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핵옵션'마저 꺼낸 美·유럽, 러시아 SWIFT서 배제키로

입력
2022.02.27 09:42
수정
2022.02.2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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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국 “러시아 키예프 공격에 금융고립 결정”
러시아 중앙은행의 국제 보유고 접근도 제한

25일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 외곽의 러시아군 차량 주변 눈이 피로 물들어 있다. 하르키우=AP 연합뉴스

25일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 외곽의 러시아군 차량 주변 눈이 피로 물들어 있다. 하르키우=AP 연합뉴스

서방이 아껴뒀던 ‘핵 옵션’까지 꺼냈다. 러시아를 국제금융결제망 ‘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에서 배제하는 추가 제재를 발표하면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좀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현지 은행을 국제 금융시스템으로부터 고립시키고 러시아 경제에 치명타를 가하는 초강력 카드마저 내놓은 셈이다. 러시아와 거래가 많은 나라에도 상당한 피해가 예상되지만,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우크라이나 상황을 막아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26일(현지시간) 미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캐나다 6개국은 공동 성명을 통해 “전쟁을 선택하고 우크라이나 주권을 공격하고 있는 러시아를 규탄한다”며 “러시아의 전쟁 행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어진 국제법에 대한 근본적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비롯해 다른 도시를 공격함에 따라 우리는 러시아를 국제 금융(체계)으로부터 고립시키기로 결정했다”며 “이 조치들은 조만간 시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조치로 우선 선별된 러시아의 일부 은행이 국제 결제망에서 전면 배제되고, 러시아 중앙은행의 국제 보유고 접근 역시 제한된다. SWIFT는 각국 은행들이 달러화를 포함해 국제 송금 시 이용하는 전산망이다. 고도로 높은 보안을 갖추고 있으며 현재 200개 이상 국가의 1만1,000곳의 금융회사가 이를 이용하고 있다. 퇴출될 경우 상품을 수출해도 외국에서 대금을 받기 어려워 경제 활동에 큰 지장이 생긴다. 그간 이란과 북한에만 적용해왔는데, 해외 달러 결제를 원천 봉쇄한다는 점에서 ‘금융 핵 옵션’으로 불리며 파괴력이 가장 큰 방안으로 거론돼 왔다.

그간 미국은 러시아의 SWIFT 배제를 꾸준히 주장해왔지만, 유럽 국가들이 반대해 초기 제재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대(對) 러시아 수출 규제 조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핵심 인사 개인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그러나 수위가 약한 탓에 우크라이나 위기를 막는 데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비난이 이어지면서 보다 강력한 조치를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SWIFT 제재는 러시아엔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지만 서방 역시 후폭풍을 감수해야 한다. 러시아가 퇴출될 경우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러시아에 빌려준 자금도 돌려받을 수 없어, 미국 기업과 독일 등 러시아와 거래가 많은 나라에는 상당한 피해가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날 6개국은 러시아 중앙은행의 국제보유고 접근도 제한하기로 했다. 약 6,430억 달러(약 774조5,000억 원) 규모로 추산되는 보유고 접근이 제한을 받는 만큼, 러시아 재정에 직접적 타격이 발생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일정한 금액을 투자한 외국인에게 시민권을 발행하는 이른바 ‘황금 여권(골든 패스포트)’ 판매 역시 러시아인에게는 제한된다. 이는 러시아 정부와 관계된 러시아 부호들이 서방의 시민권을 획득해 금융 시스템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성명은 설명했다.

서방 국가들은 다음 주 중 범(汎)대서양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제재 상황을 점검하고, 제재 대상인 기관과 개인의 역내 자산을 파악해 동결 조치에 착수할 방침이다. 이들은 “우리는 이 어둠의 시간 우크라이나 국민들과 함께한다”며 “오늘 발표한 조치를 넘어 러시아의 공격을 막기 위한 추가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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