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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행복의 온기를 전하는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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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 월간 공연전산망 편집장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2021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한 탓인지 문화 콘텐츠에도 온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스크린이나 무대엔 스릴러와 음모, 무시무시한 살인으로 가득한 지옥도가 인기를 끈다.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공연장을 찾았다. 초연 때 감성적 리뷰로 가득했던 작품이라 기대를 하고 극장에 들어섰다. 공연 전 로비에는 노란 포스트잇에 ‘자신의 가장 빛나는 것’을 적어 달라는 게시판이 있었다. 내게 가장 빛나는 것? 내게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이나 아름다운 순간은 무엇이었을까, 고민에 고민을 하다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적어서 붙여 두었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무대는 텅 비어 있고 사면이 객석이다. 평범한 차림의 배우(백석광·정새별·이형훈, 필자가 본 날은 정새별 배우가 '나'의 역을 맡았다)가 등장해 주인공 '나'의 삶에서 처음 맞는 죽음에 대해 들려준다. '나'는 일곱 살 때 키우던 강아지 셜록 본즈를 안락사시켜야 했다. 자신이 정확히 어떤 결정을 했는지 몰랐지만 수의사 선생님은 "옳은 선택을 한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은 배우 혼자 등장해 주인공 '나'의 일곱 살 죽음에 대한 기억부터 엄마의 자살 시도, 엄마를 병문안하러 가는 동안의 아빠와의 대화, 패터슨 상담 선생님의 양말 강아지와의 대화, 도서관에서 만나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연인과의 연애와 사랑, 그리고 결혼과 그와의 이별까지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들려준다. 배우는 한 명이지만 관객들이 이야기 속 인물들을 즉석에서 맡아 '나'의 이야기를 함께 완성한다. 매 공연마다 예닐곱 명의 관객들은 쉽게 엄마의 상황을 설명하려 노력하는 아버지가 되고, 나와 비밀을 공유하는 패터슨 선생님의 양말 강아지가 되고, 문학 선생님이 되어서 '나'의 삶으로의 여행을 함께한다. 배우 혼자 등장하지만 모노드라마가 아니라 다양한 인물의 관계로 이루어진 극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행복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이다. 작품 속 주인공 '나'는 우울증에 빠져 삶의 의욕이 없는 엄마를 위해 반짝반짝 빛나는 삶의 순간들을 기록한다. 1번 아이스크림, 2번 물싸움, 3번 혼자 몰래 보는 TV, 4번 땡땡이 양말 등 일곱 살 어린아이의 행복 리스트에는 그렇게 거창한 무엇이 담겨 있지 않지만 그 리스트를 듣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생긴다. '나'의 빛나는 목록 만들기는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이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더 이상 빛나는 목록 만들기를 하지 않게 된다. 세상의 모든 일이 허무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고 결국 배우자도 그를 떠난다.
한때 그토록 행복하고 빛나던 아이는 왜 이렇게 우울하고 불행한 어른이 되었을까. 슬픔에 빠진 '나'는 어린 시절 상담 선생님인 패터슨에게 전화를 걸어 행복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날의 패터슨 선생님이 그날의 행복을 정의 내리는 것을 들으며 관객들은 각자의 행복의 정의를 가슴에 품고 극장을 떠나게 된다.
극의 마지막에 공연 전 관객들이 가장 빛나는 순간을 적어두었던 메모를 공연장 바닥에 쏟고 관객들의 빛나는 순간을 함께 공유한다. 공연 전 필자는 '가장 빛나는'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잊지 못할 추억, 나에게 가장 소중한 어떤 것을 떠올렸다. 극 중 어린 시절 '나'가 작성한 엄마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빛나는 리스트 목록을 보며 행복이란 그렇게 거창하거나 소중하거나 유일한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매 순간 작은 반짝거림을 느끼고 받아들일 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가 관객들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했던 것처럼 그 행복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우리 모두의 관계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을 통해 작은 반짝거림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주변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다면, 옆에 있는 친구와 동료, 관객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잠시나마 느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정말 작가가 의도한 행복의 정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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