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 노동자로 산다는 것

입력
2021.08.14 00:00
22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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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름의 변화에 민감한 편이다. 생일이 8월 10일이어서다. 매년 내 생일 즈음 아침저녁 공기가 달라진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도 말복이었던 생일을 지나니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다행히 이렇게 여름도 끝나는 모양새다.

비록 태어난 계절이기는 하지만 나는 여름을 싫어한다. 끈적한 날씨와 잠을 설치게 하는 열대야, 온갖 벌레들까지. 가장 싫은 순간은 음식물쓰레기를 버릴 때다. 음식물쓰레기 통을 여는 순간, 올라오는 악취와 그 속에서 고이다 못해 누렇게 썩어버린 음폐수를 보면 그동안 먹은 음식이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느낌이다. 쓰레기를 버려도 찝찝한 기분은 남는다. 잠깐 버리는 순간도 그렇게 고통스러운데, 그걸 매일 같이 수거해야 하는 환경미화원분들의 고충은 오죽할까 싶다. 실제로 여름철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하는 미화원들은 악취로 코가 마비되고, 고된 노동에 탈진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그마저도 휴게공간이 부족해 길바닥에서 휴식을 취한다. “냄새나니까 빨리 치우라”는 일부 주민들의 멸시는 지친 몸을 더욱 무겁게 한다.

어디 환경미화원뿐이랴. 여름은 일하는 사람들에게 너무도 괴로운 계절이다. 지난 7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회사에 혹서기 대책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였다. 열돔이 형성된 물류창고 안에서 두통, 구토, 어지럼 등 온열 질환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늘고 있음에도 회사가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200여 명이 사용하는 휴게실에는 선풍기 5대가 고작이었다.

건설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은 더 열악하다. 사람들은 건축물을 콘크리트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고층건물은 콘크리트이기 이전에 쇳덩어리다. 잠시 서 있기도 힘든 뙤약볕 아래서 달궈진 철근을 조립하는 건 보통 사람의 의지로는 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스카프와 ‘쿨토시’로 목과 팔을 무장한다고 한들 폭염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미지근한 생수와 식염포도당 몇 알로 그늘 하나 없는 건설현장에서 태양과 맞설 뿐이다.

노동자는 초인이 아니다. 최근 5년간(2016~2020년) 26명의 노동자가 여름철 온열 질환으로 사망했다. 특히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한 달 넘게 지속된 2018년에는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서울대학교에서는 2019년 에어컨도 창문도 없는 휴게실에서 쉬던 청소노동자가 숨진 적도 있다. 온열 질환으로 인한 산업재해는 매 여름 반복되었지만, 결국 바뀌는 건 없었다.

정부는 일터에서 열사병을 예방하기 위해 ‘물, 그늘, 휴식’ 등 3대 기본수칙 이행을 권고한다. 하지만 현실적 고려 없는 가이드라인이 효과 있기는 어렵다. 쉴 공간을 마련하라는 당부는 공간의 제약으로 무용지물이 되고, 무더위 시간대(오후 2~5시)에 공사를 중단하라는 지침은 공사 기간의 벽에 가로막힌다.

옛날에 ‘무한도전’에서 개그맨 박명수가 자신을 응원해달라는 고3 수험생에게 남긴 명언이 있다. “지금 공부 안 하면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한다”고. 너무 맞는 말이라 서글펐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치자. 그래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에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선 안 되는 것 아닐까. 무더운 여름이 남기고 간 숙제를, 우린 올해도 풀지 못한 채 넘어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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