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데이트폭력으로부터 여성의 안전을 촉구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주장에 21일 “범죄를 페미니즘과 엮는 시도”라며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프레임이 사라져야 한다”고 억지 주장을 폈다. 여자를 죽이지 말라고 한 게 ‘젠더 갈등화’이고 ‘선동’이라니 이런 궤변이 없다. 아무리 이대남의 반페미니즘 정서를 기반으로 탄생한 야당 대표라 해도 비참한 교제 살인 앞에서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몰상식은 도를 넘었다. 개탄스러운 정치의 후퇴다.
장 의원이 여성 안전을 촉구한 계기는 18일 30대 남성이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흉기로 수차례 찌르고 아파트 19층에서 떨어뜨린 사건이었다. 20일에도 스토킹당하던 한 여성이 신변보호 신청에도 결국 살해당했다. 지난달 무기징역이 선고된 김태현은 온라인 게임에서 알게 된 여성이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동생과 어머니까지 3명을 참혹하게 살해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5년간 데이트 폭력 신고는 8만1,056건이고 이 중 75.4%가 살인, 성폭력, 폭행·상해, 체포·감금·협박 등의 강력범죄였다. 피해자의 절대다수가 여성이다. 이 심각한 젠더 폭력의 현실을 고유정 사건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이를 페미니스트의 선동이라 몰아붙임으로써 이 대표는 목숨 잃은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 과거 세월호 막말 정치인처럼 공감능력 없는 혐오 정치를 펼치는 것이다.
젠더 폭력과 여성의 불안감은 엄연한 현실이다. 헤어지자고 하거나 성관계를 거부하거나 무시했다는 이유로 맞거나 성폭행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정치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 대표가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남자들의 억울함만 호소하면서 젠더 폭력은 방치되고 악화한다. 정의당 외 정치인들이 이대남 표를 의식해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문제다. 21세기 한국에서 성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짓밟히고 있는 데에 정치인들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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