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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손석희 “보도 전권 보장 약속에 JTBC 이적 고민 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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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의 ‘장면들’에 없는 손석희의 장면들]
“저널리즘 시작은 질문, 그건 곧 권력
내가 ‘생방송 인터뷰’ 고집한 이유는…”
“취미가 뭐냐는 질문받을 때 괴롭다”
※ [삶도] ①손석희 “구치소 독방서 담장 너머 비행기 소리 들으며 결심한 건...”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유학에서 돌아온 뒤 2000년 이름을 걸고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시작했어요. 이전에 없던 라이브 인터뷰와 뉴스브리핑이 ‘시선집중’의 핵일 텐데요. 매일 인터뷰어가 됐어야 하니, 저널리즘 기본의 질문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보셨을 것 같아요.
“방송이든, 신문이든 모든 저널리즘의 시작은 질문이에요. 제가 1984년 입사했으니까 그때까지 이미 16년 동안 질문을 하고 있었던 셈이죠. 그런데 ‘시선집중’을 시작하면서는 제 나름대로 인터뷰의 유형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어요.”
-그게 뭐였나요.
“첫째, 정보를 위한 인터뷰, 둘째, 사실 확인을 위한 인터뷰, 셋째, 논쟁을 위한 인터뷰, 넷째, 감성적으로 따뜻한 인터뷰였죠. 문제는 둘째와 셋째였는데, 주로 정치인을 상대로 하다 보니 쉽지 않았어요. 그런 인터뷰를 하고 나면 다음 날 언론에 ‘손석희, 아무개와 논쟁‘이라고 나오곤 했지요. 저는 무조건 생방송 인터뷰를 고집했고, 사전 녹음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없었습니다. 그건 나중에 ‘뉴스룸’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생방송이어야만 인터뷰어가 간섭받지 않고 인터뷰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봤거든요.”
-‘시선집중의 인터뷰어 손석희’를 떠올리면 직선이 생각나요. 돌아가지 않고, 직진해 묻는 거죠. 쉽지 않은 일인데, 그럴 수 있었던 비결은 뭔가요.
“우선 시간이 짧았어요. 불과 15분 내외에 승부를 봐야 하는데 의례적인 대화는 필요가 없었죠. 어차피 상대도 제 스타일을 알고요. 그리고 정치인이든, 누구든 저는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람이 없어요. 만나서 밥을 먹은 적도 거의 없고요. 서로 개인적 관계가 아예 없으니까 상대의 사정을 봐줄 것도 없고, 궁금한 건 다 물어보는 거지요. 그게 기자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자들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기사가 나오니까 때로는 이것저것 재야 할 때도 있거든요. 물론 그럼에도 재지 않는 것이 좋은 기자이고, 후배들에겐 그렇게 하라고 요구했지만요.”
-처음부터 인터뷰를 잘했나요. 그 시절 방송에선 작가가 써준 대본대로 인터뷰하는 게 더 보편적이었을 것 같은데요.
“작가들도 훌륭한 질문들을 만들어 냅니다. 함께 사안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당연한 거지요. 그게 실전에서 그대로 통하면 거기서 벗어날 이유도 없는 겁니다. 그런데 질문하고 답을 듣다 보면 예상대로 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답을 듣다 보면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그걸 흘려 보내고 다음 질문에만 매달릴 수는 없잖아요. 그 순간에 무엇이 청취자들에게 더 필요한 것인가는 인터뷰어가 판단해야 합니다.”
-인터뷰하기 전 그 시간의 몇 배 이상을 준비했겠죠.
“아까 얘기한 인터뷰 유형에 따라 좀 달라요. 논쟁을 위한 인터뷰는 철저히 준비해요. 화제가 됐던 (프랑스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와 했던) ‘개고기 논쟁’이나 (일본 시마네현의 조다이 요시로 의원과 했던) ‘독도 논쟁’은 사료를 다 찾고, 전공 교수들한테도 자문해 공부한 뒤 들어간 겁니다. 다른 경우는 70% 정도만 아는 게 더 나아요. 질문자도 모르는 게 있어야 더 궁금해지니까요.”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나요.
“절대적으로 ‘듣는 것’이 중요하지요. 인터뷰는 질문하는 게 아니라 듣는 거니까요. 들어야 의문도 생기고, 그래야 후속 질문이 나옵니다. 방송을 듣다 보면 이 진행자가 정말 제대로 듣고 있는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어요. 또 하나, 평상심을 갖는 것도 중요해요. 적어도 겉으로는 말이지요. 저도 사람인데 부글부글 끓을 때도 있고, 당황할 때도 있는데 그걸 통제하기가 쉽지 않긴 해요.”
-유명인들이 인터뷰에 응한 이유 중엔 ‘손석희라서’라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는 섭외가 가장 어려운데, 그런 면에선 수월했을 것 같아요.
“글쎄요. 저는 다 힘들었다고 생각하는데. (웃음) 만일 정말로 제가 인터뷰어라서 응했다면, 그건 아마 (인터뷰가) 좀 힘들어도 결국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곤란한 질문이라도 그게 있어야 하고 싶은 얘기를 하잖아요. 뭐, 이렇게 말은 하지만 저도 그런 질문을 받는 건 싫긴 하지요. (웃음)”
-‘시선집중’ 13년이 자신에게 준 의미는 뭔가요.
“저를 담금질하고, 키워내고, 자부심을 갖게 하고, 그것을 오랜 세월 동안 청취자와 공유할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에요. 등굣길에 ‘시선집중’을 들었던 고등학생이 대학을 가고,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해 어쩌면 아이도 낳은 세월 동안 함께했으니까요.”
-‘장면들’을 보면 ‘시선집중’을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든 박근혜 정부 시절 MBC의 비상식적 정황이 자세히 나와요. 책에는 감정적 묘사를 최대한 자제해 썼는데, 그 시기를 어떻게 견뎠나요.
“감정 묘사를 자제했다는 걸 알아줘 고맙습니다. 예민한 독자인 것 같네요. (웃음) MBC는 저의 고향이고, 그때 고생했던 후배들이 지금도 현업에 있는데 고향 얘기를 함부로 하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그래도 쓸 건 다 썼어요. 심경이야 뻔하지요. 매일 떠날까 갈등하다가 되돌아서고를 반복한 거지요. 그때 사진을 보면 살이 쪽 빠져 있더군요.”
정치권력에 취약한 구조의 방송이 어떻게 무너져 가는지, 그로 인해 저널리즘이 어떻게 훼손되는지, 방송이 어떻게 수용자가 아닌 권력의 것이 되는지 체험하고 목도했던 때다.
-JTBC로 옮기며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으로부터 보도에 관한 전권을 약속받은 데에도 그 영향이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어요. 기자들의 취재와 보도에 부당한 개입은 없도록 막겠다는 의미도 있었겠죠.
“네,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전권을 맡긴다’는 약속에 그 고민을 놓아버렸습니다. 당시로서는 모든 게 불투명했기 때문에 그 전권 보장이란 게 약속만으로 가능할 것인지 확신도 없었지만요. 그렇지 않으면, 저나 채널이나 살아남을 수 없다고 믿었고,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판단하기에 그 약속은 끝까지 지켜졌어요. 청와대로부터 압박이 심할 때도 마찬가지였지요. 저도 그냥 ‘손석희가 말을 전혀 안 듣는다고 하시라’고 했어요.”
홍 회장도 2018년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그런 사정을 밝힌 적이 있다. 홍 회장은 박근혜 정부 때 “사실상 (청와대의) 압력이 여러 번 있었다. 제가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의 압력을 느꼈지만, 그건 어디다 전하지 않고 제가 그냥 다 소화를 했다”고 말했다.
-JTBC로 옮긴 뒤, 다시 앵커석에 앉았습니다. 2013년 9월이니까 14년 만이었는데, 첫날 생각이 나시나요.
“들어갈 때 목에 잔뜩 장엄하게 힘을 줬던 느낌? 그 전까지 후배들하고 뉴스 개혁한다고 몇 달을 함께 부대끼며 고민했으니 더 그랬겠지요. 그걸 처음 시청자들께 내놓는 날이기도 하고요. 저 개인으로도 좀 비장한 느낌이 있었겠지요. 뉴스를 끝내고 돌아오니 보도국 기자들이 박수를 쳐줬습니다. 그날부터 고생 시작이었지요, 뭐. (웃음)”
-뉴스 클로징 멘트가 ‘저희는 내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였어요. 직접 만든 문구인가요. 여기에 담은 의미는 뭔가요.
“맞아요. 그 이상의 다른 말을 생각해낼 수가 없었어요. 후배들이 늘 그랬지요. ‘사장이 최선을 다한다고 하는 건 우리에 대한 압박이다’라고. 틀린 말은 아니지요. (웃음) 우리 자신에 대한 다짐 같은 의미도 있었으니까요. 아예 ‘JTBC 기자들은 내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한 적도 많아요. 약속대로 제대로 다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노력은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널리즘에 관련된 얘기는, ‘장면들’에 많이 쓰셨으니까 가벼운 질문 좀 할게요. 맨얼굴로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로도 유명한데, 단지 개인의 취향인가요. 거기에 저널리즘의 의미를 부여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의미는 없고요. (화장을) 전혀 안 한 것도 아니에요. 제가 얼굴에 점이 좀 있어서 그걸 살짝 가리고 들어가긴 했습니다.”
여기서 잠시 내 얘기를 하자면, 대학 때 기자를 준비하면서 ‘저널리스트 손석희’가 꿈이었다. 기자가 되고 나서도 한참 동안은. 마침내 그를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었다. ‘시선집중’ 시절 나는 5개월여간 주5일 그의 옆에서 ‘뉴스브리핑’을 했다. 방송 전후로 손석희라는 언론인을 겪으면서, 꿈을 접었다. ‘나는 어떻게 해도 안 되겠구나’란 답이 명확하게 다가왔다. 삶이 100이라면, 98 정도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었다. 그럼 견적이 나오는 거다. ‘저렇게 똑같이 해도 될까, 말까일 텐데 그렇다면 얼른 접어야겠구나.’
-평상복도 거의 같은 옷, 머리 스타일도 수십 년째 같아요. 운동도 집에서 하는 가벼운 근력 운동이나 걷기 말고는 안 한다면서요. 다른 데 쓰는 에너지는 아주 최소화하고, 일에 사력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렇게 봤다니, 감사해야 할지, 반성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웃음) 솔직히 말하면 다른 건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요. 취미가 뭐냐고 물어올 때가 제일 괴로워요. 사람들도 만나는 폭이 아주 좁습니다. 그나마 JTBC 와서 직책 때문에 좀 넓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불편한 건 맞고요. 그런데 저는 ‘꼰대’라서 그런지 이상적인 ‘워라밸(일과 삶의 조화)’은 현실에선 거의 어렵다고 생각해왔어요. 아, 이거 이렇게 얘기하면 욕먹는데. (웃음)”
-스트레스가 많은 직종 중 하나가 저널리스트예요. 그게 이 일을 올곧게 하는 걸 힘들게 하기도 하고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요.
“남들처럼 음악 듣고 영화 보는 게 방법이에요. 기본적으로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고요. 다행히 화가 나도 금방 꺼져버리는 마른 가랑잎 체질이긴 해요.”
그것 역시 37년 담금질의 결과일 것이다.
그래도 ‘방송장이’로선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는 성적표가 있다. 바로 시청률. 1%에도 미치지 못했던 JTBC 뉴스 시청률은 그의 이적 이후 ‘손석희 효과’에 힘입어 갈수록 상승하더니, 2016년 ‘최순실 태블릿PC 입수’ 보도 국면에선 10%를 돌파했다. 그러나 늘 호시절만 있을 순 없는 법. 이른바 ‘조국 정국’에선 양 진영 시청자들이 등을 돌리며 고전을 면치 못했으니.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 [삶도] ③손석희 “큰물서 해보라며 정치 권유, 웃기는 얘기” 기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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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손석희 “구치소 독방서 담장 너머 비행기 소리 들으며 결심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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