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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트'와 지식의 발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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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이란 말은, 다수결의 가치를 중우적·전체주의적 선동의 맥락에 접목하는 경우처럼, 미심쩍은 의미로 쓰일 때가 많다. 사실 대부분의 지식은, 발생학적으로 보자면 집단지성이다. 개인의 천재적인 지적 도약도 당대의 앎을 발판 삼아 이룬 것이겠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은 '집단지성'이란 말이 강조되는 상황에 대한 의심을 부추긴다. 그 말은 지성의 비경제적 치장이거나 심지어 반지성의 위장막으로 쓰이기도 한다.
1958년, 미국 MIT 신입생 올리버 스무트(Oliver Smoot, 1940.1.1.~)와 그의 몇 친구들이 보스턴 시내와 케임브리지를 잇는 하버드교 길이를 스무트의 키(170cm)를 단위 삼아 잰 '장난'과 거기서 파생된 일련의 현상은 지성의 발생학적 모델이라 할 만하다. 남학생 사교클럽에 갓 입회한 스무트가 두 차례나 모임에 늦자 회장이 일종의 벌로 저 장난을 시켰다는 설이 있다.
10월 어느 밤, 스무트는 자기 몸을 굽자처럼 눕혔다가 일어서길 반복하며 다리를 건넜고, 친구들은 그의 머리가 닿은 지점마다 페인트로 표식을 남겼다. 하버드교 길이는 그렇게 '364.4 스무트와 귀 하나(620.1m)'로 환산됐고, 그 장난에 흥미를 느낀 MIT 학생들이 매년 수시로 눈금을 덧칠했다.
시민도 경찰도 교량 위 사고 지점 등을 알릴 때 그 눈금을 보고 'OO 스무트 근처'라 할 만큼 그 단위가 널리 쓰이자, 1980년대 말 시 당국도 교량 보수공사를 하면서 눈금을 보존했고, 인도도 '1 스무트' 폭으로 고쳤다. 2011년 발간된 미국 헤리티지 사전 5판은 '스무트'를 신조어로 등재했다. 컴퓨터공학자인 스무트는 훗날 국제표준화기구(ISO) 의장을 지냈다. 물론 '스무트' 단위가 ISO 법정 계량단위는 아니다.
뼘 길이에 기초한 자(尺, 약 30.3cm), 키에 맞춘 장(丈, 10자) 등 한국의 전래 척도도 누군가 먼저 시작하고 다수가 동조해서 정착됐을 것이다. 한국은 1963년 ISO에 가입하며 1964년 현행 계량법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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