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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도 심장도 없는 해파리가 될 수 있다면

입력
2021.12.14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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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우 ‘환하고 아름다운’(악스트 39호)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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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가 지나치게 고등동물이라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 오로지 인간만 겪는 질병, 오로지 인간만 저지르는 범죄, 오로지 인간만 지구에 끼치는 해악을 떠올리면 그렇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동물이 지구 통틀어 인간뿐이라는 사실까지 떠올리면, 이 모든 공허와 괴로움이 모두 내가 인간으로 태어난 탓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인간 아닌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면 나았을까? 인간이 아닌 포유류, 아니면 조류, 혹은 양서류, 차라리 해조류였다면, 보다 자유로운 유기체로서 이 지구를 유유히 떠다닐 수 있었을까? 악스트 39호에 실린 임선우의 단편소설 ‘환하고 아름다운’을 읽으며 그런 존재가 되는 상상을 했다.

소설에서 인간은 해파리가 되기로 한다. 밤이 되면 해안가에서 빛으로 인간을 유인한 뒤 가까이 다가온 대상을 촉수로 휘감아 자신과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버리는 변종 해파리가 전 세계 바닷가에 출몰하면서다.

뇌도 심장도 없이 바닷속을 떠돌며 자신과 닿는 모든 동물을 해파리로 만들어 버리는 이 ‘좀비 해파리’가 당장 인간을 멸종시킬 만큼 위협적이지는 않다. 물 밖에서의 이동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해수욕장이 폐쇄되며 사람들은 해파리와 거의 마주치지 않을 수 있게 됐지만, 그럼에도 변종 해파리는 인간 세계를 뒤흔든다.

해파리로 변신하는 인간을 신고하는 긴급 전화번호(082)가 생긴다. 해파리로 변한 가족을 데리고 살겠다는 사람들과 안락사시켜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이 충돌한다. 자살 단체에서는 해파리 촉수가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중국집에서는 해파리냉채를 팔지 않게 된다.

임선우 소설가. 은행나무 제공

임선우 소설가. 은행나무 제공

한때 음악가를 꿈꾸던 ‘나’는 더 이상 음악으로 먹고살 수 없어지자 해파리로 변하고 싶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회사에 취직한다. 집에 방문해서 고객이 해파리가 될 때까지 기다려 주다가 변신이 끝나고 나면 해파리로 살아갈 수 있게 바다로 보내주는 것이다.

뇌가 사라지고, 신경이 사라지고, 혈액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사라지는 과정을 겪은 뒤에야 인간은 비로소 해파리가 될 수 있었다. “살기에는 지쳤고 죽기에는 억울한 사람들은 해파리만큼이나 많았”기에, 고통스러운 변신 과정에도 불구하고 해파리가 되기를 선택하는 인간은 아주 많았다. 나는 사흘에 한 번꼴로 해파리를 만들어내며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너무 하찮아. 너무 비겁하고 너무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던 어느 날 김지선씨라는 고객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혼란에 빠진다. 3년 전 이혼한 51세 서비스직 종사자인 지선씨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몸은 해파리로 완전히 바뀌었는데 인간의 정신이 그대로 남은 상태가 된다. 나는 지선씨의 곁에 머물며 지선씨가 왜 인간으로서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찾기로 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지선씨는 너무나도 인간적”이었다는 사실을.

인간이기에 알 수 있었던 아름다움에 대해서 떠올려 본다. 용기, 사랑, 희생, 열정, 연민, 슬픔, 수줍음. 인간이 아닐 이유만큼이나 인간이어야 할 이유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오늘도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못한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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