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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히어로의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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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 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어릴 때 다들 그런 상상을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만일 슈퍼 히어로의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것이 가장 좋을까. '슈퍼맨'의 초인적인 힘? '스파이더맨'의 모든 것을 붙잡을 수 있는 거미줄? '아이어맨'의 무적 슈트?
물론 그런 상상은 어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하지 않게 됐다. 내 삶에 닥친 어려움을 해결하기에 초능력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초능력보다는 차라리 아주 많은 일에도 지치지 않을 몸과 정신의 체력이 더 필요했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겐 그런 상상이 절박하다. 계간 문예지 ‘문학의 오늘’ 41호에 실린 이소정 작가의 단편소설 ‘지구의 밤’의 두 주인공인 ‘슈퍼’와 ‘맨’은 자신들에게 슈퍼 히어로의 능력이 있기를 간절히 꿈꾼다.
초등학생이었던 둘은 세상이 자신들을 약하게 볼수록 강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슈퍼맨의 팬이 됐고, ‘슈퍼’와 ‘맨’의 이름을 각각 나눠 가진다. 횡단보도 건너지 않고 학교 가기, 그늘로만 걷기, 교과서 안 보기 같은 둘만의 지구 영웅 수련도 한다. 수련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정작 이들은 객관적인 히어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채 어른이 된다. ‘슈퍼’집 아들이라 ‘슈퍼’가 된 그는 집이 망하고 현재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맨’의 가슴팍에는 슈퍼맨을 상징하는 S자 대신 퀵서비스 배달 회사의 로고가 박혀 있다.
이들이 살아가는 세계 역시 대단한 악당들이 활개 치는 곳은 아니다. 다만, 추가 밥값을 주지 않기 위해 아르바이트 시간을 조작하는 편의점주, 다친 퀵서비스 기사들의 치료비를 모른 척하는 회사, 전세금을 몰래 빼가는 친척처럼,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약간씩 이기적인 인간들이 사는 곳일 뿐이다.
그런 세계이기에 이들이 꿈꾸는 슈퍼 히어로 역시 전 인류를 구하는 존재가 아니다. 이들은 그저 내 주변의 이웃과 가족을 지키고 싶다. 우연히 마주친 목숨을 끊으려는 여자아이, 치매로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 환풍구에 몸이 끼어버린 개. 그런 존재들을 구할 능력이 자신들에게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쩌면 누구보다 무능력하기에, 오히려 이들이야말로 누구보다 슈퍼맨의 자질을 가진 이들일지도 모른다. “어수룩한 안경, 병적으로 수줍고 소심한 성격, 종국에는 절대 결함”이야말로 슈퍼맨을 인간미 없는 영웅이 아니라 우리 곁의 영웅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연민이 슈퍼하지 못한 우리의 무능력이라고 해도 나는 이제 괜찮을 것 같았다. (…)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과 그 밤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끝나지 않는 밤에 대해 생각했다. 그 전쟁 같은 밤을.”
히어로를 진정 히어로로 만드는 것은 그들의 능력이 아니라 그들의 약점이다. 약점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타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 능력이다.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는 책임감과 정의에 대한 믿음이 그들을 히어로로 만든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약점은 한없이 약하다는 점”일 것이기 때문이리라. 어른이 된 나는 이제 슈퍼맨의 초인적 힘도 아이언맨의 무적 슈트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조금 덜 이기적이기를, 그리하여 내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능력이 내게 존재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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