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문턱, 이대로는 돌봄의 미래가 없다

입력
2021.11.11 04:30
"최저임금의 130% 이상 지급 필요"
돌봄을 기간산업으로 접근해야

['반값' 돌봄 노동자의 눈물]③대가 없이 좋은 돌봄은 없다<끝>

편집자주

아동 노인 장애인 등을 돌보는 돌봄 노동자는 110만명.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한 축을 떠받치고 있지만, 이들은 다른 노동자들 평균 임금의 절반만 받고 있습니다. ‘반값’으로 매겨진 돌봄 노동 문제를 <한국일보>가 3회에 걸쳐 짚어봤습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 노인들이 서울 중구의 한 복지센터에서 요양보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치매방지를 위한 미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수도권에서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하고 있는 김지현(가명·55)씨의 시급은 1만 원이 조금 넘는다. 여기에 각종 수당이 모두 포함된 줄 알았다. 하지만 동료 몇 명이 퇴사 후 노동청에 진정서를 내 활동지원센터로부터 밀린 수당을 뒤늦게 받는 걸 보고서야 자신도 연차·휴일 수당 등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됐다. 장애인활동사로 일한 지 8년 만이다. 김씨는 “내가 원래 얼마를 받았어야 하는지를 몰라서 지금까지 떼인 돈이 얼마인지도 모르겠다”며 “노조에서 3년 동안 못 받은 수당이 200만 원 정도일 거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김씨는 또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돌봄 대상 장애인과 함께 이동한 적도 많지만 유류비를 받은 적이 없다. “센터에 돈을 달라고 하기도 그렇고, 서로 간에 약속이나 규정이 없으니까 참 애매해요.”

전국 110만 명의 돌봄 노동자들이 김씨와 비슷하다. 자신이 받아야 할 임금, 즉 정부가 인건비로 책정해서 내려주는 액수가 정확히 얼마인지도 모른 채 민간기관을 통해 최저임금만 받는다. 또 근무를 위해 사용하는 통신비, 유류비 등까지 자신이 부담한다. 여기에 쪼개기 임시직 계약, 그에 따른 초단시간 노동 문제까지 겹쳐 저임금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2025년 노인 인구 1,000만 명이 되는 초고령 사회의 문턱에서,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으로는 돌봄의 미래가 없다”고 단언한다. 돌봄의 질을 낮출 뿐만 아니라 인력 수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막대한 사회적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달 1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민주노총 의료연대본부 장애인활동지원지부 주최로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공공성 강화와 장애인활동지원사 노동기본권 쟁취 총력투쟁 선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임금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현재 돌봄 노동자마다 임금을 산정하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노인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정부가 정한 수가(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인건비로 받고,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인건비 가이드라인’에 따라 임금을 받는다. 재원도 노인장기요양보험료, 국고, 지자체 예산 등 제각각이다. 아동, 노인, 장애인 등에 대한 돌봄 사업이 필요에 따라 각 정부 부처에서 산발적으로 생겨나 누더기처럼 덧대져 왔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임금체계를 정리, 모든 직군에 대해 명확한 임금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윤정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현재는 노동자마다 임금 체계가 다 달라 사실상 임금체계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임금 체계를 다시 만들고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단체 교섭 틀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45만 명에 달하는 요양보호사들의 임금 가이드라인 마련은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정부는 회의적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장기요양제도는 사회보험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국고 지원사업처럼 당장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장기요양제도의 성격을 간과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요양보호사들은 민간시설 소속이지만 장기요양제도는 사회 서비스이며 이들의 인건비는 보험료에서 나온다”며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들도 사회복지법인, 민간시설 소속이지만 공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복지부가 인건비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처럼 요양보호사 역시 이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노인요양보호사가 한 노인에게 소근육 운동을 가르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적정한 임금, 떼이지 않게

돌봄 노동자들의 임금을 법에 명확히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공공연대노조,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서비스연맹, 진보당 등 5개 단체는 지난 7월 돌봄 관련 2개 입법안을 만들었다. 모든 국민이 생애주기 전반에 좋은 돌봄을 받을 권리를 명확히 하는 ‘돌봄정책기본법’과 돌봄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돌봄노동자기본법’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적정한 돌봄 임금은 ‘최저임금의 130%’다. 입법안 마련에 참여한 국민입법센터 김정엽 실장은 “노동자가 실제 생활이 가능한 최소 수준으로 정하는 지자체의 ‘생활임금’이 대체로 최저임금의 120%”라며 “여기에 돌봄 노동이기 때문에 임금을 덜 받는 ‘임금 불이익’을 10% 정도로 간주했다”고 설명했다. 즉 생활임금 120%와 임금 불이익분 10%를 더한 금액이다. 돌봄 노동 임금 불이익은 노동자의 학력, 근속기간 등의 조건이 동일한데도 돌봄 노동이 다른 노동에 비해 저평가돼 임금을 적게 받는 것을 말한다.

법안에는 돌봄 제공기관(민간센터 등)을 통하지 않고 노동자에게 인건비를 직접 주도록 하는 ‘돌봄 임금 구분 관리제’ 도입 조항도 포함돼 있다. 김 실장은 “많은 기관들에서 임금 체불이나 착복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건설업에서 하고 있는 인건비 구분 관리 계좌를 참고해 이 조항을 넣었다”고 말했다.

또 이용자의 주거지를 방문해야 하는 돌봄 노동자들의 경우 교통비, 통신비 등을 필수적으로 지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실비로 변상하는 것도 입법안에 포함돼 있다. 이봉근 공공연대노조 정책국장은 “임금에 대한 기준을 법에 명문화하지 않으면 절대 최저임금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며 “12월에 ‘돌봄2법’ 제정을 위한 10만 명의 국회 국민청원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돌봄 노동자에 대한 입법안이 마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돌봄도 기간산업이다

정부 차원의 돌봄 노동자 정책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사회적으로 취약한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각종 법이나 정책이 만들어지지만 정작 돌봄 노동자는 아무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돌봄 서비스가 여러 부처에 나눠져 있는 데다 새로운 영역인 만큼 법에 정부의 정책적 역할을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구미영 연구위원은 “사회서비스 지원 및 사회서비스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돌봄 노동자에 대한 별도 장을 두고 이들에 대한 조사, 모니터링, 지원정책을 의무화하는 조항을 넣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정책이 수립되면 ‘돌봄 인력의 임금이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의 몇 %가 돼야 한다’를 중요한 성과 목표로 설정한 후 정부가 10년 계획 등을 세워 차근차근 임금을 올릴 수 있다”며 “또 초단시간 근로 문제 해결을 위해 월 60시간 미만 일하는 노동자 비율을 언제까지 어떤 방법으로 낮춘다는 것을 성과 지표로 관리하고, 돌봄 인력 규모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계속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돌봄 노동이 제도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을 계속 강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책과 함께 재원 투자도 동반돼야 한다. 윤정향 연구위원은 “정부가 조선·자동차· 해양·항공 등 기간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했던 것처럼 돌봄도 기간산업으로 접근해 사회간접자본(SOC)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문숙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정부의 600조 예산은 국방, 건설 등 대부분 대기업으로 흘러간다”며 “정부가 재정과 정책을 재조정해 현재 20%인 장기요양제도 국고 지원율을 50% 정도로 상향하는 등 국민에게만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이제는 돌봄을 우리 사회 중심 어젠다로 정해 돌봄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의 자원을 할당할 수 있는지 논의할 때”라고 말했다.

['반값' 돌봄 노동자의 눈물]

①민간기관의 임금 착복

②'내 돈' 내며 영업까지

③대가 없이 좋은 돌봄은 없다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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