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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제의 수의를 짜는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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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들라크루아의 작품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1830년 프랑스 7월 혁명의 기운을 압도적 구도로 묘사한 회화 작품이다. 그 혁명으로 부르봉 샤를 10세의 왕위는 국민이 뽑은 루이 필립에게 돌아갔고, 복고 반동의 '빈 체제'를 뒤엎는 자유·공화 혁명의 기운이 유럽 전역에 확산됐다. 이 시점부터 프랑스 2월혁명(1848년)에 이르는 기간은 자유주의와 왕정주의가 격돌하던 혁명의 시대였고, 숱한 문학인들도 시와 산문으로 혁명에 동조했다. 독일의 그들을 '청년독일파'라 부른다.
독일 킬(Kiel)대학 강사 루돌프 빈바르크(1802~1872)가 1834년 출간한 '미학적 출정(ästhetische feldzüge)'이란 책 서문에 '청년 독일'이란 표현을 처음 썼다. "작가는 이제 아름다운 정신의 유희자가 아니며 천진스럽게 즐거워하는 자도 아니고 아무렇게나 환상에 빠져드는 자도 아니다. 작가는 만인을 지배하는 시대정신을 역사의 청동 펜으로 기술하여 책으로 엮는 자이다." 유희와 천진함이란 당대의 낭만주의를, 환상이란 독일 관념주의를 염두에 둔 표현이었다.
자유주의 지식인과 작가들은 물론 세기 전부터 존재했고, 독일 연방의회는 1819년 '칼스바트 결의'를 통해 출판 검열과 사상 탄압을 벌여왔다. 1835년 연방의회는 문인 5명을 특정해 저작물 출판을 금지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그들에게 '청년독일파'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그중 한 명이 19세기 독일 문학의 주역인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2.13~1856.2.17)였다. 그는 서정적 소재와 시어들 속에 신랄한 풍자와 반어를 숨겨 당대의 허위를 폭로하고 계급·신분 질서를 조소했고, 조국에서 추방된 뒤 프랑스에서 활동했다. 그는 말년의 자서전 '고백'에서 평생의 과업을 '민중 해방'이라 썼다. "낡은 독일이여, 우리는 그대의 수의를 짠다"란 유명한 구절은 1944년 시 '슐레지엔의 직조공들'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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