의 야만성을 부각하는 포스터 모델이란 사실은 알고 있다. 그게 나를 치유하고 충동을 억제하는 긍정적 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볼 것"이라고도 했다. 폭동 20주년이던 2012년 '폭동의 내면(The Riot Within)'이란 자서전도 썼다. 하지만 자주 경찰서와 재활시설을 들락거렸고, 전처를 폭행한 혐의로 연행되기도 했다.
그는 소송을 통해 LA 시 배상금 380만 달러를 받고 방송 출연료 등으로 제법 큰돈을 벌었지만, 천문학적인 소송 비용과 잇단 투자 실패가 겹쳐 자서전 선인세를 받을 무렵 거의 파산 상태였다. 자서전을 낸 직후 그는 LA 인근 리알토 자신의 집 수영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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