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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현·김혜수, 고현정·김재영의 격세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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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확실히 좋은 점 하나는 현재의 상황을 평가하고 가늠할 수십 년 동안의 비교군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와 '멜랑꼴리아'의 임수정, '너를 닮은 사람'의 고현정, '인간실격'의 전도연, 그리고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의 송혜교. 이 배우들은 모두 자신의 상대역으로 나오는 남자 배우들보다 나이가 열 살 이상 많다.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의 송혜교는 장기용보다 열한 살이 많은데, 이는 앞서 언급한 작품 중에서 가장 차이가 적은 사례이고, '너를 닮은 사람'의 고현정과 김재영은 열일곱 살 차이이다. 이런 커플들을 보며 나는 통쾌한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성 배우들은 30~40대만 되어도 본인의 실제 나이보다 훨씬 나이든 역할을 주로 맡았고, 로맨스의 주인공은 결코 될 수 없었다. 아무리 매력적인 배우도 서른만 넘으면 세상 밖으로 밀려난 조연으로 취급당했다. 2004년 '왕꽃 선녀님'에서 당시 여른여섯 살이었던 배우 김혜선이 대학원생의 엄마로 등장한 것은 대표적 사례다. 나름 이런 틀을 깼다고 평가받는 드라마가 '평범한 노처녀'도 사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2005년의 '내 이름은 김삼순'이었다. 그런데 별 볼일 없는 노처녀의 대명사인 김삼순의 극중 나이는 겨우 서른이었다.
예전에는 남성 배우들이 훨씬 어린 상대역과 멜로의 주인공을 맡는 일이 다반사였다. 1990년 '꽃 피고 새 울면'이라는 드라마에선 노주현의 상대역으로 스물네 살 연하의 김혜수가 출연했고, 2001년 '푸른 안개'에서는 스무 살 차이 나는 이경영과 이요원이 사랑하는 사이로 등장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에도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이 지긋한 남자 주인공과 한참 연하의 여자 주인공 사이의 로맨스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 나에게는 여전히 생생하다. 그런데 그때와는 완전히 바뀐 요즘의 캐스팅을 보며 세상이 정말 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열아홉 살 연하의 유아인과 당시 마흔여덟 살이었던 김희애의 멜로라는 파격적인 설정을 가진 2014년 '밀회'는 하나의 변곡점이었지만, 스무 살밖에 안 된 남자 주인공이 인생과 사랑에 대한 지혜를 가지고 제대로 사랑 한 번 못 해 본 마흔 살의 여자 주인공을 이끄는 서사는 비현실적이었다. 결국 한동안 많이 등장하던 설정인 '이혼하고 나왔더니 연하의 잘생긴 실장님이 기다리더라'는 이야기들이랑 근본적인 구조에선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의 드라마들에서 '능동적이고 리드하는 남자와 수동적인 여자'의 도식은 완전히 깨졌다. 최근 드라마 속 여성들은 나이만 연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 능력, 로맨스의 관계에서도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열 살 이상 연상인 여성 배우들이 캐스팅될 수 있었던 것은 비단 여성 배우에게 유독 엄격한 '자기관리'의 잣대의 결과물만이 아니라, 사회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세상이 도통 변하지 않는다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세상이 좋아졌다고 과거를 기준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대신 더욱 많이 달라질 미래를 기준으로 현재를 말하고 싶다. 변화는 더디게 느껴지겠지만, 결국 세상은 지금까지 변해온 것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변할 것이니 너무 급하게 절망하고 포기하지는 말아 달라고.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결국 변화는 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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