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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공포의 기민한 선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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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선동의 언어는 비타협적일수록 격동의 힘을 얻는다. 격렬해야 전의가 살고, 비타협적이어야 동요하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성적 진실이 아니라 감정을 사로잡을 선명한 깃발이다. 1940년대 말 1950년대 초 미국 '적색 공포(Red Scare)' 시대를 연 정치인 조지프 매카시가 기민하게 활용한 것도 저 요령이었다.
4년 차 초선 상원의원이던 매카시는 자신의 지명도와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무대로 공포의 광장을 선택했다. 러시아에 이어 중국이 공산화한 직후였고, 전후 미국과 서방세계는 노동운동 등으로 끓어오르는 계급투쟁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1950년 2월 9일 매카시 위스콘신주 상원의원은 웨스트버지니아주 공화당 여성모임이 개최한 링컨기념일 연단에서 "기독교 세계는 지금 공산주의 무신론자들과의 최종적이고도 전면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미 칩은 던져졌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공산당에 가입했거나 공산당을 위해 스파이로 활동하는 미 국무부 내 모든 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드릴 수는 없지만 지금 저는 205명의 명단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물론 그런 명단은 없었다. 하지만 명단의 존재와 출처, 진위 여부보다 여론은 '과연 누가?'에게 쏠렸고, 매카시는 학교와 직장, 관공서와 의회, 정부 안에서 암약하는 보이지 않는 내부의 적들에 대한 공포를 무기로 의회를 포함 미국 사회를 약 4년간 쥐고 흔들었다.
매카시가 공화당 의원 다수를 움켜쥔 마당이어서 공화당 소속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조차 당 내분을 우려해 그를 견제하지 못했다. 그는 공식 석상에서 매카시를 아예 언급하지 않는 소극적 거리 두기로 일관했고, 때로는 활용했다. 1953년 대통령 기록문서에는 아이젠하워가 사석에서 "그자와 함께 시궁창에 뒹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 대목이 있다. 아이젠하워의 반격이 시작된 건 1954년 매카시의 마수가 미군과 행정부로 뻗친 뒤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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