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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공권력-범죄집단의 공생

입력
2021.11.0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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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터키 '수수르루크 스캔들'

터키 최악의 정치-범죄 스캔들로 꼽히는 '수수르루크 스캔들'을 드러낸 교통사고 현장. duvarenglish.com

터키 최악의 정치-범죄 스캔들로 꼽히는 '수수르루크 스캔들'을 드러낸 교통사고 현장. duvarenglish.com

1996년 11월 3일, 터키 서부 수수르루크(Susurluk)시 인근 고속도로에서 과속 메르세데스 승용차가 대형 트레일러를 들이받아 승용차에 탄 세 명이 숨지고 한 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났다. 사망자는 스위스 감옥에서 탈옥(1990)해 인터폴 수배를 받던 악명 높은 범죄자 압둘라 캐틀리(Abdullah Catli, 당시 40세), 친정부 쿠르드 민병대를 이끌며 의회에 진출한 정치인(Sedat Bucak), 미인대회 우승 경력의 27세 여성 모델(Gonca Us)이었고, 중상자는 반군 게릴라 소탕작전을 지휘하던 이스탄불 경찰청 차장(Husseyin Kocadag)이었다.

사고 차량에선 권총과 소음기 등 다량의 무기가 발견됐고, 캐틀리는 터키 외교관 여권과 위조 신분증 6개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회색 늑대들'이라는 극우행동대를 이끌며 1978년 앙카라 좌파 학생운동가 일곱 명을 살해하고 1981년 교황 바오로2세 저격사건에도 연루된 청부살인자이자 헤로인 밀수의 큰손이었다.

당시 내무장관은 경찰 간부가 범죄자들을 체포해 호송하던 길이었다고 해명했다가 사망자들의 오랜 '거래'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퇴했고, 경찰청장과 부총리도 옷을 벗었다. 현역 총리 네크메틴 에르바칸(Necmettin Erbakan)도 1997년 6월 사임했다.

터키 시민들은 검찰도 경찰도 밝히지 못한, 아니 애써 비호해온 정치-경찰-범죄집단의 유착 관계와 정치인 운동가 언론인을 포함한 암살사건 수천여 건의 정황적 진실을 그렇게 알게 됐고, 사고트럭 운전자를 '영웅'이라 불렀다.

훗날 총리를 지낸 당시 야당 정치인 메수트 일마즈(Mesut Yilmaz)는 여당 정치인의 부패와 범죄 연루 의혹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 수사를 촉구하다 우파 청년에게 맞아 코뼈가 부러지기도 했다. 그는 "정치권력이 더러운 돈과 범죄적 폭력과 뭉쳐서 국가를 장악하면 민주주의적 수단을 통한 우리의 싸움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비리의 전모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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