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쏠림 돌봄 위탁...사회서비스원 기준도 후퇴

입력
2021.11.11 11: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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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서비스원 관련 법 내년 시행
'민간 기피 분야 우선 위탁' 으로 한정
돌봄 노동자 처우 및 돌봄 질 향상 의문

편집자주

아동 노인 장애인 등을 돌보는 돌봄 노동자는 110만명.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한 축을 떠받치고 있지만, 이들은 다른 노동자들 평균 임금의 절반만 받고 있습니다. ‘반값’으로 매겨진 돌봄 노동 문제를 <한국일보>가 3회에 걸쳐 짚어봤습니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조합원들이 올해 9월 14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돌봄서비스 공공성 확보와 돌봄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서울시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조합원들이 올해 9월 14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돌봄서비스 공공성 확보와 돌봄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서울시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보육과 어르신 돌봄 등 사회서비스를 국가가 직접 제공하는 기반을 마련하겠습니다."

2017년 4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는 정책 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에서 사회서비스공단(현 사회서비스원) 설립을 약속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린이집이나 요양원 등 사회서비스 기관의 90%를 민간이 운영하는 상황에서 이를 정부에서 직접 책임져 서비스의 질뿐 아니라 종사자 처우도 개선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집권 4년차인 올해 8월 드디어 설립 근거가 되는 사회서비스 지원 및 사회서비스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 내년 3월 시행된다. 전국 17개 광역시·도에 각각 1곳의 사회서비스원을 설치하겠다는 목표도 내년이면 달성될 전망이다.

길었던 개점 휴업을 끝내고 기지개를 켜는 사회서비스원. 성과를 평가하기엔 이르지만 양질의 일자리와 공공성 확대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원안에서 후퇴한 관련 법이 취지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어서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대 국회에서 당초 발의한 법안에는 '국공립 기관 우선 위탁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법 이후 시작되는 돌봄 사업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민간보다 우선해 맡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민간영역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관련 업계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민간이 기피하는 분야'에만 한정해 우선 위탁을 받을 수 있도록 수정됐다.

공공재원이 투입되는 돌봄 노동이 주로 민간기관에 위탁되면서 임금 중간 착복(중간착취) 등의 문제가 만연하고 서비스질 저하로 이어지고 있지만, 향후에도 공공 중심의 돌봄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장 사회서비스원을 '성공이냐 실패냐'라고 평가하기엔 한계가 있지만 설립 목표와 맞게 가고 있는가는 의문"이라면서 "지금대로라면 민간에서 기피하는 일부만 공공이 가져가는 한정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법 통과 이전인 2019년 시범사업으로 출범했던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은 첫 어린이집 공모였던 같은 해 중랑구 산하 어린이집 운영자 공모에서 개인 자격으로 참가한 이모씨에게 밀려 탈락하기도 했다.


2017년 4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는 정책 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에서 사회서비스공단(현 사회서비스원) 설립을 약속하면서 돌봄의 국가 책임을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제공

2017년 4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는 정책 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에서 사회서비스공단(현 사회서비스원) 설립을 약속하면서 돌봄의 국가 책임을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제공

사회서비스원이 몸통이라면 '손발' 격인 직영 돌봄 시설의 확충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사회서비스원 시범사업 추진계획을 밝히면서 직영 시설로 보육시설(어린이집) 510개소, 요양시설 344개소, 종합재가센터 135개소를 2022년까지 세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목표 달성률은 각각 5.5%(28개소), 0.8%(3개소), 21.5%(29개소)로 처참하다. 심지어 목표를 달성했더라도 2020년 기준 사회복지시설이 6만 개소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사회서비스 중 아주 작은 부분에 그친다.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서비스원은 공공 돌봄 인프라 확대와 맞물려 가야 한다"라고 했다. 공공이 사회서비스의 전반적 질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 20~30%의 질 높은 공공시설을 운영해야 하는데 지금대로라면 여전히 민간에 위탁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사회서비스원을 통해 꾀하려던 돌봄 노동자의 처우 개선도 답보 상태다. 복지부는 사회서비스원마다 돌봄노동자의 50%가량을 월급을 받는 정규직으로 고용하겠다는 지침을 세웠다. 그러나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2021년 하반기 기준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월급제 고용비중 86.1%)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사회서비스원(경기·인천·대구·강원·경남·세종·충남·광주)의 월급제 돌봄 노동자는 '0명'으로 전부 시간제다. 해당 지역은 모두 시범사업 중이다. 한 지자체의 사회서비스원 관계자는 "일단 시간제로 뽑았다가 재정자립도 등을 고려해 추후 월급제로 차차 바꿔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다만 우여곡절 끝에 법안이 통과, 사회서비스원이 운영되는 마당에 비관론보다는 향후 발전과 개선을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학계나 현장에서도 법안이 원안보다 후퇴되면서 아예 법안을 철회하자는 측과 일단 통과시키고 법을 고치자는 의견이 엇갈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간 중심의 돌봄 서비스 구조를 한순간에 바꿀 순 없겠지만 사회서비스원법이 통과된 만큼 일종의 메기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값' 돌봄 노동자의 눈물]

①민간기관의 임금 착복

②'내 돈' 내며 영업까지

③대가 없이 좋은 돌봄은 없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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