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보기 연구소] 찬연한 나폴리 풍광... 소년은 아픔을 겪으며 자란다

입력
2021.12.31 10: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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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신의 손'

편집자주

※ 차고 넘치는 OTT 콘텐츠 무엇을 봐야 할까요. 무얼 볼까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입니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가 당신이 주말에 함께 보낼 수 있는 OTT 콘텐츠를 2편씩 매주 금요일 오전 소개합니다.

파비에토의 어머니는 유쾌하다. 오렌지 3개로 저글링을 하며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넷플릭스 제공

파비에토의 어머니는 유쾌하다. 오렌지 3개로 저글링을 하며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바로 보기 | 1부작 | 18세 이상

주민들이 목숨 걸고 응원하는 축구팀에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가 온다. 지역이 가난하고, 팀 재정은 허약한데 세상에서 가장 몸값 비싼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가 온다니 이탈리아 남부 도시 나폴리는 들썩인다. 10대 소년 파비에토(필리포 스코티) 역시 마라도나 영입에 흥분한다. 아버지는 그에게 생일 선물로 축구팀 SSC 나폴리의 1년 경기 관람권을 사준다.

①나폴리인의, 나폴리인다운 삶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파비에토의 친척들. 지중해의 햇볕처럼 낙천적이다. 넷플릭스 제공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파비에토의 친척들. 지중해의 햇볕처럼 낙천적이다. 넷플릭스 제공

파비에토의 삶은 충분히 행복하다. 배우 지망생 형과 오디션 구경을 가는 게 재미있고, 어머니가 오렌지 3개로 저글링하는 모습을 보는 게 즐겁다. 정신착란을 겪는 고모의 삶이 아슬아슬하고, 아버지의 외도가 걱정되나 삶은 대체로 지중해 햇살처럼 평안하고 아름답다.

파비에토의 삶은 특별하지 않다. 여느 나폴리 사람과 비슷하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친척들과 햇볕 아래에서 식사를 하며 이모의 새 약혼자를 맞이하는 장면은 지극히 나폴리적이다. 친척들은 작은 요트를 타고 지중해로 나가 해수욕을 즐긴다. 떨어지는 햇볕, 출렁이며 이를 반사하는 파도는 낙천적일 수밖에 없는 나폴리인의 삶을 반영한다.

②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변한 삶

파비에토의 가족은 큰 부족함이 없다. 아버지는 은행 간부라 제법 재력이 있다. 가족은 화목하고 근심거리는 적다. 넷플릭스 제공

파비에토의 가족은 큰 부족함이 없다. 아버지는 은행 간부라 제법 재력이 있다. 가족은 화목하고 근심거리는 적다. 넷플릭스 제공

유쾌한 파비에토의 삶은 이어진다. SSC 나폴리의 우승에 환호하고, 마라도나가 월드컵에서 ‘신의 손’ 논란을 일으키며 잉글랜드를 물리친 것에 열광하기도 한다. 항상 볕이 드는 듯하던 파비에토의 청소년기는 어느 날 암울해진다. 부모님이 막 마련한 별장에서 주말을 보내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다. 파비에토는 슬픔을 감출 수 없다. 방황이 시작된다. 지역 불량배와 어울려 일탈을 시도한다. 극단 여배우의 꽁무니를 뒤쫓기도 한다. 대학 진학을 눈앞에 둔, 때늦은 질풍노도다. 무엇보다 파비에토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고뇌에 빠진다.

③문득 영화를 하고 싶어진 소년

내성적인 파비에토는 워크맨을 끼고 산다. 평안하던 그의 청소년기는 부모님의 죽음으로 뒤틀린다. 넷플릭스 제공

내성적인 파비에토는 워크맨을 끼고 산다. 평안하던 그의 청소년기는 부모님의 죽음으로 뒤틀린다. 넷플릭스 제공

파비에토는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가족이 흩어진 현실을 잊고 싶어서다. 유명 영화감독을 우연히 만나 감독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감독은 묻는다. 자유로운지, 용기가 있는지. 파비에토는 머뭇거린다. 감독은 말한다. “영화를 하려면 배짱이 있어야 된다… (만일 배짱이 없다면) 고통이 있어야지”라고. 파비에토는 답한다. “고통이라면 자신 있어요.” 소년은 그렇게 어른이 되고, 감독이 된다.

“난 할 수 있는 걸 했다. 그리 못하진 않은 것 같다.” 영화를 여는 문구다. 마라도나가 남긴 말이다. 갖은 미사여구로 수식됐던 전설적인 선수의 말 치고는 지나치게 겸손하다. 파비에토는 영화계에 입문하고 생활하면서 저 말(특히 앞부분)을 종종 떠올렸으리라.

※몰아보기 지수: ★★★★(★ 5개 만점, ☆ 반개)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자서전적인 영화다. 소렌티노 감독은 루카 구아다니노(‘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등과 함께 21세기 이탈리아 영화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레이트 뷰티’(2013)로 2014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로마에서의 삶을 유려한 영상미로 묘사한 영화였다. ‘신의 손’은 ‘그레이트 뷰티’의 대구(對句)에 해당하는 영화다. ‘그레이트 뷰티’가 노작가의 시선으로 로마의 아름다움을 그려냈다면, ‘신의 손’은 소년의 눈을 통해 나폴리의 수려한 풍광을 전달한다. 소년의 성장 이야기가 가슴 저리면서도 화면에 펼쳐지는 경치에 눈이 황홀하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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