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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다'라는 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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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황인철(1940.1.24~ 1993.1.20)은 이돈명(1922~2011) 조준희(1938~2015) 홍성우(1938~)와 함께 1970, 80년대 상징적 인권변호사로 꼽히는 인물이다. 넷 모두 판사 출신으로 유신헌법과 1971년 사법파동 전후 변호사로 전업했다. 나머지 셋이 정권 교체 후 대학 총장으로, 국가 위원회나 정당에서 활동한 것과 달리 황인철은, 상대적으로 생이 짧았던 까닭도 있겠지만, 10년 판사 시절을 빼면 이력의 전부를 인권 변론 활동으로 채웠다.
그는 '인권변호사'라는 타이틀을 탐내 인권 사건마다 이름을 올리던 일부와 달리, 사건 하나하나에 성실히 개입했다. 10·26사건 피고 김재규의 변론을 맡아 접견 내용과 재판 과정을 깨알 같은 글씨로 기록한 67쪽 분량의 '김재규 노트'는 내용의 사료적 가치를 떠나 인권변호사 황인철의 면모를 짐작하게 하는 물증이다.
1961년 사법시험에 합격, 판사를 거쳐 1970년 변호사로 전업한 것은 9남매의 장남으로서 부모와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려는 의도도 컸다고 한다. 하지만 1972년 유신시대가 시작되고 권력의 횡포가 거세지자 그는 반공법·긴급조치 위반 사건들과 노동 인권 사건들에 뛰어들었다. 민청학련, 지학순 김지하 한승헌 필화사건, 동아·조선투위 사건, 청계피복노조 동일방직 원풍모방 대우어패럴 사건, 서울 미문화원 방화, 강원대 성조기 방화, 부천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윤석양 사건… 그의 이력은 1970년대 이후 인권사건 연표와 거의 겹쳤다. 그는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해직기자 김병익 등과의 인연으로 1975년 계간 '문학과 지성' 창간에 참여했고, 자폐 아동 교육 복지를 위한 복지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에겐 자폐증을 앓는 아들이 있었다.
장례미사 추도시에 시인 정현종은 "무죄다라는 말 한마디/ 어둠속에 반짝였고/ 그리로 겨우 숨을 쉬었다/ 차가운 하늘을 날아가는 겨울오리들/ 틈에서 그대를 본다/ 춥겠다/ 그대의 깃은 아직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있는데"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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