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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냉장고에 꽂힌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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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훗날 플루토늄 원자로를 설계한 헝가리 출신 천재 핵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1898~1964)와 함께 '무동력 흡수식 냉장고'를 개발, 1930년 11월 11일 미국 특허를 획득했다.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과 10년 뒤의 일반상대성이론으로 뉴턴 역학 세계에 갇혀 있던 인류를 우주의 시간, 공간으로 이끌고 1921년 빛의 광전효과를 설명한 양자론으로 노벨상까지 거머쥔 이론물리학자가 냉장고 개발에 꽂힌 까닭은 첫째 당시 냉장고의 위험성을 방관할 수 없어서였고, 둘째 대학 시간강사로 쪼들리며 살던 후배 핵물리학자 실라르드의 생활 방편을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
아황산가스를 냉매로 쓰던 당시 냉장고는 압축기가 낡거나 파손되면 유독성 아황산가스가 새어 나와 사람을 질식시키는 사고가 잦았다. 아인슈타인은 실라르드에게 중독 위험이 거의 없고 적은 압력에도 쉽게 액화하는 부탄가스를 주 냉매로 한 냉장고를 개발하자고 제안했다. 전기장치공장을 운영했던 아버지와 숙부의 영향으로 공학적 호기심과 기술적 응용능력을 지닌 스위스 특허청 심사관 경력의 아인슈타인에게 냉장고 개발은 여흥의 과제였을 것이다.
제안은 아인슈타인이 했지만, 실제 개발은 실라르드가 했다는 설이 있다. 특허권을 공유하되, 수익이 나면 실라르드가 대학 조교 봉급만큼을 먼저 챙기고 나머지를 나누기로 했기 때문이라는, 즉 늘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이라는 해석이 있다.
핵분열 원리에서 핵폭탄의 실용화 가능성을 아인슈타인보다 먼저 깨닫고 아인슈타인으로 하여금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보내 나치보다 먼저 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경고하게 했고, 전후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맹렬한 반핵운동가로 활약했던 실라르드는 하지만, 자신들이 개발한 냉장고로 큰 재미를 보진 못했다. 냉각효율이 기존 모델보다 못했던 데다 프레온가스로 대체한 안전한 냉장고들이 잇달아 출시됐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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