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시간 중 6시간 '공짜 노동'... 요양보호사 야간 가산금 가로채는 시설들

입력
2021.12.27 15:00
요양보호사 최모씨, 3년간 7700만 원 떼여
건보공단에서 야간 수당 받아놓고 지급 안 해
공단 "처벌규정"없다 손 놓아... 정부 감독 부재


요양원의 요양보호사는 밤에도 상주하며 노인들을 돕는다. 그러나 야간 수당을 떼이기 일쑤다. 한 노인이 요양원에서 신문을 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광주의 한 요양원에서 야간 전담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최모(53)씨. 그는 평일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14시간을 요양원에 머물며 노인들을 돌본다. 이렇게 한 달 21, 22일씩 일하지만 그가 받는 월급은 세후 186만 원. 야간 근로(22:00~06:00)와 연장 근로(8시간 초과)에 각각 1.5배의 수당이 붙는 걸 감안하면 그의 급여는 이보다 훨씬 많아야 한다. 그런데도 왜 이것밖에 안 될까.

이는 요양원이 그가 병원에 머무는 14시간 중 40%가 넘는 5시간 50분을 휴게시간으로 정해 시급을 한 푼도 안 주기 때문이다. 근무표에 따라 다르지만 오후 10시 이전에 2시간, 새벽 시간에 3시간 50분이 휴게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어떤 날은 출근하자마자인 오후 6~8시 2시간이 휴게시간이다. 이 시간은 낮 근무자들에게 인수인계를 받고 저녁 업무를 보며 가장 바쁠 때라 ‘휴게’는 불가능하다.

새벽도 마찬가지다. 요양원 한 층 전체, 25명의 노인을 혼자 담당하는 최씨는 기저귀를 갈고 체위를 바꿔줘야 하는데다 복도를 배회하는 노인, 벨 호출, 응급 상황 등에도 대처해야 한다. 최씨는 “거의 6시간을 돈 한 푼 못 받고 무료로 일한다”며 “요양보호사 휴게시간은 대체 누구를 위한 휴게시간이냐”며 분노했다.

"요양시설 80%, 야간 수당 빼돌려"

요양원은 장기요양보험제도를 운영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보호사의 기본 인건비와 함께 야간 가산금을 받는다. 요양원이 등록한 야간 근무 인원, 근무 시간에 따라 공단이 야간 가산금을 지급하면, 요양원은 이 돈을 야간 근무자의 야간 수당으로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요양원들이 공단에는 야간 근로시간을 길게 등록하고, 실제로는 휴게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최소화해 야간 수당을 중간에서 착복하는 것으로 의심된다.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전지현 사무처장은 “재작년에 교섭했던 인천의 한 요양원은 건보공단으로부터 한 달 총 540만 원의 야간 가산금을 받았지만 야간 근무자들이 받은 야근 수당은 절반인 270만 원밖에 안 됐다”고 말했다.

건보공단은 요양원이 등록한 근무시간이 요양보호사의 실제 근무시간과 일치하는지, 야간 수당을 제대로 지급하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요양원이 등록한 근무시간을 믿고 야간 가산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실제 종사자들의 휴게시간이 몇 시간인지는 확인이 안 된다"고 말했다.

휴게시간을 핑계로 한 ‘공짜 노동’은 요양시설에서 흔한 일이다. 전국요양서비스노조에 따르면 대부분의 요양시설이 야간 근무 요양보호사의 총 근무시간 중 3~6시간을 휴게시간으로 빼고 있다. 2교대나 24시간 근무 후 2일 휴무 등 근로시간이 긴 시설일수록 휴게시간이 길고, 8시간씩 일하는 3교대 근무에서는 야간 휴게시간이 없거나 짧다.

보건복지부의 ‘2019년도 장기요양 실태조사'에 따르면 80% 이상이 장시간 근무(2교대 39.7%, 24시간 근무 24% 등)였고, 3교대 근무는 15.6%뿐이었다. 전지현 사무처장은 “요양시설의 80% 이상이 요양보호사의 야간 가산금을 가져간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3년간 못 받은 임금 7,700만 원"

경기 지역의 한 요양원. 야간에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은 밤새 요양원에 머물며 노인들을 돌보고 응급상황에 대비하지만 '휴게시간'이라는 이유로 '공짜 노동'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휴게시간은 무급으로,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직장인의 점심시간 1시간이 대표적이다.

대법원도 올해 1월 처음으로 요양보호사들의 심야 휴게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요양보호사들이 야간에 환자와 분리되지 않은 공간에서 비상상황에 대비하며 보낸 시간은 휴게가 아닌 근로시간이라며 요양원이 그동안 미지급한 연장·야간 수당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법상 대기시간은 근로시간에 포함된다.

요양보호사 최씨 역시 지난 3년간 휴게시간(매일 5시간 50분) 동안 받지 못한 돈이 7,700여만 원에 이른다. 이 요양원에서 7년 일했지만 임금 채권 소멸시효로 인해 3년치 체불임금만 계산했는데도 이 정도다. 그는 현재 고용노동청에 임금체불 진정을 넣은 상태다.

"처벌 조항 없다" 관리·감독 안 해

건보공단 관계자는 “시설과 요양보호사가 맺은 근로계약에 따라 급여가 지급되는 것이기 때문에 공단이 관여하거나 제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야간 가산금을 야간에 근무한 종사자에게 지급하여야 한다’는 고시 조항이 있는데 왜 감독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지급하지 않았을 경우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이라며 “시설장의 지급 의무를 명시해 놓은 것은 요양보호사들이 자신의 권리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도 문제의식이 없긴 마찬가지다. 복지부가 마련한 요양보호사 ‘표준 근로계약서’에 휴게시간 규정을 넣을 수 없느냐는 질문에, 복지부 관계자는 “휴게시간이 ‘길다’는 것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넣을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휴게시간 늘리기는 용역업체가 24시간 교대로 근무하는 아파트 경비원의 급여를 줄이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수법이기도 하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올해 2월 경비원 휴게시간 상한을 설정했다.

요양보호사 최씨는 “시설에서는 요양보호사들이 나이도 많고 뭘 모른다고 생각해 마음대로 다 한다”며 “정부도 탁상행정만 할 게 아니라 제발 좀 현장에 와서 요양시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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