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임무를 위배했을까

입력
2021.09.2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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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28일 서울 여의도 중앙보훈회관에서 열린 개발이익 환수 법제화 긴급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28일 서울 여의도 중앙보훈회관에서 열린 개발이익 환수 법제화 긴급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배임(背任)은 지극히 법률적인 용어다.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으면 평생 사용해 볼 기회조차 없는 말이다. 이런 생소한 단어가 요즘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임무를 위배했는지를 두고 정치판에서 사생결단 승부가 펼쳐지고 있는 탓이다.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을 두고 한쪽에선 개발 이익을 환수한 모범 사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선 임무를 위배해 성남시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몰아붙이고 있다.

과연 누구 말이 맞는 걸까. 형법 제355조 2항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득을 취하거나 조직에 손해를 가하면 배임죄로 처벌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업 경영진이나 고위 공직자가 의사결정을 제대로 했는지 평가해 죄를 묻겠다는 취지다.

제품을 지나치게 싸게 팔거나 재료를 비싸게 사들여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면 배임이다. 부실회사를 지원하려고 우량 계열사를 희생시키거나 영업비밀을 빼돌려도 배임이다.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게 배임죄가 주는 묵직함이다.

문제는 의사결정은 주관적 성격이 강해 잘잘못을 판단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선원 구출작전을 지휘해 ‘아덴만 영웅’으로 불렸던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은 과거 배임 혐의로 기소돼 고초를 겪은 적이 있다. 당시 해군 상관에게 잘 보여 승진하려고 상관이 관련된 업체에 납품권을 줬다는 혐의였다. 그러나 배임 행위의 명백한 동기가 없다며 무죄가 선고됐다.

정연주 방송통신심의위원장도 KBS 사장 시절 내린 의사결정으로 법정에 서야 했다. KBS는 법원의 조정 권고를 받아들여 법인세 일부를 환급받고 국세청과의 소송을 마무리했는데, 검찰은 조정을 받아들인 정 사장 판단을 KBS에 손해를 끼친 행위로 해석했다. 사장 연임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려고 조정을 받아들였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범행 동기를 입증할 증거가 없어 역시 무죄가 선고됐다.

이처럼 의사결정을 하게 된 내적 동기로 범죄 유무를 판단하는 탓에 배임죄는 ‘걸면 걸리는 죄’ 또는 ‘속을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죄’로 인식돼왔다.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도 객관적 증거를 놓고 다투기보다는 나쁜 의도가 있었느냐를 두고 공방을 벌인다. 대기업 오너와 경영진들이 배임죄로 처벌받는 것도 의도가 불순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물론 반대 경우도 있다. 정연주 위원장과 황기철 처장은 ‘연임’과 ‘승진’이라는 나쁜 의도를 가진 것으로 의심받았지만 혐의를 벗었다.

배임죄 폐지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누군가의 속마음을 읽어야 하는 수사가 또 시작됐다. 야당은 28일 대장동 개발 민간 사업자로 화천대유가 선정되도록 특혜를 주고 막대한 이익을 몰아줘 성남시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며 이재명 경기지사를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사업 결과만 놓고 보면 임무를 위배했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민영개발로는 어림도 없을 5,500억 원이나 환수했다고 이 지사는 강조하지만, 야당은 초과 수익 확보 기회를 이 지사가 포기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장동 사업을 추진한 이 지사 마음속에는 불순한 의도가 있었을까. 답은 정해져 있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절반은 수긍하지 않고 논란만 커질 것이다. 배임죄 자체가 태생적으로 모호한 탓이다. 이번엔 정치적 색깔까지 덧씌워질 것이기에 그나마 갖춘 법률적 외피마저 벗겨질 것 같다.



강철원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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