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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양다리 걸치기'는 어디서도 신뢰받기 힘들다는 말은 그럴듯하다. 특히 의리를 중시하거나 일도양단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양다리 걸치기는 비굴하거나 나약한 태도다. 형님 리더십과 스트롱맨 이미지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게도 '쩍벌'은 몰라도 양다리 걸치기는 어울리지 않는다. 윤 후보의 외교안보 참모인 김성한 고려대 교수도 “윤 후보는 전략적 모호성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략적 모호성’은 양다리 걸치기를 외교적으로 고급화한 말이다.
일상에서 양다리가 부정적이듯 미중 경쟁 시대의 양다리 외교 역시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을 리 없다. 보수진영이 현 정부 외교를 비판하는 단골 메뉴도 전략적 모호성 때문에 미국이나 중국 모두에 신뢰를 잃는다는 것이다. 확실하게 미국 편에 줄을 서는 게 낫다는 주장이다. 윤 후보의 외교 정책도 이런 방향이다. 전략적 모호성은 버리고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선명성으로 예측 가능성을 높여서 주변국들이 적응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사드(THAAD) 추가 배치도 이런 전략적 선명성의 일환이다. 사드가 한반도 방어 체계이긴 하지만 미국 편에 확실히 줄을 서겠다는 국제 정치적 함의가 담긴 것을 윤 후보 측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사나이라면 양다리 걸치기는 쩨쩨한 짓이다. 윤 후보가 외교에서도 당당하고 화끈한 사나이라는 것은 인정해야겠다.
궁금한 점은 이런 것이다. 전략적 선명성을 내세우면 쿼드(Quad)에도 가입하고 중국의 인권 문제를 비판하고 남중국해와 대만 문제에도 개입해 역할을 하겠다는 것일까. 내친김에 미국에서 중거리 미사일을 한반도에 배치하자는 주장이 나오면 그것도 덥석 받아들이려는 것일까. 대중 굴종 외교를 청산하자는 계획은 그럴싸하지만, 그 뒷감당을 할 수 있냐는 점이다.
물론 한쪽 진영에 확실하게 가담하는 게 나은 국가들이 있지만, 중국과 인접한 우리 같은 나라들은 사정이 다르다. 최근의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야말로 지정학적 요충지 국가들이 처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줘 남 일 같지 않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단순히 러시아의 탐욕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강대국이 인접 지역에 완충지대를 두려는 것은 러시아만이 아니다. 미국이 쿠바 미사일 배치에 격렬히 반발했던 것을 떠올리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에 대해 강경 대응하는 것을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친서방과 친러시아파가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그 과정이 어떻든 결국 강대국 간 힘겨루기의 전장이 되고 말았다. 러시아가 결코 양보하지 않는 지역에서 친서방의 선명한 노선이 최선의 외교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차라리 핀란드 같은 중립국 노선, 그러니까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기를 하는 게 국가 발전에 더욱 도움이 되었을지 모른다.
물론 우리가 우크라이나와 똑같은 처지는 아니다. 한반도가 이미 분단돼 중국 입장에서 북한이 일종의 완충지대며 우리에겐 한미 동맹은 기본 값이다. 하지만 여전히 지정학적 요충지로서 강대국들의 힘겨루기에 쉽게 휘말릴 수 있는 위치다. 한 쪽 발은 한미동맹에 디디면서도 다른 한 발은 유연하고 모호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한국일보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합리적 전문가들과 함께 정책 대안을 모색한 ‘대한민국 지속가능 솔루션’ 프로젝트에서 외교분야 전문가들은 미중 어느 편에 줄 서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며 위험을 분산하는 헤징 전략과 중견국 외교 등을 통한 연대 전략을 펼 것을 주문했다. 양다리 걸치기는 이념이나 의리, 사나이다움에서 볼 문제가 아니다. 실용과 실리, 아니 그것을 넘어 생존 자체가 걸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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