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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묻고 싶다, 아빠 성씨 물려주는 게 왜 당연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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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제안으로 엄마 성을 물려준 엄마
법원에 성본 변경 청구까지 한 엄마,
시도했으나 실패한 엄마… 한자리에
부부가 자녀를 낳는다면, 그 아이의 성(姓)은 뭐가 되어야 할까요. 당연히 아빠의 성을 따르는 거 아니냐고요? 그 ‘당연히’에 반기를 든 엄마 세 명을 6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했습니다. 자녀에게 엄마 성을 물려준 두 명, 실패했으나 투쟁한 엄마 한 명입니다.
여기에다 가상의 인물 둘을 더 등장시켰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자녀에게 엄마 성을 물려주는 문제에 대한 결사반대파와 온건반대파입니다. 인터뷰는 이 5인의 가상 대화로 재구성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 5인 중 한 명이 되어 읽어 보시면 어떨까요.
이들 모두는 모범 시민입니다. 지금까지 법 잘 지키고, 세금도 잘 내며 살아왔습니다. ‘애국자냐’고 물으신다면, 자부하지는 못해도 우리 사회가 정의롭게 흘러가길 바란다고 답하는 사람들이죠. 하기는, 더 좋은 세상이 되기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그런 사람들이, 이 문제만 나오면 판이 갈립니다. 바로 부부가 낳은 자녀에게 엄마 성(姓)을 물려주는 일입니다. 부모가 이혼한 것도 아니고, 둘 다 버젓이 있는데 왜 아빠 성이 아니라 엄마 성을 따르도록 하냐고요? 2005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부성 강제주의’도 사라진 걸요. 우리나라는 여전히 부성이 기본인 ‘부성(父姓) 우선주의’를 따르고 있지만, 얼마든지 부부가 협의해 자녀에게 모성을 물려줄 수 있습니다. 그 절차가 아주 복잡하고 불평등한 요소도 다분하지만요. 자녀의 성과 본은 부의 것을 따르되, 부모가 혼인신고를 할 때 협의한 경우엔 모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게 예외를 둔 민법 제781조가 근거입니다. 여성가족부가 올해 4월 이 부성 우선주의 원칙 폐지를 추진한다고 선언했지만, 움직임은 더뎌 보이기만 합니다.
이 주제에 대해 그동안은 한 사람의 목소리만 확대 방송되듯 컸던 게 사실입니다. ‘무조건 반대’님입니다. 줄여서 ‘무반’이라고 할게요. 무반님은 ‘아묻따 싫어’파입니다. ‘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싫다’는 거죠. 이 문제를 다룬 기사마다 찾아가 댓글 공격을 퍼붓는 것도 이들입니다. “그럼 너희부터 엄마 성으로 바꾸라”고 본질을 흐리거나, “다른 건 다 미국이 좋다고 하면서, 성씨 문제는 결혼하면 남편 성으로 바꾸는 미국 문화를 왜 따르지 않느냐”며 조롱하기 일쑤입니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나라가 무너진다” “동물로 전락한다”며 갓 쓰고 시위했던 과거 유림 할아버지들과는 좀 다르지만, 그래도 이들과 토론하기는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뭐 그렇게까지(뭐그)’님은 좀 다릅니다. 뭐그님은 “뭐,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돼”라고 말은 하지만, 귀는 내심 열어 두고 있습니다. 뭐그님의 마음속엔 ‘남들처럼 사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두려움, ‘내 아이를 굳이 그렇게 튀게 키울 필요가 뭐가 있어’라는 걱정 그리고 ‘나는 선택하기 어렵지만, 남이 그렇게 사는 것까지 반대할 수는 없지’라는 합리적인 사고가 혼재합니다. 현실주의자인 거죠.
자녀에게 자신의 성을 물려준 엄마 두 명 그리고 시도했으나 실패한 엄마 한 명이, 이 두 사람과 만났습니다. 이수연(40)님은 혼인신고를 할 때, 남편과 협의를 거쳐 자녀에게 모성을 물려주기로 결정하고 딸을 이제나(2)로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대한민국에 0.001%쯤 되는 사례라고나 할까요.
김지예(34)님은 법원에 자녀의 성ㆍ본 변경 심판 청구까지 내서 딸 정원(생후 7개월)에게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는 권리를 확인받은 엄마입니다. 올해 9월 서울가정법원에 청구를 해 한 달 만에 허가 결정을 받았습니다. 최근에 신문과 방송에 보도가 많이 됐지요. 지예님도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
윤다미(32)님은 아직 ‘싸우는 엄마’입니다. 아들 대윤(생후 11개월)에게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없다면, 성은 아빠 성인 권씨로 하되 이름을 엄마의 성인 ‘윤’으로 시작하도록 짓고 싶었습니다. 성과 이름에 상징적으로 부모 모두의 성을 넣는 나름의 대안이자 고육지책이었죠. 그런데 실패했습니다, 현재까지는요. 그래도 다미님은 남편 설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뿌리 깊은 유교 문화 속에서 나고 자란 안동 권씨 집안의 자손인 남편은 ‘뭐그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들 세 명은 모두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는 권리 모임(엄마성권리모임)’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어렵게 한자리에 모인 5인. 이 중 뭐그님이 가장 궁금한 게 많아 보이네요. 수적 우세에 밀려서인지 무반님은 좀처럼 기를 펴지 못했지만, 어쨌든 대화에 끼기는 했습니다.
뭐그(뭐 그렇게까지)=진짜 아이에게 엄마 성을 물려준 사람들이 있다니! 실제로는 처음 본다. 가능한 일이긴 하네.
수연=없지는 않다. 드물 뿐이지. (웃음) 내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조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7년 전인 2014년 결혼했는데,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혼인신고를 하지 않다가 2019년 아이를 가지면서 혼인신고와 출생신고를 동시에 했으니까. 그동안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으면 엄마 성을 물려주자고 얘기를 해왔다. 필요한 절차에 대해서도 미리 공부해서 알고 있었고. 그런 제안을 먼저 한 것도 남편이었다.
지예=진짜 내게 큰 희망이 됐던 분! 수연님 사례를 페이스북에서 진작 봤었다. 고민이 될 때 한 줄기 빛 같았다.
다미=내게는 가정법원에 자녀 성ㆍ본 변경 청구를 하는 법률적 방법까지 동원한 지예님이 힘이 됐는데! (웃음)
뭐그=아니! 수연님 남편이 먼저 그런 얘기를 꺼냈다고? 도대체 왜인가. 남자들은 자식에게 자기 성을 물려주는 것 이외의 선택지를 생각해보지 못할 정도로 당연하게 여길 것 같은데.
수연=바로 그거다. 우리는 그 ‘당연하다’는 것에 의문을 가졌다. ‘아빠 성을 물려주는 건 당연하고, 엄마 성을 물려주는 건 왜 안 그렇지? 법적으로 가능한데’란 반문. 거기다 남편은 직업상의 이유로 호주제 폐지(2005)나 그 이후의 후속조치와 관련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우리 자녀에게 엄마 성을 물려주는 게 가능하니, 그렇다면 해보기로 했다. 자녀에게 아빠 성을 물려주는 게 당연해지면, 그렇지 않은 이들을 배제시키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나. 우리의 선택이 그런 소외의 폭을 줄이고 사회의 다양성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2016년 ‘서울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이후 성평등을 주제로 남편과 대화를 많이 한 것도 계기였다. 양가 어른들이 놀라거나 반대하시긴 했지만, 우리가 그렇게 결정하니 나중에는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셨다.
지예=뭐그님의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기사 댓글이 있다. 우리 딸의 성ㆍ본 변경 청구에 대해서 법원의 허가 심판문을 받은 뒤, 기자회견이나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거기에 달린 댓글이다. 남편을 대단한 사람 대하듯 추어올리는 댓글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네 것을 나눠 줬구나’ 하는 뉘앙스랄까. 우리는 그 ‘부성 우선주의’에 문제를 느끼고 변경 청구까지 한 것인데 그건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다미=그게 정말 문제다. 아빠 성이 ‘디폴트’인 세상! 혼인신고할 때 그 문제의 조항이, 그토록 엄청난 위력이 있는 줄 몰랐다.
뭐그=무슨 조항이지? 혼인신고를 할 때 자녀의 성을 엄마 성으로 할지, 아빠 성으로 할지를 결정할 수 있나.
다미=것 봐. 대부분 모른다. 나도 그랬다. 혼인신고서를 보면, 당사자와 양쪽 부모 인적 사항을 적는 항목이 나오다가 갑자기 ‘자녀의 성ㆍ본을 모의 성ㆍ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란 문항이 나온다. 처음에 그걸 보고 나는 내 성을 물려줄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예’에다 표시를 해서 냈다. 그랬더니 서류 받는 구청 직원이 “진짜냐. 이건 한번 ‘예’로 체크를 하면 돌이킬 수가 없다”면서 재차 확인을 하는 거다. 그 얘기를 들으니까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고. 남편과 진지하게 이 문제를 상의해본 적이 없기도 하고. 그래서 협의한 뒤에 결정하려고 아예 빈칸으로 냈다. 그런데 ‘예’나 ‘아니오’ 중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자녀는 자동으로 부성을 따르게 되는 거더라. 그런데 그에 대해선 구청 직원이 설명을 안 해준 거지.
지예=(한숨) 내가 그것만 생각하면 정말 할 말이 많다. 나는 그 작은 글씨로 적힌 조항이 가진 막강한 위력을 알고 있었다. 혼인신고할 때 남편 혼자 가게 돼서 내가 신신당부를 해뒀었다. 꼭 ‘예’에다 체크해야 한다고. 우리는 미리 아이에게 내 성을 물려주자고 얘기도 한 상태였거든. 그런데 남편이 그러지 않고 그냥 둔 거다. 그러니 구청 직원이 “아빠 성으로 할 거죠?”라고 되묻더라고 한다. 순간 남편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스쳤다고 하더라. 뒤늦게 고백하기를, 그때 모성을 따르기로 협의했다고 체크하면 마치 내 것을 뺏기는 듯 느껴진 것 같다고. 딸의 성ㆍ본을 바꾸는 과정은 그런 게 바로 기득권이고 그것이 불평등의 증거임을 인정하는 시간이었다고 말이다.
뭐그=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왜 혼인신고를 할 때 그걸 결정하도록 하지? 문항도 마치 협의 여부를 묻는 것처럼 돼 있는데.
수연=어이가 없지. 결혼한다고 다 자녀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때 내 자녀의 성을 무엇으로 할지 결정하라고 하는 게 정말 이상하다. 게다가 ‘아니오’라고 표시했을 때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설명도 없다. 또 ‘예’라고 하면, 부속서류로 협의서도 작성해서 제출해야 하고 이때 부부가 함께 가야 한다. 출석할 수 없을 때엔 추가로 내야 할 서류(인감증명서 등)가 있다. 그렇게 절차를 어렵게 해놓은 건 하지 말라는 얘기 아닌가. 또 구청에 따라서는 “진짜 엄마 성으로 한다는 거냐. 나중에 바꿀 수 없다”면서 의아스럽게 말하거나, 웅성웅성하면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상사에게 묻는 직원도 있다고 하더라. 그만큼 ‘특별 사례’ ‘희귀 사례’ 취급을 하는 거다.
지예=그래서 나도 남편이 그 문제의 조항에 체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 너무 고민스러웠다. 찾아보니 아이의 성을 바꾸려면, 서류상으로 이혼을 한 뒤 다시 혼인신고를 하면서 아이 성을 내 성으로 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게 가장 쉬워 보였다. 그래서 이혼 방법과 절차까지 알아봤다. 그런데 임신 중이거나 미성년 자녀가 있을 때 이혼을 하려면 숙려기간도 3개월로 늘어나는 데다, 법원에 가서 받아야 할 상담이나 교육 프로그램까지 있더라. 진짜로 헤어질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그래서 일단 출생신고 때는 남편 성으로 한 이후, 법원에 성ㆍ본 변경 청구를 하게 된 거다.
다미=내가 혼인신고서상 그 이상한 조항의 대표적 피해자다. 이렇게 바꾸기가 어려운 줄 알았더라면 빈칸으로 내지 않았을 텐데. 결국 “차선책으로 그럼 아이 이름이라도 내 성을 딴 ‘윤’으로 시작하게 하자. 그럼 성씨는 당신한테서, 이름의 첫 글자는 내 성에서 물려준 것으로 할 수 있지 않겠냐”면서 남편을 설득했다. 처음엔 수긍하더니, 정작 이름 지을 때 태도가 바뀌더라. 뿌리 깊은 유교문화 속에서 자란 안동 권씨인 남편은 이름도 아이 사주에 맞춰서 지어 왔는데 그 선택지에 ‘윤’으로 시작하는 이름은 없었던 거다. 결국 이름 끝에 ‘윤’을 넣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남편을 내가 ‘배신자’라고 놀리는 이유다.
무반(무조건 반대)=나도 말 좀 하자. 정부가 바보도 아니고, 혼인 초반에 그걸 결정하도록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나. 나중에 분란이 생겨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르면 어떻게 하려고? 게다가 모성을 예외로 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냐고. 거기다 들어보니 불가능한 것도 아니구만.
수연=무반님의 그런 반응 익숙하다. 우리가 ‘부성 우선주의를 깨고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해달라’고 국민청원을 올린 적이 있는데, 그걸 다룬 기사에도 그런 댓글이 있더라. ‘불가능한 것도 아닌데 왜 떼쓰냐’고. (웃음) 실낱 같은 구멍 하나 뚫어 두고 ‘해볼 테면 해봐라’ 하는 게 불평등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리고 혼인신고할 때 자녀계획을 완벽히 세우고, 성과 본을 어떻게 할지까지 정한 부부가 몇이나 될까. 오히려 출생신고 때 결정하도록 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나.
지예=무반님, 솔직하게 말해서 이래도 욕하고, 저래도 욕할 것 아닌가? ‘할 수 있는 데 왜 난리야’라고 했다가, 모성을 따르게 한 사람들한테는 또 ‘씨’ 운운하면서 비난하지 않나. 내가 본 저급한 주장 중 하나는 ‘왜 상추씨를 뿌렸는데 배추라고 하느냐’는 거였다. (일동 박장대소) 그 댓글을 보고 억울한 생각이 들더라. 그게 왜 상추씨인가.
뭐그=그건 그렇네. 자녀는 부모의 DNA를 반반씩 받아 태어난 것인데.
지예=(일동 정색) 그거 엄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임신과 출산, 육아의 전 과정을 고려하면 반반도 아니라고. 기여도를 따지면 남자는 정말 할 말이 없을 텐데. 인용하기도 싫은 진부한 말이지만 여자는 밭이고 남자는 씨라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것도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수정란이 되고, 배아에서 태아로 성장하는 것이니) 정말 비과학적이고 비상식적인 말 아닌가.
다미=아이를 갖고 기르면서 ‘정말 신은 남자인가’ 생각했다. 온갖 힘들고 하기 싫은 건 다 여자에게 주었더라. 아이를 여자가 낳으면, 남자에게는 부유(父乳)라도 나오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무반=그렇게 모성을 따르게 하는 게 문제가 안 된다면, 2005년 헌법재판소가 호주제에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부성 우선주의는 왜 그대로 뒀겠나. 헌재도 부성 우선주의 자체는 합헌이라고 판단했다고.
다미=언제 적 얘기를 하시는지. 법이 인식을 못 따라간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내 또래는 성씨에 그렇게 민감하지 않다. 심지어 김ㆍ이ㆍ박씨 친구들은 “너무 흔하다”면서 자기 성이나 남편 성 중에 덜 흔하고 발음하기 좋은 걸 자식한테 물려주고 싶어한다. 기역(ㄱ)으로 시작하는 성씨를 가진 친구들은 학교에서 이름 부를 때 먼저 불리는 게 아이의 삶을 팍팍하게 만들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고.
수연=그 제도의 피해자가 얼마나 많은지 아나. 대부분 여성이다. 내가 아는 분 중엔 어릴 때부터 할머니한테 줄기차게 “대가 끊겼다”는 말을 듣고 자란 여성이 있다. 딸만 셋인 집이었던 거다. 중학교 때 호주제가 폐지됐는데 그 소식이 그렇게 기뻤다고 한다. ‘내가 우리 집의 대를 이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제도가 인간을 그렇게 억누를 수 있는 거다.
지예=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더 파고들어가 보니까 나도 그런 기억이 있더라. 내게 여동생과 남동생이 한 명씩 있는데 막내인 남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할머니가 엄마한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손재주가 좋았던 엄마가 만든 걸 아빠가 할머니한테 갖다 드리면 할머니가 그러셨다. “그럼 뭐하냐. 아들을 못 낳는데.” 내가 다섯 살 때 엄마가 남동생을 낳았는데 그때 병원 분만실 앞에서 할머니가 덩실덩실 춤을 췄던 게 생생하다. 그 어릴 때에도 그게 창피하고 이상했다. 내 성을 아이에게 물려줘야겠다고 생각한 결정적 계기는 TV 예능 프로그램이었지만, 내 성장 과정에서도 그런 크고 작은 이유들이 축적된 거였다.
무반=예능 프로에서 뭐가 나왔는데?
지예=한 여성 연예인의 출산기를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갓난아기를 처음 안는 장면이 나왔는데 갓난아기를 보자마자 옆에 있던 그의 시아버지가 “○가(家) 얼굴”이라고 하는 거다.
무반=어르신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어떻든 헌재의 판단도 그렇지 않나. “부성주의는 규범으로서 존재하기 이전부터 생활양식으로 존재해 온 사회문화적 현상이었고, 오늘날에 있어서도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은 여전히 부성주의를 자연스러운 생활양식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지예=그게 벌써 16년 전이라고. 올해 3월엔 민법의 이 부성 우선주의 원칙이 헌법상 혼인ㆍ가족생활의 기본권과 인격권,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면서 헌법소원을 낸 부부도 나왔다. 시대가 바뀌어서 가족의 형태도 다양해졌는데 그걸 포괄하는 형태로 제도도 바뀌어야 맞지 않나. 그리고 생각해보라. 여성들이 누구네 가문을 이으려고 자식을 낳는 건 아니지 않나. 그걸 왜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지?
뭐그=자녀 쪽에서도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나. 대다수의 사람이 아빠 성을 따르는데 당신들 자녀만 엄마 성이라고 해봐라. 아이가 자라면서 일일이 그걸 설명해야 하지 않겠나. 아이가 받을 상처가 걱정되지는 않나.
다미=이 아이들이 자랄 세상에서도 부성이 우선일까. 나는 우리 세대보다 더 자유롭고 다양한 가족 형태가 보장되는 사회가 될 것 같은데.
지예=이미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는 영어로도 부르기 쉬운 이름을 짓는 게 유행이다. 무슨 가문이니, 어느 집안의 몇 대손이니 하는 성씨의 상징성이 과연 얼마나 갈까. 개인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데. 그리고 우리 자식이다. 걱정하는 당신들보다 우리가 훨씬 더 아이를 아끼고 사랑한다.
수연=뭐그님 같은 말을 하는 분들에게 우리가 하는 말이 있다. 당신이 그런 우려를 입 밖으로 꺼내지만 않으면 된다고. 나이 들수록 제도나 사회적 인식에 얽매이게 되니, 자유롭게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한다. 나는 딸 제나가 우리가 엄마 성을 물려준 의미를 되새기면서,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의문을 가지며 살면 좋겠다. 그럼 좀 더 다양성을 존중하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자기 자신으로서의 나’라는 뜻으로 지은 제나라는 이름처럼 세상의 기준에 흔들리지 말고 살기를 바란다.
지예=오, 수연님의 말 멋있다. 우리 부부도 ‘너만의 정원을 가꾸라’는 뜻에서 딸 이름을 정원이라고 지었는데. 이렇게 ‘김정원’이 되기까지 과정이 참 거창했지만, 정원이가 이것만 알아주면 좋겠다. 엄마ㆍ아빠 시대엔 자식한테 엄마 성을 물려주는 일이 너무 힘들었고 그래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것, 그렇게 해서 그간 우리 사회에서 지워지고 배제돼 온 여성의 존재를 다시 찾으려는 의미를 담았다는 것을. 정원이가 당연히 아빠 성이 김씨라서 김정원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반전을 주면서, 왜 내 성씨를 엄마에게서 따오게 됐는지 그리고 이름에 아빠 성도 들어가 있다는 걸 설명하며 스스로 정체성을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다미=나중에 대윤이한테 꼭 얘기를 해줄 거다. 네 이름 짓는 과정에서 엄마ㆍ아빠가 그렇게 많이 싸울 줄은 몰랐다고. (웃음) 내 생각엔 앞으로 사회가 바뀌어서 나중에는 본인이 엄마 성과 아빠 성 중에서 원하는 것으로 선택할 수도 있게 될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대윤이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다. 아이와 이런 주제로도 대화할 수 있는 때가 빨리 오면 좋겠다. 아이 생각이 정말 궁금하다.
무반=참 유난하다. 뭐 그렇게까지 전투적으로 사는가.
지예=우리 엄마도 나한테 그랬다. “조선팔도에 너 같은 년은 없을 거다. 그깟 성이 뭐 별거라고 유난이냐”고. (일동 웃음) 그래서 내가 엄마한테 진지하게 말했다. “별 게 아니니까 해보려고 해. 아이 성을 무엇으로 하는지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면, 내 성으로 하는 게 뭐가 문제야.”
그런데 무반님 같은 분들은 아마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생각을 바꾸지 않을 거다. 그래도 뭐그님은 한번쯤 고민해볼 수도 있지 않나. 그래서 뭐그님 같은 분들에겐 내가 이렇게 말한다. 유난을 떨 만큼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부성이 우선이고, 그것이 기본값이라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인 것 아니냐고.
왜 이렇게 전투적이냐고 묻는다면,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전투적이지 않으면 엄두조차 못 낼 일을 한 건 맞으니까. 소설 ‘태백산맥’에 “나라가 공산당을 만들고 지주가 빨갱이를 만든다”는 구절이 나오지 않나.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건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사회 제도와 구조인데 우리 탓을 하면 어쩌나. 그런 말을 들으면 나처럼 내향적인 인간도 싸우고 싶은 의지가 활활 타오른다고.
다미=말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으니까. 부성 우선주의를 폐지하자는 목소리를 극소수의 의견 취급하는 국회를 보면서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저들이 움직일까. 결국은 관심 있는 여성들이 목소리를 뭉쳐서 더 크게 소리 내는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게 우리의 삶과 연결돼 있으니까.
수연=그렇게 전투성을 발휘하며 살아오진 않은 것 같은데. (웃음) 그래도 나를 전투적으로 봐준다면, 그 또한 잘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외동으로 자랐기 때문에 가정 내에서 아들과 비교당하는 차별을 겪진 않았지만, 사회에 나와 끊임없이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특히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그렇다. 우리도 처음엔 섬처럼 떨어져 있다가 우연히 언론 인터뷰로 만나게 돼 엄마성권리모임까지 만들게 됐고, 지금은 함께하는 숫자도 10여 명으로 늘어났다. 우리에겐 서로가 힘이다. 함께하면서 공통으로 했던 말이 “아이에게 엄마 성을 물려주고 싶은데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는 거였다. 그러니 서로에게 존재 자체가 위로고 응원이었던 거다.
지예=맞다. 나도 불안감이 밀려들려 할 때 수연님을 보고 확신을 가졌다. ‘내 자식에게 엄마 성을 물려줘도 되겠구나’라고. 불가능한 일도, 이상한 일도 아니라는 걸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다미=너무 부러워서 지예님 기사를 읽으면서 운 적이 있다. 그러면서 두 손을 불끈 쥐었다. ‘나도 언젠가는!’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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