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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의 ‘BBK’, 2022년의 ‘무속’

입력
2022.02.02 18:00
26면

후보 검증 소홀했던 2007년 대선
정권 바꿨지만 사회 전방위 후퇴
자질ㆍ능력ㆍ품격 무한검증 당연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8년 3월 22일 구속영장이 발부된 뒤 서울동부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8년 3월 22일 구속영장이 발부된 뒤 서울동부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한 달여 남은 올해 대선은 갈수록 2007년 대선을 닮아가는 듯하다. 대표적인 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그의 배우자 김건희씨를 둘러싼 ‘무속’ 논란이다. 15년 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후보에게 내내 제기됐지만 별다른 변수가 되지 않았던 ‘BBK 주가 조작’ 의혹의 재연 같아서다. 특히나 이들 논란이 유력 후보의 자질과 능력과 품격에 대한 검증을 한참이나 뒷전으로 밀쳐낸다는 점에서다.

2007년의 BBK와 2022년의 무속은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세 가지 점에서 똑 닮았다. 우선 논란의 대상이 그때도 지금도 정권교체의 선봉을 자처한 ‘제1야당’의 유력후보다. 그렇다 보니 제기된 각종 의혹과 논란을 파고드는 과정이 정권교체의 당위성과 충돌할 소지가 다분하다. 의혹을 검증하고 논란을 들여다보는 건 지극히 당연한데도 ‘그래서 정권교체 하지 말자는 거냐’라는 감정적 반발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집권여당과 그 지지층의 대응도 닮은꼴이다. 이들은 숱하게 물음표를 던지며 정당한 검증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의혹과 논란을 지속시킬 대상을 찾는 데 몰두한다. 끼리끼리이다 보면 이게 선거의 전부다. 하지만 대선 국면에선 아무리 사소한 것도 일단락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유권자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흠집내기로 치부한다. 누구도 의도치 않은 ‘프레임’이 짜이고 문제를 제기하는 측은 늪에 빠지는 셈이다.

정말 심각한 건 이번 대선 과정이 15년 전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깜냥’인지를 따지지 않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선 후보의 자질과 능력과 품격을 검증하는 것 자체가 정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의혹과 논란의 대상이 제1야당 후보이고 의도치 않은 프레임이 짜였다는 두 가지 사실이 비등한 정권교체 여론과 결합되면서다.

2007년 대선은 그야말로 ‘묻지마 정권교체’ 선거였다. 당시엔 동네 꼬마들도 한나라당의 ‘잃어버린 10년’ 구호를 읊조렸다. “길 가다가 넘어져도 ‘노무현 탓’이라던 시절”(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란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유권자들은 전과 14범 후보의 자질과 능력과 품격을 따지기보다 정권교체 구호와 747(연평균 성장률 7%ㆍ국민소득 4만 달러ㆍ세계 7대 강국) 공약에 훨씬 더 호응했다. 그나마 따지려던 이들은 투표를 포기했다.

이명박 정부는 1987년 직선제 부활 이후 최저 투표율 63.0%로 탄생했다. 한나라당은 이듬해 18대 총선에서 전국적인 ‘뉴타운’ 공약으로 유권자들의 욕망을 한껏 자극해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했다. 친박연대 등 범보수 진영을 망라하면 200석이 넘었다.

국민이 직접 선택한 역대 최강의 정부ㆍ여당이던 이명박 정부 5년과 18대 국회 4년은 그러나 성장ㆍ물가ㆍ실업ㆍ실질소득ㆍ부채ㆍ양극화 등에서 사실상 역대 최악이었다. 집회ㆍ시위에 대한 집단소송 제도화, 사이버모욕죄 신설, 국가정보원의 불법사찰 등 민주주의의 전방위 후퇴도 뚜렷했다. 그 후과는 기꺼이 피 색깔을 ‘파란색’으로 바꿨던 국민 몫이었다. 게다가 BBK 의혹은 한참 뒤 사실로 판명 났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여전히 40%대이지만, 과반을 넘나드는 정권교체 여론은 분명 이번 대선의 상수다. 그렇다고 정권을 교체하겠다고 나선 후보에 대한 검증 소홀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대선 후보를 ‘정권교체의 도구’쯤으로 상정하고 욕망에 순응한 결과는 15년 전으로 족하다. 한동안 정답이 없을 윤 후보 부부의 무속 논란은 대통령의 품격을 검증하는 딱 그 차원이면 된다. 그의 자질과 능력에 대해 무한 검증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양정대 에디터 겸 논설위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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