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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생일에 살해된 푸틴의 '눈엣가시'... 배후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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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2006년 10월 7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한 아파트에서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살해된 여성의 이름은 ‘안나 폴리트콥스카야’. 범인은 폴리트콥스카야가 건물에 들어갈 때 그를 따라간 것으로 추측되며, 총 다섯 발의 총탄을 발사했다. 폴리트콥스카야는 그중 네 발을 맞았다. 결정적인 한 방이 머리를 관통했고, 폴리트콥스카야는 그 자리에서 절명한 것으로 보였다. 시신 옆에는 범행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마카로프 소음 권총이 놓여 있었다. 러시아 마피아가 살해했음을 알리는 표식이었다.
폴리트콥스카야는 러시아 독립 매체 ‘노바야가제타’의 기자였다. ‘독립 매체’라는 수식어에서 생각할 수 있듯, 그는 러시아 권력층이 숨기려 하는 정보를 파헤쳐 러시아는 물론,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을 주된 일로 삼았다. 특히 러시아 정부의 대(對)체첸 정책 비판이 그의 핵심 관심사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체첸 전쟁을 통해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고취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한 과정을 설명하는 게 목표였던 셈이다.
푸틴 정권이 폴리트콥스카야 기자를 눈엣가시로 여긴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사건 발생 날짜도 절묘했다. 10월 7일은 푸틴 대통령의 생일이다. 폴리트콥스카야 기자의 사망은 잔인하게 말하자면 푸틴 대통령에게 ‘생일 선물’과도 다름없었다. 러시아 권력층이 폴리트콥스카야 기자 살해를 사주했을 수도 있다는 음모론이 제기된 이유다.
전적도 있었다. 폴리트콥스카야 기자는 2004년 러시아 남부 베슬란 학교 인질극 취재를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가 기내에서 독극물이 든 음료수를 마셨던 적이 있다. 16년 뒤인 지난해 8월 20일 러시아 반(反)푸틴 세력의 대표 인물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당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나발니 독살 미수의 배후에 푸틴 대통령이 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과 마찬가지로, 2004년 ‘폴리트콥스카야 독극물 음료수’ 사건 때에도 푸틴 대통령이 흑막에 있다는 주장이 나왔었다.
폴리트콥스카야 기자 살해 사건은 러시아를 뒤흔들었고 이내 서방 국가들로도 파장이 번졌다. AP통신은 물론 영국 공영 BBC방송, 경제 전문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영국 일간 가디언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 등 서방 진영의 정론 매체들은 일제히 폴리트콥스카야 기자의 부고 소식을 전하면서 추모 메시지를 발표했다.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는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폴리트콥스카야 살해 문제를 꺼내 들었고, 푸틴 대통령은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결론은 짜맞춰졌다. 푸틴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관여했을 것이라는 목소리는 컸으나 물증이 없었다. 러시아 경찰은 폴리트콥스카야 피살 10개월 후인 2007년 8월, 이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체첸 폭력조직 구성원과 전직 연방보안국(FSB) 요원 등 용의자 10명을 체포했다. 유리 차이카 당시 러시아 검찰총장은 “(용의자들이) 러시아를 불안하게 만들려 했다”고 밝혔다. 다만 수사당국이 용의자로 지목해 체포한 사람들은 모두 ‘피라미’였다. 살인을 교사한 몸통은 해외에 있다는 게 러시아 검찰의 주장이었다.
2008년 러시아 수사당국은 당시 영국에 망명해 있던 러시아 거부 보리스 베레조프스키가 배후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드미트리 도프기 조사위원은 언론에 “(폴리트콥스카야 살해 사건) 배후 세력은 법 집행 기관이 그런 범죄를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가운데, 유명인들도 대낮에 이곳에서 살해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혼란을 부추기려는 외세의 목적이 깔려 있었다는 검찰 주장과 일치했다.
그러나 베레조프스키는 자신이 배후라는 의혹을 일축했다. 현지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살인 배후의 실제 인물을 찾는 수사를 방해하려는 또 다른 시도”라며 반발했다. 베레조프스키가 2000년 영국으로 망명해 푸틴 정권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던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의 후원자였던 점도 그가 폴리트콥스카야 살해의 배후라는 주장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든 이유 중 하나다.
어쨌든 러시아 수사당국은 관련 절차를 계속 밟아 나갔다. 2009년 러시아 법원은 배심원 만장일치로 다즈하브레일·이브라김 마그무도프 형제와 전직 경찰 출신인 세르게이 하드지쿠르바노프, 이들 세 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연히 반발이 들끓었고 러시아 법원은 재심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결국 법원은 사건 8년 뒤인 2014년 5월, 폴리트콥스카야 살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명에게 종신형을 선고하고 관련자 3명에겐 징역형을 내렸다. 총격 범행에 나설 인물들을 모집한 혐의로 기소된 체첸 남성 롬 알리 가이투카예프는 2017년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사망했다.
지금도 누가 이 사건 배후인지는 불분명하다. 공소시효 15년이 만료된 올해 10월 7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폴리트콥스카야에 대한 추모 성명을 발표하며 아직도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윗선’을 밝혀내지 못한 현실을 꼬집었다. 블링컨 장관은 고인을 “저널리스트이자 인권운동가”라고 지칭한 뒤, “폴리트콥스카야 살해를 지시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러시아에서 언론의 자유와 인권이 광범위하게 침해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오늘날 탄압에 직면해 있는 러시아 독립 언론인들의 용기와 끈기를 인정한다. 매일 그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폴리트콥스카야 기자는 떠났어도, 그의 뜻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10월 8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와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에게 2021년 노벨평화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무라토프는 폴리트콥스카야가 생전 근무했던 노바야가제타의 설립자이자 편집장이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무라토프는 “나는 이 (노벨상 수상의) 공을 차지할 수 없다. 공은 노바야가제타의 것”이라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노벨상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국민의 권리를 옹호하다 사망한 사람들에게 수여됐다”고 덧붙였다. AFP통신은 무라토프가 수상자 발표 전날, 노바야가제타 편집국에서 폴리트콥스카야를 기리는 추모식을 주재했다고 전했다.
무라토프와 레사는 노벨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노벨상을 받는다. 바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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