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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과 심상정의 금기 깨뜨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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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2018년 말부터 이듬해 8월까지 진행됐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연금특위는 문재인 정부에서 연금개혁 방안을 논의한 유일한 사회적 대화기구였다. 정부, 양대노총, 경제단체, 청년노동단체, 시민단체, 은퇴자단체 등 이해관계자들이 다수 참여했던 연금특위에선 국민연금의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평생 소득 대비 연금액의 비율) 조정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경영계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인상에 모두 반대한 건 예측 가능한 수순이었지만 같은 편으로 묶일 만한 단체들 사이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은 현재 국민연금의 보장성이 낮아 노후를 대비하기 충분하지 않다며 소득대체율을 높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청년노동단체는 소득대체율 인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국민연금은 가입기간이 길수록 소득대체율이 높아진다. 청년노동단체의 논리는 소득대체율을 인상하면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는 고임금ㆍ정규직 노동자들이 근속연수가 짧은 저임금ㆍ비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더 혜택을 보는 '역진현상'이 커진다는 것. 단순한 이견 대립으로 끝난 게 아닌 모양이다. 연금특위에 참여했던 당시 청년노동단체 대표가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식석상에서(노동계와 시민단체들로부터) '당신은 노동운동의 부끄러운 역사로 기억될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비난받은 사실을 씁쓸하게 털어놓았으니 말이다.
지난 7일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연금개혁 공약을 발표한 뒤 뜨거워지고있는 진보진영 내 논란은 그래서 기시감이 느껴진다. 심 후보의 공약은 보험료율을 올리고 기초연금을 40만 원으로 인상하자는 내용이다. 지난 대선에서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자고 했던 심 후보가 이번에 소득대체율 인상을 공약에서 빼자 한국노총,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주요 진보진영 단체들은 “소득대체율 인상 방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미래세대 부담만 강조한 개편안”이라고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심 후보는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연금은 정규직 중심으로 만들어져 비정규직이 불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이는 연금개혁이 지향해야 할 시대적 의미를 담고 있다. 연금개혁의 목표는 단순히 지금 세대가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주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노동시장 양극화에 따라 벌어지는 미래세대 내부의 노후 보장 격차를 줄이기 위한 고민까지 담겨야 한다. 진보진영의 심 후보 비판을 쉽게 수긍할 수 없는 이유다.
주목할 대목은 심 후보가 자기진영의 금기를 깼다는 점이다. 예컨대 연금보험료 인상, 직무급 도입은 시대적 과제임에도 진보정당들에 지지세력인 노동계ㆍ시민단체들과 반목할 수밖에 없는 정책들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공약은 고사하고 언급조차 꺼려왔다. 진보진영에선 보험료를 올리자고 하면 ‘재정안정은 노후안정보다 후순위’라고 회피하거나 직무급을 강화하자고 하면 기존 연공급은 젊을 때의 저임금을 보상하는 체계라며 논의를 원천봉쇄하기 일쑤였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할 말은 하겠다고 나선 정의당의 결정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참여정부 이후 15년 동안 연금개혁을 미뤄왔기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새 정부는 연금개혁의 높은 압박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개혁을 시도할 때마다 피해는 최소화하고 이익은 최대화하려는 이해당사자 간 갈등이 극심해 연금개혁은 ‘코끼리 옮기기’로도 비유된다. 막연히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을 하겠다는 인식 정도로는 코끼리를 제대로 옮길 수 없다. 속전속결로 개혁논의에 들어가는 일은 중요하지만 도대체 누구를 위해 연금개혁을 해야 하는지부터 분명히 하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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