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재능의 비범함

입력
2021.09.18 00:00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3일 안동대를 방문해 학생들과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살다 보면 망언을 할 수밖에 없다. 인생은 길고 할 말은 많으며 주의 자원은 한정적이다. 그래도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민망함을 느끼고 스스로 주의하게 마련이라고 믿는다. 일반적으로는. 그래서 그 빈도가 잦지 않다면야 이상한 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가급적 관대해지려고 한다.

그런데 윤석열 대선 경선후보가 끝없이 하고 있는 발언들에 그런 관대함을 적용하기가 힘들다. 망언이 지나치게 잦고 비범하기 때문이다. 가장 깊은 인상을 줬던 그의 발언은 주 120시간 노동의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발언을 처음 들었을 때 대뇌 신피질에 벼락이 치는 느낌을 받았다. 보통 노동 시간 규제를 철폐하고 싶은 사람이 말할 때는 기업경쟁력에 대해 언급한다. 주 120시간 노동이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만한 발언은 1년간 다시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지난 13일 그는 안동대 학생들 앞에서 "사람이 이렇게 손발 노동으로, 그렇게 해 가지곤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건 이제 인도도 안 한다.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충격이라는 단어로는 내가 그 발언을 듣고 느낀 것을 반의 반도 표현할 수 없다. 그건 하나의 시였다. 그는 단 세 마디만으로 뒤틀린 세계관과 지독한 수준의 무심함을 효과적으로 압축해 전달하고 있었다.

'손발 노동으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은 그의 좁은 세계관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현대인으로서 무심코 소비하는 재화와 서비스에 깃들어 있는 노동이 얼마나 많을지 나는 감히 셀 수가 없다. 오늘 나는 오전 11시에 중국 가구공장 노동자들이 만든 토퍼에서 일어났다. 한국의 농부들이 기른 작물과 쌀, 호주에서 가공되고 운송된 쇠고기를 점심으로 먹었다. 식사를 하고 책 한 권을 읽었는데 그 뒤에는 책을 만드는 데 관여한 열 명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미화원들이 청소해서 깨끗한 거리를 산책했다. 하루 종일 들여다보았던 스마트폰과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컴퓨터 안에는 첨단 반도체들이 잔뜩 들어 있다.

아프리카를 '손발 노동 하는 곳' 정도로 납작하게 말하는 것도 몹시 당황스러우나, 인도와 1:1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기이하다. 아프리카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아시아 다음으로 면적이 넓은 대륙이다. 한반도가 100개도 넘게 들어갈 수 있다. 55개의 국가가 있는 그 넓은 대륙에는 수많은 민족들이 제각기 다른 문화를 영위하고 있다. 지나가는 미국인이 둘 다 아시아에 있다는 이유로 키르기스스탄과 한국을 대충 비슷한 사람들이 비슷하게 사는 곳으로 받아들인다고 상상해 보자.

여기까지 쓰고 보니 느낀 건데, 아주 자연스럽게 인도를 폄하한 것을 놓치고 말았다. 인도 이야기만 뚝 떼고 봐도 대단히 무례한 발언인데, 그 앞뒤에 있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비범해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것이다.

나는 그의 지지율이 아직도 꽤 높다는 게 무섭다. 시민 삶의 기둥이 되는 노동의 가치를 아예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아프리카라는 한 대륙을 하나의 나라쯤으로 뭉뚱그려 생각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걱정된다. 그가 다른 직종을 찾길 빌 뿐이다.



심너울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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