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향후 60년 동안 원전을 주력 기저 전원(電源)으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 25일 청와대 ‘글로벌 에너지공급망 현안 점검회의’에서 나온 이 발언이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스스로 부정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다. 야권 등에서 일제히 ‘말 바꾸기’라는 비판이 일자, 청와대는 ‘정부는 애초부터 인위적이고 급격한 탈원전을 추진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비판을 반박했다.
▦ 청와대 설명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그날 문 대통령은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신규 원전 건설 중단,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 금지 등을 2084년까지 장기에 걸쳐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언급은 정부의 공식 원전정책이기도 하다. 사실 지난 대선 당시 ‘점진적 에너지 전환’엔 안철수 후보와 유승민 후보도 입장을 같이했다. 따라서 정부가 공식입장 정도로만 탈원전을 추진했어도 첨예한 논란은 피했을 수도 있다.
▦ 하지만 정작 에너지 전환정책을 첨예한 탈원전 논란으로 키운 건 현 정권이다. 문 대통령은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16년 12월 원전 재난영화 ‘판도라’를 관람한 후 “원전 추가건설을 막고 앞으로 탈핵ㆍ탈원전 국가로 가야 한다”는 말로 탈원전을 정치의제화했다. 이후 정부 출범 후엔 경제성 조작 의혹을 불러일으킨 무리한 과정을 거쳐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시키고, 건설 중이던 신한울 3ㆍ4호기를 취소시키며 탈원전정책을 극적으로 과시했다.
▦ 뿐만 아니다. 공론화다 뭐다 해서 당초 2017년부터 가동 예정이던 신한울 1ㆍ2호기 가동과 신고리 5ㆍ6호기 완공계획도 각각 5년, 2년 반 정도 지연됐다. 그 과정에서 원전설비용량은 급감했고, 전기료 인상 없이 대체전력을 공급하느라 한전 적자는 10조 원을 바라보게 됐다. 이런 경과에도 우크라이나 사태로 에너지 파동이 우려되자 대통령이 새삼 “신한울 1ㆍ2호기와 신고리 5ㆍ6호기를 빠른 시간 내에 정상 가동할 수 있도록 하라”며 재촉까지 했다니, 그동안 탈원전은 유령이 했다는 건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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