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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시제에 담길 수 없는 역사

입력
2021.12.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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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한·베트남 수교 30주년

한국-베트남 양국 외무장관이 1992년 12월 22일 하노이 시내 정부 영빈관에서 수교 공동성명에 서명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베트남 양국 외무장관이 1992년 12월 22일 하노이 시내 정부 영빈관에서 수교 공동성명에 서명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과 베트남은 베트남전쟁(1965~73) 교전 당사국이다. 대한민국은 1964년 9월 1차 파병 이래 국군 31만2,835명을 파병, 미국을 제외하면 그 전쟁에 가장 본격적으로 개입한 나라다.

한국군은 북베트남 정규군 등 군인 4만1,400여 명을 사살했고, 민간인 5,000~9,000명을 죽였다. 1968년 2월 해병 청룡부대가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 현 퐁니·퐁넛 마을에서 학살한 주민 70여 명도 포함된다. 사건 직후 미 해병 조사관이 기록한 내용을 보면 처참함이 느껴진다. "아이와 임신부가 근접 거리에서 머리에 총을 맞아 숨진 채 발견됐고, 한 여성은 가슴이 잘린 채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한국군도 5,099명이 전사했고, 1만1,232명이 부상했다. 그 대가로 박정희 군사정부는 미국의 차관과 참전수당을 받아내 일부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경제 인프라에 투자했고, 대미 발언권과 국제 외교무대에서의 입지를 굳혔다.

1956년 이래 한·베트남 관계는 사이공(현 호찌민) 함락 이후 당연히 끊겼지만, 냉전 기운이 가시던 1980년대 후반 베트남 정부가 자본주의 개혁을 본격화하면서 양국은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1992년 4월 상호 연락대표부 개설 양해각서가 채택됐고 그해 12월 22일 재수교하면서 서울과 하노이에 상대국 대사관이 다시 들어섰다. 이듬해 베트남 당시 수상이 방한했고, 3년 뒤 김영삼 대통령이 베트남을 답방했다.

1998년 베트남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호찌민 묘소를 참배한 뒤 '한때 불행했던 과거'에 유감을 전했고, 2001년 방한한 베트남 주석에게 '불행한 전쟁'에 '본의 아니게' 참전해서 "베트남 국민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고 위로를 드린다"며 공식 사과했다. 2004년 베트남 쩐 득 르엉 대통령도 "과거 역사는 뒤로하고 협력과 공동 발전의 미래로 나아가자"고 답했다.

전쟁의 앙금은 '한때의 불행'도, 잊어야 할 '과거'만도 아니다. 지금도 학살 피해자 유족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고, 강간 피해자와 자녀들이 살아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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