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사라진 교황청 직원의 딸... "모든 단서는 바티칸으로 향한다"

입력
2021.11.12 05:30
17면
구독

<28> 에마누엘라 오를란디 실종 사건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2012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성 베드로 광장에서 정오 미사를 집전할 때 한 시민이 30여 년 전 실종된 에마누엘라 오를란디를 찾는 포스터를 들어 보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2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성 베드로 광장에서 정오 미사를 집전할 때 한 시민이 30여 년 전 실종된 에마누엘라 오를란디를 찾는 포스터를 들어 보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천사가 가리키는 곳을 찾아라."

2019년 발신인이 익명으로 적힌 한 장의 편지. 바티칸 내 테우토니코 묘소로 이탈리아인은 물론, 전 세계의 시선이 쏠렸다. 30여 년 전 실종된 15세 소녀의 유해가 이곳에 묻혔다는 제보였다. 워낙 큰 관심을 받은 사건이라 교황청은 이례적으로 묘소를 대중에게 공개하고 시신 발굴 작업에 협조키로 했다. 수천 개의 뼛조각이 무더기로 나오면서 진상 규명의 기대가 모였으나, 감식 결과는 실종자 가족에게 또다시 절망을 안겼다. 모든 유해가 19세기 이전의 것으로 판명된 것이다. 결국 지난해 4월 바티칸 법원은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한 채 공식적으로 수사 종결을 선언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뒷줄 가운데)과 에마누엘라 오를란디(앞줄 분홍색 스웨터)의 가족이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 미국 CNN방송 캡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뒷줄 가운데)과 에마누엘라 오를란디(앞줄 분홍색 스웨터)의 가족이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 미국 CNN방송 캡처


바티칸에 살던 15세 소녀의 실종

사건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재위하던 1983년 6월 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황청 직원이었던 부친과 함께 바티칸에 거주하던 에마누엘라 오를란디(당시 15세)는 로마 한복판의 한 음악학교에 다녔다. 예상보다 일찍 끝난 플루트 수업 후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길에 오를란디는 종적을 감췄다. 딸이 집에 오지 않자 아빠는 음악학교 주변과 바티칸 언덕 사방을 다녔지만 어떤 흔적도 찾지 못했다.

경찰이 나섰으나 로마 전역을 오를란디의 얼굴이 그려진 전단지가 뒤덮었어도 성과는 없었다. '짧은 시간만 일해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며 10대들을 유인하던 아동 성매매 조직에 연계된 한 남성이 오를란디와 함께 사라졌다는 근거 없는 제보에, 경찰은 한참 동안 엉뚱한 방향의 수사를 이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오를란디는 영영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 사건은 지금도 이탈리아인의 마음 속에선 '현재진행형'이다. 불과 2년 전에도 관련 수색 작업이 진행된 걸 보면 그 관심도를 엿볼 수 있다. 이탈리아 마피아부터 국제 테러리스트, 교황청 고위층 등이 연루된 사건이라는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9년 에마누엘라 오를란디의 유해가 묻힌 곳이라는 익명의 제보로 수사당국이 수색에 나섰던 바티칸 내 테우토니코 묘소 모습.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9년 에마누엘라 오를란디의 유해가 묻힌 곳이라는 익명의 제보로 수사당국이 수색에 나섰던 바티칸 내 테우토니코 묘소 모습.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바티칸-마피아 검은 거래의 희생자?

오를란디 실종과 관련, 가장 큰 특징은 모든 단서가 항상 바티칸과 이어진다는 점이다. 강력했던 가설 중 하나는 '이탈리아 마글리아나 지역 마피아가 교황청 직원인 오를란디의 부친을 협박하기 위해 딸을 납치했다'는 설이다. 협박 이유에 대한 시나리오도 여럿이다. 오를란디의 아빠가 바티칸과 마피아 간 유착 관계를 알고 있어 이를 입막음하려는 시도라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바티칸에 빌려준 거액의 돈을 회수하려고 범죄를 꾸몄다는 얘기도 나온다.

음모론 정도로 넘길 수 있는 내용이 크게 회자된 것은 2005년 이후였다. 당시 한 '실종자 찾기' TV 방송에 익명의 시청자가 "오를란디 실종 사건의 단서를 성당에 있는 마피아 두목 엔리코 데페디스 무덤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제보한 게 발단이 됐다. 3년 뒤에는 데페디스와 연인 관계였던 여성 사브리나 미나르디가 "납치범은 데페디스"라고 주장하면서 의혹이 더 확산됐다. 미나르디는 "당시 교황청의 폴 마신커스 추기경이 바티칸은행장 재임 시절 암브로시아노 은행에 투자를 몰아줬던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 했고, 이런 사실을 아는 오를란디의 아버지를 협박하고자 납치 범죄를 데페디스에게 청부했다"고 주장했다.

한 번 불붙은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2012년 교황청은 성당 내 데페디스의 무덤을 수색하도록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주인을 알 수 없는 뼈로 가득한 수상한 상자가 여러 개 발견됐으나, 오를란디 실종 사건의 증거는 없었다.

사건은 다시 미궁으로 빠졌지만, 바티칸의 명예에는 흠집이 났다. 이 일로 역대 교황들이 묻힌 성아폴리나레 성당에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돼 버린 탓이다. 교황청이 1990년 숨진 데페디스의 부인에게 당시 돈으로 10억 리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1조 원에 가까운 돈을 받고 망자를 성당에 매장하도록 허락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이 돈이 선교사업과 성아폴리나네 성당의 재건에 쓰였다고 해도, "바티칸이 돈을 받고 마피아에게 면죄부를 팔았다"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었다.

2019년 에마누엘라 오를란디의 유해가 묻혀 있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경찰 등이 바티칸 내 테우토니코 묘소를 조사했던 현장 모습. 교황청 홈페이지 캡처

2019년 에마누엘라 오를란디의 유해가 묻혀 있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경찰 등이 바티칸 내 테우토니코 묘소를 조사했던 현장 모습. 교황청 홈페이지 캡처


"교황 암살 미수범 석방 노린 납치"

교황 암살 미수범의 연루설도 큰 주목을 받았다. 오를란디의 부모는 딸이 사라진 지 며칠 후 익명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건네진 말은 "메흐메트 알리 아그카를 풀어주면 딸의 무사 귀가를 보장하겠다"는 얘기였다. 터키 출신인 아그카는 1981년 5월 13일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서 일반 알현을 하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총격을 가하며 암살을 시도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무려 16번의 통화 끝에 어떤 단서도 확보되지 않았고, '심각한 장난 전화' 정도로 마무리됐다.

그 이후, 교황 암살 미수범과 실종 사건을 연결 짓는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암살 시도 배후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오를란디의 실종도 '더 거대한 권력 다툼'과 연결됐다는 소문까지 났다. 일례로 옛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까지 등장했다. 당시 요한 바오로 2세가 폴란드에서 결성된 공산권 최초의 자유노조연대를 지지하자, 동유럽의 민주주의 혁명을 우려한 소련이 교황 암살을 시도했다는 음모론이다. 이 가설은 KGB가 자신의 '요원'을 되찾기 위해 오를란디를 납치했다는 의혹으로까지 확장됐다. 심지어 이탈리아 의회 조사 보고서에도 이런 내용들이 포함됐지만, 뚜렷한 증거는 없다.

일각에서는 협박 전화를 건 인물이 마신커스 추기경이란 말까지 나왔다. 이탈리아 정보국(SISDE) 차장을 지낸 빈센조 파리시는 "협박범의 영어 억양이 상당히 인상적이라 '아메리카노'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미국 출신인 마신커스 추기경과 비슷하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마피아 연루설에서도 거론됐던 마신커스 추기경(2006년 사망)은 바티칸은행장 재임 당시 주거래처였던 암브로시아노은행이 파산한 후 각종 부정부패 의혹에 등장했던 인물이다. 2012년 그의 측근인 로베르토 칼빈 전 암브로시아노 은행장이 영국 런던의 한 다리 밑에서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되기도 했다. 마신커스 추기경을 둘러싼 온갖 의혹은 더욱 부풀어 올랐다.

2019년 바티칸 앞에서 '에마누엘라 오를란디 실종 사건' 수사에 대한 교황의 적극적 협조를 촉구하던 시위대 중 한 명이 "당신은 그녀가 천국에 있다고 말했지만, 그의 시신은 어디에 있느냐"는 문구가 적힌 종이 옷을 입고 있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9년 바티칸 앞에서 '에마누엘라 오를란디 실종 사건' 수사에 대한 교황의 적극적 협조를 촉구하던 시위대 중 한 명이 "당신은 그녀가 천국에 있다고 말했지만, 그의 시신은 어디에 있느냐"는 문구가 적힌 종이 옷을 입고 있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모든 단서는 바티칸으로"…진실을 찾는 가족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이 미제 사건을 둘러싼 각종 가설은 묻히지 않았다. 교황청과 지역 경찰, 지역 의원들, 외국 외교관들이 오를란디와 같은 어린 소녀들을 납치해 성노예로 삼았다는 식의 음모론도 불거졌다. 2016년에는 이 사건을 다룬 '진실은 하늘에'라는 제목의 영화까지 제작됐다.

오를란디의 오빠 피에트로는 2021년에도 동생을 찾고 있다. 그는 '모든 유형의 단서가 항상 바티칸으로 이어졌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바티칸이 사건 발생 당시부터 적극적으로 수색을 도왔더라면, 동생의 실종 사건이 장기미제로 남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원망도 한다. 가장 최근인 지난 6월에도 오를란디 가족의 변호인인 로라 스그루는 이탈리아의 일간 일지오르날레와의 인터뷰에서 "오를란디의 가족은 그가 납치됐고, 협박에 이용됐다고 여긴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아직 살아 있는 인물들이 연루된 어떤 '미지의 사건'과 얽혀 비밀이 유지되고 있지만, 언젠가는 진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에마누엘라 오를란디가 실종된 지 30년이 된 2013년 추모식에서 에마누엘라의 오빠인 피에트로(맨 앞줄 가운데 흰 티셔츠)의 주변으로 촛불과 풍선을 든 추모객들이 모여 있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에마누엘라 오를란디가 실종된 지 30년이 된 2013년 추모식에서 에마누엘라의 오빠인 피에트로(맨 앞줄 가운데 흰 티셔츠)의 주변으로 촛불과 풍선을 든 추모객들이 모여 있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진달래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