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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 배려석 필요" 공감하지만..."항상 비워둬야" "그럴 필요 없다" 팽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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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 배려석은 2008년 서울시 버스관리과의 해피버스데이(HappyBusDay) 캠페인으로 시작되었다. 2009년 9월 서울시가 처음으로 시내버스에 임산부 배려석을 도입했고, 2013년 12월 서울 지하철에 도입된 이후부터는 전국에 확산되었다.
도입한 지 10여 년이 지났으나, 임산부 배려석 이용에 대한 갈등은 여전하다. 지난해 10월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전국 임산부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산부 배려 인식 및 실천 수준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에 따르면 임산부의 44.1%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한 가장 부정적인 사건으로 ‘대중교통 배려석 이용 불편’을 꼽아, 길거리 흡연(73.6%)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반면 ‘배려를 강요한다’, ‘임산부가 없는데도 비워 두는 게 맞는 거냐’는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팀은 지난해 11월 26~ 29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갈등의 원인을 파악하고, 향후 임산부를 포함한 모든 승객의 대중교통 좌석 이용 편의를 위한 방안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고자 한다.
임산부 배려석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90%가 임산부 배려석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는 2019년 11월 조사 결과(89%)와 큰 차이 없는 높은 수준이다. 임산부 배려석이 사회적 약자 보호에 기여한다는 데에는 81%가 동의한 반면, ‘임산부 배려석 정책은 비임산부에 대한 역차별이다(11%)’, ‘임산부 배려석은 양성 평등에 위배된다(13%)’, ‘임산부 배려석 정책은 남녀 갈등을 조장한다(17%)’에 동의하는 응답은 20%를 넘지 않았다.
서울교통공사의 공식 운영 방침은 ‘임산부를 위해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놓자’이다. 하지만 이는 잘 지켜지지 않는 듯 보인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20년 서울 지하철 고객센터로 접수된 민원 중 임산부 배려석과 관련한 민원은 총 8,771건으로 월평균 730여 건에 달한다.
이번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31%가 임신 중이 아닌데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어쩌다가 가끔 앉는다(21%)는 응답을 제외하더라도 비임산부 10명 중 1명은 임산부 배려석에 자주 혹은 종종 앉은 적이 있다고 답한 것이다.
비임산부가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것을 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과반을 넘었다. 임산부 배려석에 남성이 앉은 것을 본 적 있다는 응답은 62%, 임산부 배려석에 비임산부 여성이 앉은 것을 본 적 있다는 응답은 이보다 높은 76%였다.
임산부 배려석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동시에 비임산부가 임산부 배려석을 이용한 경험 역시 적지 않고 이에 따른 갈등도 반복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는, 임산부 배려석을 항상 비워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명확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 두는 것에 강제성이 없다 보니 항상 비워 둬야 한다는 의견과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 상태가 이어지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의견 대립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육안으로 임산부 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있기 때문에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 두어야 한다’고 답한 응답은 51%에 머물렀다. 반면 ‘비임산부가 앉아 있다가 임산부가 있으면 자리를 양보하면 된다(38%)’, ‘비임산부가 앉을 수 있으며, 각자의 판단에 따라 양보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12%)’ 등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 둘 필요가 없다는 응답 역시 과반에 달했다.
출퇴근시간 등 혼잡한 시간대로 한정하면, 오히려 자리를 비워 둘 필요가 없다는 응답이 더 우세하다. 출퇴근시간 등 혼잡한 시간대에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 두어야 한다’는 응답은 40%로 ‘혼잡한 시간’ 가정 전에 비해 11%포인트 감소했고, ‘비임산부가 앉아 있다가 임산부가 있으면 자리를 양보하면 된다(48%)’는 응답이 10%포인트 증가했다.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는 두 번째 이유는, 임산부 배려석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즉, 임산부 배려석이 ‘임산부 전용석’인지, 아니면 ‘교통약자도 앉을 수 있지만 임산부에게 우선권이 있는 자리’인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79%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및 장애인도 임산부 배려석을 이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목발이나 깁스 착용자도 임산부 배려석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응답이 72%였고 고령자(65%), 어린이(62%)가 임산부 배려석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응답 역시 60% 이상이었다. 20대에서는 고령자 및 어린이가 임산부 배려석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응답이 절반 이하였으나, 그 외에는 연령대와 관계없이 교통약자들도 임산부 배려석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응답이 최소 57% 이상이었다.
반대로, 임산부는 임산부 배려석뿐만 아니라 다른 자리에 대해서도 우선권이 있다는 의견이 높았다. ‘임산부 배려석이 있기 때문에, 임산부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28%에 그쳤고, ‘임산부는 교통약자이기 때문에 일반 좌석에서도 자리에 앉을 우선권이 있다’는 응답은 68%로 높았다.
종합해보면, 임산부 배려석은 임산부뿐 아니라 대중교통 이용에 도움이 필요한 승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자리라는 응답이 높았다. 임산부를 교통약자로 인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임산부 배려석을 교통약자석과 유사한 개념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약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중교통 내 ‘임산부 배려석’은 ‘교통약자석’과는 다른 명칭과 형태로 운영해왔다. ‘임산부 배려석 비워 두기’ 캠페인을 하고 있지만, 비용을 지불한 이용객들에게 좌석 비워 두기를 강제하는 것은 어려운 현실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임산부 배려석과 교통약자석을 크게 구분하지 않았고 대중교통 이용에 도움이 필요한 승객들도 임산부 배려석 좌석을 이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또한 임산부를 교통약자로 인식하고 있고 모든 좌석에 대한 우선권이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히 좌석을 ‘비워’ 두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임산부와 비임산부의 대중교통 이용 편의 증진을 위해 기존과는 조금 다른 기조의 임산부 배려석 운용 체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특정 대상을 위한 지정 좌석을 규정하기보다 개인들의 자발적인 배려와 상황을 고려한 적절한 이용 방안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이소연 한국리서치 여론본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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