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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10년 주기설

입력
2021.09.17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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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외에 리더십도 10년마다 교체??
고구마 소통 10년, 민주화 체제 쇠퇴?
정권 교체 대신 시대 전환이 과제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18대 대선에 출마했던 대선 후보들의 TV 광고 화면 모습.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위)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한국일보 자료사진

18대 대선에 출마했던 대선 후보들의 TV 광고 화면 모습.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위)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치권에서 가장 흔한 정권 교체 가설은 10년 주기설이다. 보수와 진보가 10년마다 정권을 교체한다는 것으로 민주화 이후 정부를 보면 틀리지 않았다. 10년 주기설이 이번에도 통하면 더불어민주당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 10년 주기를 정당이 아니라 리더십 유형의 교체로 보면 어떨까. 이를테면 ①김영삼(YS)·김대중(DJ) 10년 ②노무현·이명박 10년 ③ 박근혜·문재인 10년으로 시기를 구분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짝을 지어 10년을 나누는 것은 이 시기의 대통령들이 진영은 다르지만 비슷한 특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YS와 DJ야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는 민주화 운동 시대의 라이벌이다. 두 지도자는 지역주의 정치에 발목이 잡히긴 했으나 군부 권위주의 체제를 해체하고 사회 전반에 민주주의 제도를 안착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시기적으로 보면 '1987년 민주화 체제의 개화기'였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과 이명박은 모두 상고 출신의 자수성가형 리더였다. 그들의 인생 역정 자체가 민주화 세대와 산업화 세대의 역사와 가치를 품고 있었다. 두 대통령이 각각 진보와 보수를 대변했으나 집권 이후 실용주의를 표방한 것도 특징적 면모다. 물론 이념적 틀과 진영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민주화 이후 심화되기 시작한 사회 경제적 양극화 문제에 대해 진보와 보수 나름대로 실용적으로 대응하려 노력했던 시기였다. 87년 체제의 도전기라고 할 만하다.

박근혜와 문재인은 박정희의 딸, 또 노무현의 친구라는 정치적 후광으로 정계에 진출해 대통령까지 올랐다. 두 지도자 모두 내향적이고 과묵한 반면, 지지자들은 극성이었다. 실용주의보다는 진영의 정체성을 강조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공통점이다. 하지만 이 기간 사회 경제적 양극화는 고착화됐고 정치 진영 간 갈등과 대립은 더욱 심화됐다. '내로남불'의 진영주의가 어느 한 진영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두 대통령이 박정희나 노무현의 리더십을 넘어섰다고 볼 수도 없다. 이후의 역사적 평가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이 10년은 87년 체제의 쇠퇴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87년 체제의 가장 큰 정치적 특징은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경쟁이었다. 하지만 이 두 축 자체가 희미해진 게 역으로 보면 이 체제가 저물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를테면 지금은 어느 쪽이 보수와 진보, 수구와 개혁인지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대선 정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2030세대 지지를 바탕으로 확장성을 내세우는 반면,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을 수사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0대 이상 보수층에서 견고한 지지를 받고 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정치적 연합과 연대가 다반사로 이뤄진다. 일대 혼종과 착종의 시기다.

10년 주기설을 이런 식으로 보면, 정권 재창출 또는 정권 교체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87년 민주화 체제가 개화기와 도전기를 거쳐 쇠퇴 국면으로 치달으면서 시스템 곳곳에서 파열음이 터져 나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시대 전환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의 교체가 요구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대선 레이스의 유력 주자들이 이런 시대적 과제를 감당할 역량을 갖추고 있는 것일까. 표면적으로 보면 박근혜·문재인 대통령의 고구마식 소통 스타일이 10년간 지속돼, 향후 10년은 사이다 스타일의 지도자가 나올 차례다. 하지만 그간 누적돼 왔던 빈부 격차를 비롯해 계층 및 세대 간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향후 10년은 시대 전환기가 아니라 87년 체제의 암흑기 또는 대혼란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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