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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아보기 연구소] 임신한 아시아 여성의 시체... 도시엔 악취가 진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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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방 하나가 해변 위로 밀려온다. 검은 머리칼이 삐져나와 있다. 아시아 여성이 가방 속에 있다. 가방이 발견된 곳은 세계적인 명소인 호주 시드니 본다이 비치. 풍광이 무색하게 끔찍한 사건이다.
수사는 형사 로빈(엘리자베스 모스)이 맡는다. 뉴질랜드에서 소녀 성폭행 사건을 수사하다 용의자를 비호하던 상사에게 총을 쏴 최근 경찰 내부에서 문제가 됐던 인물이다. 빼어난 수사력을 지닌 형사이나 동료들은 그를 무시하거나 놀리거나 평가절하한다. 후배 여경찰 미란다(그웬돌린 크리스티)만이 로빈을 따른다.
숨진 아시아 여성을 부검하니 임신한 상태였다. 기이하게도 태아 유전자가 여성과 일치하지 않는다. 대리모였을 확률이 높다. 로빈은 아시아 여성이 주로 일하는 성매매 업소를 조사한다. 그들은 어학연수 비자로 호주에 편법 입국한 후 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 만큼 업주의 부당한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고 신체적 위험에 노출돼 있다. 시드니는 평화롭고 부유하지만 로빈이 성매매 업소를 들출수록 악취가 풍긴다. 사람들은 아시아 여성을 통해 자신들의 육체적·정신적 욕망을 충족시키려 한다.
수사로 바쁜 로빈은 한 가지 고민이 있다. 10대 시절 원치 않게 임신한 후 출산해 입양 보낸 딸이 자신을 찾고 있어서다. 만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이후 감당해야 할 혼란이 두렵다. 아이가 자신을 미워할까 봐 쉬 결단을 못 내리기도 한다.
로빈의 17세 딸 메리(앨리스 잉글러트)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 파이크(이원 레슬리)는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고, 어머니 줄리아(니콜 키드먼)는 교사다. 양부모는 교양을 지녔고, 메리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지만 메리는 반항심이 넘친다. 생모를 못 만난 데다 줄리아의 정치적 올바름이 거슬리고, 그녀의 새로운 연애가 경멸스러워서다. 메리는 옛 동독 출신 40대 사내 푸스(다비드 덴칙)와 위태로운 사랑을 나누고 있기도 하다.
로빈 주변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오해와 선입견과 무지가 넘쳐난다. 남성 경찰들은 아시아 여성 시체를 발견하자 ‘중국 소녀(China Girl)’이라고 지칭한다(정작 피해자는 태국인이다). 데이비드 보위와 이기 팝이 함께 부른 동명 노래를 연상시킨다. 피해자를 오리엔탈리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남성 경찰들은 동료 여성 경찰을 무능력하다고 여기면서 수작을 걸 상대로만 생각한다.
드라마가 까발리려고 하는 것은 범죄보다 가부장제 사회의 위선과 부조리다. 푸스는 그런 점에서 상징적이고도 문제적인 인물이다. 동구권 몰락이라는 혼란기를 겪은 그는 모든 권위를 무시하는 듯하지만 단단한 도그마에 갇혀 있다. 푸스는 어린 메리를 정신적으로 구속하고 육체적으로 학대한다. 메리는 그런 푸스의 악행을 사랑으로 여긴다.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다. 푸스는 여성을 향해 아무렇지 않게 물리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로빈과 양부모는 푸스로부터 메리를 보호하려 하나 이는 본다이 비치에서 발생한 사건 해결보다 더 난제다.
‘탑 오브 더 레이크’(2013)의 시즌2에 해당한다. 둘을 묶어서 보면 좋다. 시즌1은 뉴질랜드 해변가 어느 마을에서 12세 아시아계 소녀가 임신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린 소녀를 누가 임신시켰는지 용의자들이 부상하면서 마을의 추악한 면모가 드러난다. 몰입도는 시즌1이 더 강하다. 스크린 밖 주목해야 할 인물은 제인 캠피온 감독이다. 시즌 1,2 극본을 썼고, 일부 에피소드를 연출하기도 했다. 캠피온 감독은 1994년 여성으로선 최초로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안았다. 1970~80년대 유행했던 네오 누아르 형식을 차용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퇴폐적이면서도 몽환적이고 쓸쓸한 음악이 그 단서다. 메시지 전달 강박이 재미를 반감시키지만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여러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로튼토마토 관객 신선도 지수가 시즌1은 86%인 반면 시즌2는 5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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