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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의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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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스턴 차 사건(1773) 직후인 1775년 5월 '제2차 대륙회의'가 '대륙군' 창설안을 승인했다. 한 달 전인 4월 19일 '렉싱턴 콩코드 전투'를 기점으로 독립전쟁이 이미 시작된 상태였다. 세계 최강 군대가 그렇게 탄생했고, 조지 워싱턴이 총사령관을 맡았다.
영국 증원군이 잇달아 상륙하면서 식민지 주둔군과의 육상 전투 외에 보스턴 등 대서양 해안과 반도 기지가 주된 전장이 되었다. 대륙회의는 그해 11월 10일, 필라델피아 출신 새뮤얼 니콜라스(Samuel Nicholas, 1744~1790) 대위를 지휘관으로 한 2개 대대를 대륙 해군 소속 해병 대대(Battalions of Marines)로 편성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미 해병대가 그렇게 탄생했다.
상륙전을 전문으로 한 해병은 1776년의 나소 전투 등에서 활약하며 독립전쟁 승리에 크게 기여했고, 전쟁이 끝난 뒤인 1783년 해군과 함께 해산됐다. 전쟁 중 소령으로 승진한 니콜라스도 해병 해산과 함께 예편했다. 미 해병은 1798년 프랑스 제1제정과의 전쟁(일명 Quasi-War) 직전인 1798년 7월 부활했고, 멕시코전쟁과 미·스페인 전쟁, 한국의 신미양요(1871년)와 양차 대전을 포함, 미국의 거의 모든 전쟁에서 선봉에 서왔다. 오늘날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해병대를 편성하고 있다.
2006년 11월 10일 버지니아주 콴티코 해병기지 인근에 미 국립해병박물관이 개관했다. 2차대전 태평양전쟁 이오지마 상륙전 직후 해병의 성조기 게양 장면을 모티브로 디자인됐다는 1만1,150㎡ 규모의 전시관에는 해병이 가담한 주요 전쟁·전투 상황의 3차원 축소 모형서부터 실제 사용된 무기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미군의 역사가 곧 해병의 역사라는 엘리트 군대의 자부심을 반영하듯 해병박물관은 18세기 이래 인류 전쟁사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미 해병은 2020년 기준 약 18만 명이며, 1949년 창설된 대한민국 해병은 2018년 기준 2만9,00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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