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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 발명을 둘러싼 암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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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00년 전까지 인류의 주요 원거리 통신 수단은 파발과 봉화였고, 비둘기 등 전서구의 도움을 받았다.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 군대와의 마라톤 전투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한 그리스 병사는 목숨을 바쳐 달려야 했다. 그렇게 인류는 생물학적 한계 안에서 시간·거리의 장애를 견뎠다.
통신에 관한 한 약 3,000년 문명의 시간을 넘어선 혁명적 사건이 19세기의 불과 50년 남짓 사이에 대부분 이뤄졌다. 1837년 새뮤얼 모스의 전신 특허, 1876년 그레이엄 벨의 전화기 특허, 1895년 마르코니의 무선통신. 21세기 통신 문명 역시 19세기의 기술과 발상에 기반하고 있다. 이런 진전은 대항해시대 이후 비대해진 욕망에 부응하기 위해서였고, 그 과정 역시 늘 명예로 찬란하지만은 않았다.
전화기 발명 특허를 둘러싼 1870년대 이후 600여 건의 소송이 대표적인 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전화기는 그레이엄 벨 개인의 천재적 업적이 아니라 적잖은 이들의 개별적 노고로 탄생했다. 1849년 구리선을 통해 음성이 전달된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해 '말하는 전보(telegrafo parlante)'라는 이름을 붙인, 이탈리아 토스카나공국 출신 발명가 안토니오 무치. 통일운동에 연루돼 미국으로 망명해야 했던 무치는 고군분투하며 이 기술을 개량해 다수의 시제품을 개발했지만 가난한 이민자에 대한 편견과 사회적 제약 때문에 특허도 시제품 상용화를 위한 투자자도 얻지 못했다.
미국인 발명가 일라이셔 그레이(Elisha Gray, 1835.8.2~1901.1.21)는 거래처인 웨스턴 유니언사의 '동시다발 전보'에 치중했다가 벨보다 두 시간여 늦게 전화기 발명 특허를 신청했고, 소송에서도 패배해 권리를 잃었다. 벨측이 그레이의 핵심 기술을 도용했다는 사실도 과학 저술가 세스 슐만(Seth Shulman)이 근년 출간한 책 '지상 최대의 사기극-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모략과 음모로 가득 찬 범죄노트'에서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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