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문기, 검찰서 대장동 사업자 심사과정 그대로 재연 "이례적"

입력
2021.12.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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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심의 때와 같은 방식 상대평가 테스트
상대평가 심사 6년 전보다 1시간30분 초과
14개 평가 항목 중 5개 실제와 불일치 결과
"이례적인 검찰 수사 방식에 압박감 컸을 듯"

21일 오후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이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경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 사무실 출입을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오후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이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경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 사무실 출입을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이 검찰 요청으로 대장동 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심의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심사를 재연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이 이례적인 방식으로 김 처장을 포함해 내부 심의위원들의 평가 과정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면서, 심의위원들이 상당히 부담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만점 가까웠던 상대평가 심의 재연한 김 처장

28일 한국일보가 파악한 김문기 처장의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지난 10월 12일 검찰에 출석한 김 처장은 수사팀 요청으로 대장동 개발사업 우선협상자 선정을 위한 6년 전 상대평가를 재연했다. 김 처장이 심의위원 때 부여했던 점수와 동일한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성남도시개발공사는 2015년 3월 민간 사업자 선정을 위해 절대평가(390점)와 상대평가(610점)를 진행했다. 당시 화천대유가 주도한 성남의뜰컨소시엄은 1,010점 만점에 994.8점(절대평가 394점·상대평가 600.8점)을 얻어 '산업은행컨소시엄'(909.6점)과 '메리츠종합금융증권컨소시엄'(832.2점)을 여유 있게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내부평가인 절대평가에는 유한기 전 성남도시공사 개발사업본부장과 김문기 처장, 투자사업팀장이었던 정민용 변호사가 참여했고, 외부평가인 상대평가에선 외부인사 3명과 김 처장 및 정 변호사가 참여했다.

검찰은 김 처장에게 컨소시엄 3곳에서 제출한 사업계획서 3부와 공모지침서를 제시하면서 상대평가를 해보라고 주문했다. 김 처장이 항목별 상대평가를 진행하는 동안, 검찰은 항목마다 걸린 검토 시간을 체크해 조서에 기재했다. 김 처장은 항목별로 배점을 줄 때마다 검찰에 배점을 준 경위를 설명했다.

대장동 민간사업자 사업계획서 평가점수 주요 내용. 그래픽=김문중 기자

대장동 민간사업자 사업계획서 평가점수 주요 내용. 그래픽=김문중 기자


실제 심의 결과와 달랐던 재연 결과에 당혹감 드러내

김 처장을 상대로 검찰에서 진행된 상대평가는 4시간 가까이 걸렸다. 2015년 3월 27일에는 2시간 30분 정도가 걸렸기 때문에 1시간 30분이 더 소요된 셈이다. 검찰이 당시보다 오래 걸린 이유를 묻자, 김 처장은 꼼꼼하게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평가 결과도 당시와는 조금 달랐다. 14개 상대평가 항목 중 5개 항목이 당시와 불일치했다. 김 처장은 이에 대해 2015년 평가 때는 도시개발사업이 처음이라 미숙했지만, 이후 경험이 쌓이면서 평가 결과가 달라진 것 같다고 해명했다.

김 처장은 A, B, C로 매겨야 할 상대평가 항목 중 일부에 대해 성남의뜰을 제외한 두 컨소시엄에 '0점'을 준 것에 대해선 착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산관리회사 설립 및 운영계획’ '조직편성 및 인력운영 계획' '프로젝트회사 설립 및 운영계획' 등 항목에 0점을 준 심의위원은 공교롭게도 내부인사인 김 처장과 정 변호사 둘뿐이었다. 검찰은 내부위원인 두 사람만 0점을 준 것을 두고 '비상식적인 것 아니냐'며 김 처장을 추궁했다.

김 처장은 생전에 언론과 주변 사람들에게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검찰 조사가 진행되면서 압박을 느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상대평가가 진행될 당시 내부위원들로부터 성남의뜰이 절대평가에서 최고점을 받았다는 결과를 듣고 선입견이 심어졌다는 외부위원의 검찰 진술이 대표적이다. 당시 외부위원과는 일절 대화하지 않았다던 김 처장의 기존 검찰 진술과는 배치됐기 때문이다.

극단적 선택한 심사위원 2명...심의평가가 압박감 단초였나

검찰 조사를 받기 전에 김 처장이 보인 행동들도 족쇄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장동 사업 특혜 의혹이 알려지자, 그는 9월 25일 퇴직자인 정민용 변호사에게 채점표 등 내부 문서를 보여줬다. 검찰 조사 전날인 10월 6일 하나은행 관계자와 연락한 이유를 수사팀이 묻자, 김 처장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답했지만 당황해하는 흔적이 역력했다.

김 처장은 수사팀이 자신을 의심하는 분위기에 부담을 느낀 듯 검찰 조사 막바지에 '지난 3월 대장동 관련해 국민권익위원회 투서로 경찰 내사까지 받았고, 무혐의로 종결된 사실이 결백을 증명해준다'고 밝혔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심의위원으로 참여한 유한기 전 본부장과 김문기 처장이 잇달아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일각에선 검찰 수사가 윗선이 아닌 중간 실무자에게만 집중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실제로 김 처장의 검찰 조서를 보면, 윗선을 캐묻는 질문은 거의 없었다.

고검장 출신의 한 법조인은 "심사위원 3명 가운데 유한기 전 본부장은 사망하고 정민용 변호사는 기소됐기 때문에, 홀로 남은 김 처장 입장에선 검찰 수사망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압박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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