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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찹찹 레이디'... 손가락질당한 억울한 죽음들

입력
2021.10.22 04: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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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필리핀 '찹찹 레이디' 토막살인 사건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1967년 5월 말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토막 난 시신으로 발견된 루실라 랄루의 생전 모습. 필리핀을 경악하게 만든 이른바 '찹찹 레이디(chop-chop lady·토막 난 여성)' 사건의 시작을 알린 첫 희생자였다. 트위터 캡처

1967년 5월 말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토막 난 시신으로 발견된 루실라 랄루의 생전 모습. 필리핀을 경악하게 만든 이른바 '찹찹 레이디(chop-chop lady·토막 난 여성)' 사건의 시작을 알린 첫 희생자였다. 트위터 캡처

1967년 5월 29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 자정에 가까운 시각, 평소와 다름없이 일하던 한 환경미화원이 쓰레기 더미에서 신문으로 감싸여 있는 물체를 발견했다. 단순한 호기심이었을까, 이상한 낌새를 맡은 것일까. 신문지를 펼치자 상상도 못 했던 정체가 드러났다. 깔끔하게 4개 조각으로 나뉜, 사람의 다리였다.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시신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다음날엔 마닐라의 과달루페 다리 근처에서 사람 몸통이 발견됐다. 팔이 달려 있었으나, 머리는 없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신문지에 싸인 채였다. 필리핀 경찰은 가까스로 조각난 시신에서 지문을 채취했고, 피해자 신원을 확인했다. 28세 여성 루실라 랄루. 필리핀 사회에 충격과 공포를 안긴, 이른바 ‘찹찹 레이디(chop-chop lady·토막 난 여성)’ 사건의 시작이었다.

애정 관계로 엮인 용의자들

경찰은 용의자 파악에 나섰다. 일단 희생자의 주변인들에 대한 탐문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체포된 건 랄루의 연인이었던 플로란테 렐로스(당시 19세)였다. 하지만 곧 풀려났다. 지인들이 “둘의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고 진술한 데다, 얼마 전까지 랄루가 렐로스의 일자리를 알아봐 준 사실도 있는 등 살해 동기를 찾기 힘들었던 탓이다. 결정적으로 경찰은 부검을 통해 랄루가 시신 발견 전날 저녁 또는 당일 오전 사망했다고 판단했는데, 렐로스는 해당 시간대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확실했다.

다음으로 수사망에 포착된 건 랄루와 사실혼 관계였던 남편 아니아노 드베라(당시 42세)였다. 랄루의 지인들은 “최근 두 사람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들의 6세 아들도 랄루의 모친 집에 맡겨졌다”고 진술했다. 게다가 사건 한 달 전, 드베라는 랄루가 운영하는 뷰티숍을 찾아가 총을 쏘기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드베라는 “5월 28일 오후 6시30분쯤 랄루의 가게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을 뿐이고, 그 이후엔 연락이 되지 않았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경찰은 그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집중했다.

자백과 번복… 사건은 미궁 속으로

필리핀 '찹찹 레이디' 사건의 희생자인 루실라 랄루의 어린 시절 모습. 트위터 캡처

필리핀 '찹찹 레이디' 사건의 희생자인 루실라 랄루의 어린 시절 모습. 트위터 캡처

그런데 갑자기 의외의 인물이 범인을 자처하며 등장했다. 치과대학 학생이던 호세 루이스 산티아노(당시 28세)였다. 시신 발견 약 2주 후쯤, 경찰에 자진 출석한 그는 “(사건 발생) 당시 의식을 잃긴 했지만, 내가 랄루를 목 졸라 죽인 건 기억한다”고 털어놨다.

산티아노의 자백에 따르면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랄루는 5월 28일 뷰티숍을 찾은 산티아노를 유혹하려 했다. 산티아노가 거절하자 랄루는 “스캔들을 일으키겠다”면서 협박했다. 이성을 잃은 산티아노는 랄루의 목을 졸랐다. 정신을 차려 보니 랄루는 이미 죽어 있었고, 산티아노는 시신을 토막 낸 뒤 냉동고에 보관했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이동하며 마닐라 곳곳에 랄루의 시신을 버렸다.

산티아노는 필리핀 경찰의 최초 가설과도 일치하는 용의자였다. 수사당국은 너무나 깔끔한 시신 절단 흔적에 비춰 ‘칼을 잘 다루거나, 의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 범인’이라고 예측했다. 치과대학에 다니던 산티아노한테 딱 맞는 조건이었다.

자백뿐 아니라, 정황 증거도 산티아노를 가리켰다. 시신은 냉동보관 상태에서 차량에 의해 운반된 것으로 추정됐는데, 1967년 당시 ‘대형 냉동고와 자동차를 소유할 정도의 경제력이 있는 사람’에는 렐로스나 드베라보다는 산티아노가 더 적합했다. 퇴임한 고위급 군 장교(대령)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1967년 6월 필리핀 일간지인 '선데이타임스' 1면 모습. 사흘 전 '내가 랄루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던 호세 루이스 산티아노가 해당 진술을 번복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게재돼 있다. 트위터 캡처

1967년 6월 필리핀 일간지인 '선데이타임스' 1면 모습. 사흘 전 '내가 랄루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던 호세 루이스 산티아노가 해당 진술을 번복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게재돼 있다. 트위터 캡처

하지만 산티아노는 사흘 후 진술을 뒤집었다. 그는 “난 살인자가 아니라 우연한 목격자에 불과하다. 경찰의 강요로 거짓 자백을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건 현장에는 남자 3명이 있었는데, 이들 중 2명이 랄루를 목 졸라 살해했다. 다른 한 명은 내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곤 ‘발설하면 너도 랄루처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고 설명했다. 또, “며칠간 내 집에는 ‘그날 본 장면을 입 밖에 꺼내지 말라’는 협박편지까지 왔다”고 덧붙였다.

물론 경찰은 이를 믿지 않았다. 산티아노가 부친 및 변호사와 상의한 직후 진술을 번복한 만큼,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뒤늦게 자백을 철회한 것으로 여겼다. 결국 당국은 산티아노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법원 판단은 ‘무죄’였다. 재판부는 우선 “치대 1학년생에 불과한 산티아노가 시신을 깔끔하게 절단할 외과적 기술을 지니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경찰과는 정반대의 해석이었다. 아울러 △산티아노의 진술이 일관적이지 않았던 점 △“산티아노는 경찰로부터 자백을 강요받았다”는 제3자(노라 에비오 박사) 증언 등도 고려됐다. 또 머리 등 시신의 나머지 부분이 발견되지 않은 점도 재판부 결론에 영향을 줬다. 유력 용의자였던 산티아노는 석방됐다. 진범을 찾으려는 수사도 다시 미궁에 빠졌다.

'찹찹 레이디(chop-chop lady)'의 탄생

문제는 필리핀 사회의 관심이 랄루를 끔찍하게 죽인 살인범을 잡는 데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민들의 관심은 다른 곳을 향했다. 살인 사건 자체에 대한 분노보다는, 랄루의 사생활에 집중했다는 얘기다. 용의선상에 올랐던 렐로스나 드베라, 산티아노 모두 랄루와 ‘애정 관계’로 엮인 남성이라는 사실 탓인지 이 사건은 순식간에 나라 전체의 가십이 됐다. “랄루에게 또 다른 연인이 있었다”는 언론 보도가 쏟아졌고, ‘사실혼 관계 남편’이었던 드베라가 원래 다른 여성과 결혼한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시민들은 랄루를 손가락질하고 나섰다.

랄루는 어느새 이름 대신 ‘찹찹 레이디’로 불리기 시작했다. 영어 단어 ‘Chop’은 고기를 썰거나 토막 낸다는 뜻으로, 결국 조각조각 절단된 채 발견됐던 랄루의 시신을 빗댄 표현이었던 셈이다. 랄루는 희생자로서 존중받거나 추모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문란한 사생활을 했던, 정숙하지 못해 토막 살인으로 삶의 끝을 맺은 여성’으로만 기억될 뿐이었다.

필리핀의 ‘찹찹 레이디’는 랄루 한 명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시작에 불과했다. 여성 토막 살인 사건 발생 때마다 희생자들은 ‘찹찹 레이디’로 불렸다. 모두 연인 관계에 있거나 자신을 좋아하던 남성에 의해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1993년 9월 내연남이었던 미국인 마크 위젠헌트에게 살해된 엘사 카스티요가 대표적이다.

2017년 1월 필리핀 카비테의 한 도로에서 토막 난 시신으로 발견된 17세 여성 미치 밸룬지의 생전 모습. 밸룬지도 '찹찹 레이디'로 불리고 있다. 트위터 캡처

2017년 1월 필리핀 카비테의 한 도로에서 토막 난 시신으로 발견된 17세 여성 미치 밸룬지의 생전 모습. 밸룬지도 '찹찹 레이디'로 불리고 있다. 트위터 캡처

지금도 ‘찹찹 레이디’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2017년 1월 카비테의 한 도로에선 17세 여대생 미치 밸룬지의 시신이 토막 난 채 상자 안에 버려진 것이 발견된 일이 있었다. 밸룬지는 그와 사귀고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는 동기 남학생에 의해 변을 당했다. 역시 ‘찹찹 레이디’로 불렸다. 다만 최근 들어선 반성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잔혹한 살해 방식과 피해 여성의 사생활 등에 집중할 게 아니라, 무엇보다 ‘희생자 추모’가 우선이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랄루는 마닐라로 상경해 뷰티 사업을 운영했다. 카스티요는 자동차 회사에 다녔다. 밸룬지는 관광학을 공부하던 대학생이었다. 필리핀 잡지 에스콰이어는 “‘찹찹 레이디’로 일컬어졌던 피해자들 모두 그런 방식으로 살해되어선 안 됐을, 소중한 삶을 영위하고 있던 똑똑한 여성이자 성공한 여성이었다”면서 이들의 죽음을 애도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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