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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157만명이 찾았던 국립공원, 두 여성이 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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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 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한국일보>
1996년 6월 1일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州) 셰넌도어 국립공원이 발칵 뒤집혔다. 공원 내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스카이라인’ 도로에서 1㎞도 채 안 되는 지점에서 20대 여성 시신 두 구가 발견됐다. 둘은 손과 발이 묶여 있었고,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었다. 날카로운 흉기에 찔린 목은 끔찍할 정도로 훼손돼 있었다. 성폭행 흔적은 없었다. 셰넌도어 국립공원 관계자는 “322㎢(약 9,742만 평) 규모의 국립공원에서 행방불명되는 경우는 우발적 낙상이나 길을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 사건은 공공장소인 데다, 도로와도 가까웠고, 목격자나 증거가 없었다는 점에서 너무나 충격적이었다”고 밝혔다.
희생자는 캠핑을 하기 위해 일주일 전 국립공원을 찾은 줄리앤 윌리엄스(당시 24세)와 로라 위넌스(당시 26세)였다. 사건 발생 2년 전 여성의 모험 활동 증진을 위한 비영리 단체 ‘우즈우먼(Woodswomen)’에서 처음 만나 친해진 두 사람은 등산과 캠핑, 자전거 타기 등 야외 스포츠를 함께 즐겼다. 비극으로 끝난 마지막 여행도 윌리엄스의 취업을 기념하기 위한 둘만의 여정이었다. 윌리엄스는 시신으로 발견된 6월 1일 첫 출근을 할 예정이었다. 위넌스는 메인주 유니티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20대 여성 살인 사건에 미국 전역이 들썩였다. 우발적 범행에서부터 여성 혐오, 동성애 증오 범죄 가능성까지, 온갖 추측이 쏟아졌다. 하지만 수사는 진척되지 않았다. 1996년 한 해 동안 공원을 찾은 사람만 157만 명이었다. ‘야외’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었던 탓에 증거는 빠르게 사라졌다. 범죄 현장은 보존되지 못했다. 목격자도 없었다. 사건 이후 1년간 미 연방수사국(FBI)과 국립공원관리청은 약 1만5,000명을 추적했으나, 용의자 특정조차 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약 1년 후인 1997년 7월, 셰넌도어 국립공원은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윌리엄스와 위넌스가 살해된 ‘스카이라인’에서 자전거를 타던 캐나다 여성 관광객 이본 말바샤가 한 남성한테 납치당할 뻔한 사건이 일어났다. 말바샤의 증언에 따르면, 자전거를 타고 가던 그의 옆으로 트럭 한 대가 접근했다. 천천히 속도를 줄이던 트럭은 자전거 옆으로 바싹 들이대며 말바샤를 위협했다. 자전거를 세우자 트럭에 탄 남성이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퍼부었다. 곧이어 트럭에서 내리더니 말바샤를 붙잡고는 트럭에 억지로 태우려고 했다. 저항의 몸부림을 치던 그는 도로 아래 수풀로 굴러떨어졌고, 남성은 결국 납치를 포기한 채 황급히 트럭을 몰고 현장을 떠났다.
다행히 공원 관리인을 금세 만난 말바샤의 신고로, 공원을 빠져나가려던 용의자 남성이 붙잡혔다. 이름은 다렐 데이비드 라이스(당시 28세), 라이스는 국립공원에서 150㎞가량 떨어진 메릴랜드주 컬럼비아에서 홀로 살고 있었다. 사건 발생 한 달 전인 그 해 6월 직장에서 난폭 행위 등 이유로 해고됐고, 범죄 전과는 없었지만 마약 혐의와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의 동료는 경찰 조사에서 “(라이스는) 직장에서 성(性)적 폭언을 퍼부었고, 회사 기물을 파손하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라이스는 이듬해 납치 미수 혐의 유죄가 인정돼 135개월(11년 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검찰은 라이스를 윌리엄스·위넌스 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목했다. 유사한 범행 장소, 여성에 대한 적대감 표출 등 이유로 재조사가 이뤄졌다. 그의 트럭에서 손과 발을 묶을 때 쓰는 도구들도 발견됐다. 공원 출입 기록도 나왔다. 윌리엄스와 위넌스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1996년 5월 25일, 라이스도 셰넌도어 국립공원을 방문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특히 두 사람의 시신이 발견된 6월 1일, 라이스가 친구와 함께 공원을 다시 찾은 것도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물론 라이스는 범행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은 라이스가 말바샤 사건 조사 당시 수차례에 걸쳐 “여성이 남성보다 더 취약하기 때문에 폭행 대상이 된다”고 주장했다는 점에 근거, 그가 여성 증오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2002년 4월 검찰은 라이스를 윌리엄스·위넌스 살해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당시 그는 말바샤 납치 미수 혐의로 복역 중이었다.
하지만 증거가 부족했다. 2004년 법원은 증거불충분으로 공소기각 결정을 내렸다. 윌리엄스와 위넌스를 결박한 끈에서 검출된 유전자정보(DNA)가 라이스와 불일치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다시,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1996년 버지니아주에서 발생한 끔찍한 사건은 또 있다. 당시 버지니아주를 남북으로 통과하는 29번 도로에서는 여성들이 납치될 뻔한 사건이 잇따르고 있었다. 이른바 ‘29번 도로 스토커’ 사건이다. 납치 방법도 일관성이 있었다. 피해 여성들에 따르면 우선 트럭을 탄 남성이 여성 운전자 탑승 차량을 향해 경적을 울리거나 헤드라이트를 번쩍거리며 멈추라는 신호를 보낸 뒤, 실제 차량이 멈춰 서면 여성의 차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접근했다. 이후 여성에게 ‘내 차에 일단 타라’며 자신의 트럭에 태워 납치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약 20명이 피해를 호소했고, 이 중 대부분은 차량에서 내리지 않거나 도망을 쳐서 위기를 모면했다고 했다.
납치 미수에 그쳤던 ‘29번 도로 스토커’ 사건은 1996년 5월 7일 버지니아주 매디슨카운티에서 알리시아 쇼월터 레이놀드(당시 25세)가 살해된 채 발견되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윌리엄스·위넌스 살해 사건 발생 한 달 전이었다. 같은 해 3월 2일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살던 레이놀드는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 사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직접 차를 몰고 29번 도로를 탔다. 그러나 약속 시간에 레이놀드는 도착하지 못했고 실종됐다. 그의 차량은 샬러츠빌에서 80㎞가량 떨어진 컬페퍼시 29번 도로에서 발견됐다. 차량 앞유리에는 ‘차가 고장 났다’는 문구가 적힌 흰 냅킨이 꽂혀 있었다. 하지만 검사 결과, 차에는 아무 이상도 없었다. 오히려 29번 도로에서 발생했던 종전 납치 미수 사건들과 유사한 정황이 발견됐다. 레이놀드가 파란색 트럭을 탄 남성과 대화하는 장면을 본 목격자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경찰은 이들의 증언을 종합해 수사망을 좁혀 갔다. 용의자 특성은 △키 180㎝ 미만 중간 체격의 갈색 머리 △‘래리 브리든’이라는 이름 사용 △다양한 트럭을 보유 중인 30대 남성 등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당시 버지니아주 스포티실베니아카운티에서 10대 소녀 3명을 잇따라 납치, 성폭행한 뒤 살해한 연쇄살인범 리처드 에보니츠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다. 범행 시기와 지역, 수법이 비슷하다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뚜렷한 증거는 없었다. 레이놀드의 시신에서 나온 DNA는 에보니츠와 일치하지 않았다. 에보니츠는 2002년 경찰과의 추격전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뒤늦게 라이스가 또다시 수사선상에 올랐다. 레이놀드 사건 당시 라이스는 20대였던 탓에 수사망을 피했었는데, 이후 29번 도로 납치 미수 피해 여성 중 한 명이 그를 용의자로 지목한 것이다. 게다가 라이스의 부친 집이 레이놀드 실종 장소인 컬페퍼에 있었고, 부친이 푸른색 트럭을 소유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며 유력 용의자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증언의 신빙성 부족, 증거불충분 등으로 기소는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1996년 버지니아주에서 세 여성을 살해한 용의자로 꼽혔던 라이스는 이듬해 말바샤 납치 미수 사건 혐의만 인정돼 옥살이를 한 뒤 2007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이후 보호관찰 위반으로 9개월간 재수감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FBI는 최근 윌리엄스·위넌스 사건 관련 정보를 담은 공개 수배 전단을 배포했다. 이 사건을 담당 중인 애덤 리 FBI 요원은 “윌리엄스와 위넌스를 살해한 범인이 거기서 범죄 행각을 멈췄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범인과 증거가 있을 것이고, 다른 범죄들과도 연결돼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찾을 것이며, 새로운 기술을 동원해 물리적 증거를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1986~1991년 경기 화성에서 여성 1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이춘재가 28년 만에 잡혔다. 대표적 장기미제였던 이 사건은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제작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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