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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필승 비법

입력
2024.10.0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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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 J.D. 밴스 상원의원 부부(좌측)와 민주당 후보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 후보 부부가 토론을 끝낸 후 악수하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 J.D. 밴스 상원의원 부부(좌측)와 민주당 후보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 후보 부부가 토론을 끝낸 후 악수하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당신 의견에 동의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공통점이 많은 줄 몰랐네요.” 1일(현지 시간) 뉴욕에서 진행된 미국 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민주당 팀 월즈 후보와 공화당 J.D. 밴스 후보의 대화다. 후보들이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 호평이 쏟아졌다. 총기 규제를 두고 맞서던 중 월즈 후보가 자기 아들이 청소년기에 총기 사건을 목격한 얘기를 꺼내자, 밴스 후보는 “몰랐다. 유감이다. 아들이 괜찮기를 바란다”고 위로를 건넸고, 이에 월즈는 “고맙다”고 말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였다.

□선거 토론을 비롯해 모든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에는 한계가 없다. 19세기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38가지로 정리했다. 그중 38번째 방법이 ‘인신공격과 모독·무례’다. 상대방이 우월해 패색이 짙을 때 논쟁의 소재에서 벗어나 상대를 공격하는 최후의 방법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런 공격을 극복할 방법은, 논쟁을 피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를 능가하는 논쟁의 고수가 있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상원의원 선거 토론에서 상대 후보가 “링컨은 가는 곳마다 주장이 달라지는,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며 쇼펜하우어의 38번째 방법을 동원했다. 여기에 링컨은 “제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면, 오늘같이 중요한 날 잘생긴 얼굴을 놔두고 이렇게 못생긴 얼굴로 나왔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품위와 유머는 인신공격도 무력화하는 토론 최고의 무기다.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노무현·권영길 후보 간 토론도 품위와 유머가 있는 논쟁으로 기억된다. 권 후보는 “국민 여러분 지금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졌습니까”라는 모두 발언으로 선풍을 일으켰고, 이·노 후보는 날카로운 공방 속에서도 상대 주장에 “다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노무현)라거나, “법조인답지 않습니다”(이회창)라며 예의를 갖춰 반박했다. 7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에 벌어질 수많은 논쟁에서 이기고 싶은 국회의원이라면, 부디 품위와 유머 그리고 상대에 대한 공감을 잊지 않기를 기대한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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