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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다 돈이 중요한 한국인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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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퓨 리서치센터가 선진 17개국 설문조사 결과 14개국 국민이 '가족'을 1순위로 꼽았는데 한국은 조사대상국가 중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를 꼽았다. 물질적 풍요는 충분한 수입, 빚이 없는 상태, 집 등으로 '경제적 안정성'을 뜻한다. 두 번째 우선순위로 꼽은 건 건강. 가족은 3위였다.
이걸 보고 많은 사람들이 '한국이 물신주의가 됐다'며 한탄했다. 하지만 장애자녀가 있는 나는 이 순위가 금세 이해가 갔다. 한국에서 장애자녀를 양육하려면 돈이나 정보(라고 쓰고 결국은 돈)가 더 많이 필요하다. 장애아는 '장애아특수어린이집'에 가야 한다. 장애학생은 초·중·고등학교가 의무교육이라지만 휠체어 탄 학생은 '입학해야 엘리베이터를 놔준다'는 방침이라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 발달장애학생들은 '비장애 학생들 수업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특수학교로 가라고 은근히 종용당한다. 즉, 장애아를 교육시키려면 그런 학교 근처로 이사를 다녀야 한다. 이사 비용은 오롯이 가족의 부담이다.
휠체어 등 보조기기도 부담이다. 바깥을 돌아다닐 만한 쓸 만한 활동형 수동 휠체어는 400만~500만 원이 훌쩍 넘는데 휠체어 지원 비용은 (소득 수준에 따라) 90만~200만 원 수준이다. 개인 돈을 들여 휠체어를 사도 갈 곳이 많지 않다. 장애인등편의법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300㎡(약 90평) 이하 시설은 경사로 등 편의시설 설치에서 면제된다. 면제 대상 사업장은 전국 사업장의 97%에 달한다. 어쩔 수 없이 집 앞 음식점, 병원, 약국 대신 접근 가능한 먼 곳에 다녀야 한다. 자유가 제약되면 인간관계도 영향을 받는다. 내 지인은 낡고 육중한 전동휠체어로 외출하면 친구와 들어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어 이성친구와 결별하기도 했다.
가족이 일정 소득이 있으면 복지 혜택에서 제외하는 '부양의무제' 때문에 장애인 가족은 평생을 장애인을 부양하며 살아가야 했었다. 부양의무제가 폐지됐다고 하지만 충분한 국가 재원이 투입되지 않아서 돌봄을 가정이 떠안는 돌봄 지옥은 끝나지 않는다. 한국의 복지예산 비중은 GDP의 12%로 OECD 국가 20개국 평균 비중(20%)에 크게 못 미친다. 복지를 비용효율 측면으로만 보고 복지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성향과도 맞물려 있다. 장애가 있거나 아프거나 나이 들어 약해진 가족을 여성들이 당연히 돌보겠거니 하는 낡은 사고방식은 사회가 분담할 돌봄을 가정으로 떠넘기는 문화적 기반이 되었다.
공적돌봄체계가 불안하니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나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 돈을 모아야 하고 아프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퓨리서치 조사에서 건강이 2위를 차지한 것도 이해가 된다. (지체장애인 가족들은 장애인을 안아 옮기거나 자세를 바꿔줘야 해 보통 근골격질환에 시달린다) 주변 발달장애인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가정돌봄이나 시설 대신 지역사회에서 공존하려면 지역사회가 준비(즉, 예산)가 필요한데 그게 없으니 부모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자녀 케어를 위해 자비로 공동체나 그룹홈을 만든다.
돌봄 때문에 집안이 어려워지고 실패해도 재기하기 어려운 주변 사례를 자꾸 보면? 여유가 있는 사람들도 사회안전망이 못 미더워지는 학습 효과가 생기는 게 가장 우려스럽다.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가족의 불행이나 어려움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사회에서 가장 큰 삶의 의미가 가족 아닌 물질이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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