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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상대는 바이든 아닌 자국민이었다

입력
2021.11.23 00:00
27면
1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베이징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화상 회담을 시작하며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1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베이징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화상 회담을 시작하며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대국의 풍채!"(大國風範!)

16일 있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화상 정상회담 동영상 밑에 달린 한 중국인의 한 줄 요약 평이다. 댓글창 전체를 쭉 읽어보니 비슷한 내용의 평이 많았다. 시진핑은 시종일관 자신감 있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는데, 아마 그걸 보고 쓴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번 정상회담을 중국 국내 선전전에서 자기에게 매우 유리하게 활용한 듯하다.

시진핑은 바이든에게 "중국과 미국은 세계 양대 경제대국이자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서로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자"고 했다. 듣기 좋은 말이지만, 곱씹어보면 중국과 미국이 '동급'이 되었음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가 깔린 발언이기도 하다.

중국 매체는 이번 회담을 미국 측에서 먼저 제안한 점을 크게 부각했다. 대개 아쉬운 쪽이 먼저 손을 내미는 법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정상회담에 앞서 9월 말 미국은 화웨이(華爲) 멍완저우(孟晩舟) 부회장의 귀국을 허용하여 정상회담 분위기를 조성했다. 중국 관영매체는 그의 귀국 장면을 생중계하며 "미국에 대한 외교승리!"(對美外交勝利!)란 제목을 달아 내보냈다.

시진핑에게 있어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오디언스는 역시 국내였다. 11월 11일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6중전회) '역사결의'를 통해 스스로를 마오쩌둥, 덩샤오핑 반열에 확실히 올렸다. 그가 40년 만에 역사결의를 시도했다는 점, 역사결의가 통과했다는 점, 그리고 시진핑 스스로가 역사결의 문구를 지도했다는 점은 현재 중국 정치 생태계에서 그를 반대하는 의미 있는 세력의 부재를 의미한다.

시진핑은 40여 년 만의 '역사결의'를 통해 내년 가을 20차 당대회에서 공식화될 3연임을 1년 미리 '사전 예약'을 해둔 셈이다. 이미 중국 내에선 그의 연임에 대해 토를 달지 않는 분위기다. 더불어 역사결의가 '시진핑 사상'을 '21세기 마르크스주의'라고 정의한 것은 그를 중국 마르크스주의의 '직계 혈통'으로 표정한 것이다. 이로써 시진핑이 마오쩌둥을 넘어서는 사실상 공산당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라는 해석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었다.

중국 측이 역사결의가 통과된 후에도 전문 발표를 며칠간 미루다가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후 전격 공개한 것은 영리한 정치 퍼포먼스였다. CCTV 뉴스앵커는 시진핑 역사결의를 장장 27분간 읊었다. 같은 날 있었던 미중 정상회담은 아예 뒷전으로 밀렸다. 시진핑의 국내정치에 미중 정상회담이 '재료'로 이용된 것이다. 미중 정상회담도 시진핑에게는 별로 중요한 행사가 아닌 것처럼 보이게 돼버렸다. 반면 이러한 연출로 시진핑은 더욱 '위대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연출했다.

바이든에게 있어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오디언스는 미국의 동맹들이었다.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모습에 동맹국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고, 최근 들어서는 대만을 둘러싸고 '전쟁설'까지 나오자,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이는 바이든이 미중 관계의 위험을 관리할 "가드레일이 필요하다"라고 한 말에 요약돼 있다. 또한 중국 시장을 여전히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미국의 금융가와 기업들이 미중 충돌에 갖는 우려도 다독여 줄 필요가 있었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번 정상회담 후 미국 내 여론이 그다지 비판적이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미국도 중국과의 경쟁에서 '숨 고르기'를 할 시간이 필요함을 보여준 것이라 평할 수 있겠다.


이성현 하버드대 페어뱅크센터 방문학자·前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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