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미투 원하는 심리 만연… 성폭력 피해자에겐 공포로”

입력
2021.09.16 17:00
[김희원의 질문] 박진성 시인 소송 반전 판결 이끌어낸 이은의 변호사

이은의 변호사가 14일 서울 서초동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김희원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만나 성폭력 범죄에 엄중해진 동시에 가짜 미투 의심도 커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한국의 미투 바람은 진원지인 미국보다 어쩌면 더 강하다. 성폭력에 대한 시각은 전에 없이 민감해지고 엄중해졌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검증 요구 또한 이토록 강한 때가 없다. 성폭력을 바라보는 남녀의 머나먼 간극은 젠더 간 인식 격차의 핵심이고 갈등의 근원이다. 이 혼란한 현실을 상징하는 일이 박진성 시인 사건이다. 한때 ‘가짜 미투의 희생자’ ‘성폭력 무고 피해자’로 통했던 박씨는 얼마 전 두 건의 민사소송에서 잇따라 성희롱·스토킹이 사실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2016년 10월 박씨 성폭력 첫 폭로자였던 98년생 김현진씨(5월 1,100만 원 배상 판결), 20년 전 연인관계였다고 박씨가 주장한 유진목 시인(8월 1,000만 원 배상 판결)은 피해자임을 인정받기까지 왜 이렇게 많은 비난과 고통을 감당해야 했을까. 이들을 대리한 이은의 변호사는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고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이 큰 것이 가짜 미투를 찾으려는 심리를 부추긴다”며 “피해자에게 거짓이라는 비난은 공포 자체”라고 말했다. 14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성범죄 피해자에게 씌워지는 무고의 굴레에 대해 물었다.


"가짜 미투 찾는 심리 바탕엔 사법체계 불신"

-박진성 시인은 성폭력 무고로 온갖 고통을 겪었다고 주장했고 많은 이들이 사실로 여겼다. 이제는 박씨의 거짓말이 드러나고 있지만 한동안 ‘거짓 미투의 대명사’로 꼽혔던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우선 박씨의 독특한 성향이 있겠다. 일반적인 폭력의 패턴은 상대방을 위협해 요구에 따르도록 하지만, 박씨는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죽을 거라는 자해로 귀결되는 식이라고 피해자들은 말한다. 이 때 걱정과 두려움에 등 떠밀려 원치 않는 요구에 내몰리는 이들이 있다. 선량한 마음을 이용하는 것이 온당한가. 일반적인 패턴에서 벗어나 있을 뿐 모두 폭력이다. 여느 성폭력과 다르지 않다. 피해를 호소하면 박씨는 특별한 관계였는데 관계가 틀어지자 가해자로 내몰렸다는 취지로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 상대방이 누구인지 특정하고 임의로 짜깁기한 자료들을 게시한다. 그러니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보면 성폭력 피해자에게 물음표가 생긴다. 여성들이 어리고 마음이 여려서 조심스럽게 의사소통을 했던 것들이 자칫 나중에 합의로 추단돼 유죄 입증이 어려워진다. 이런 성향의 피해자들이 고소를 한 후 무고로 맞고소를 당하니 사과·합의하게 된다. 이를 토대로 첫 언론 보도에 대해 박씨가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폭로가 모두 ‘허위’라고 단정한 판결이 2018년 7월 나오기에 이르렀다. 재판부는 소송 당사자로 참여하지도 않았던 3명의 피해 폭로 여성들에게 ‘허위’ 단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신중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기사가 명예훼손 소지가 있다고 판결하더라도 이렇게 단정적으로 쓸 일은 아니었다. 이 중 김현진씨의 폭로는 사실이었고, 나머지 2명이 무고로 기소되어 유죄가 확정된 이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에게 비난이 거세게 불어닥쳤다.

사회적으로는 가짜 미투의 증거를 원하는 심리가 있다고 하겠다. 우리 사회가 급진적으로 변하는 것 같지만 사실 사회적 합의는 느리게 온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수사와 판결이 피해자 입장에서 보다 엄중해져야 한다는 여론에 떠밀려 여기까지 왔으나 이에 대한 반발도 크다. ‘아군’을 찾던 사람들이 이 사건에 집착하면서 박씨가 주민등록증을 공개한 김씨에 대한 2차 가해가 일파만파로 커졌다. 가해자에 이입한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억울하게 성범죄로 몰릴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피해자나 그 입장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피해를 신고해도 제대로 수사되고 적확하게 처벌될 것으로 믿지 않는다. 그만큼 성폭력을 둘러싸고 우리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뜻이다. 법이 제대로 판단할 것이라는 신뢰마저 없으니 불안하고 불안을 뒷받침하는 증거로서 가짜 미투를 찾으려 한다.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과 같다. 사고사인데 경찰을 못 믿으니 의문사를 암시하는 뭐라도 나오면 믿으려 한다.”

-성범죄 가해자는 처벌을 피하려 피해자를 공격한다 쳐도 평범한 남성 다수가 동조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검찰 처분사건 통계를 보면 2018년 한 해에 성폭력 범죄로 기소된 건수가 1만4,400여 건, 성폭력 무고죄로 기소된 건수는 208건으로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억울하게 성범죄자로 몰릴까 봐 걱정하는 남성들이 꽤 많다.

“빈도는 낮지만 드러나면 충격이 커서 그럴 것이다. 평범한 사람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무고 범죄를 저질러서 돈벌이로 삼는 프로 무고러가 엄연히 존재한다. 무고를 당하는 입장의 분노도 이해한다. 또 돈이 목적이 아니라 인간 관계에서 배신감을 못 참고 무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 비록 합의추단되는 관계에 있었다고 해도 폭력적 결별 등으로 상처받으면 상대방을 처벌하고 싶어 한다. 보자기에 돈을 싸 들고 와서 ‘돈이 얼마가 들든 처벌받게 해달라’고 상담한 사람도 있었고, 성폭력 사건 1심 재판부까지 속여 피고인이 감옥에 갔는데 2심에 가서야 무고 증거가 드러난 사건도 봤다. 대개 무고 공방이 치열한 성폭력 사건은 각자 입장의 진실이 충돌하는 경우다. 어쨌거나 거짓말로 고소하면 무고다.”

"가난하고 기댈 데 없는 피해자 무고 몰리기 십상"

-실제 성폭력 피해자는 폭로나 이후 벌어질 일을 감당하기도 어려운데 거짓말이라는 비난까지 시달리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것 같다.

“피해자 입장에서 그런 악플은 그저 불쾌가 아니라 공포 자체다. 나 자신이 삼성전기 재직 중 직장 내 성희롱을 겪고 법정 싸움을 벌일 때 경험했던 일이다. 첫 기사가 나갈 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공포스러웠다. 로스쿨에 가서 변호사가 된 것도 피해를 입고 그 피해를 공론화했던 곳에서 계속 머물다가는 버티지 못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김씨는 사건이 시작된 17세부터 성희롱에, 2차 가해에, 무고 협박에 이미 너무 많이 다치고 흔들린 상태였다. 어디로 가야 하나, 무슨 돈으로 변호사를 구하나 막막한 시기를 지나고서 만났다. 파고가 높으니 절대적으로 의지하며 손잡고 나아가게 된다. 소송을 거치면서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 어리니까 더 직관적이고 투명한 측면도 있다. 오히려 의연하게 버티고 내가 힘을 얻었다. 또 문단 내 성폭력에 대한 눈물겨운 연대가 있었다. 유진목 시인이 모금의 주축이 됐다. 스스로 제일 많이 내고 연대의 깃발을 꽂았다. 승승장구한 언니들이 아니라 돈은 없지만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하는 언니들이 있었다. ‘네 나이 때는 못했는데 지금은 싸울 수 있어’라는 여성 문인들이 나섰다.

돌부터 맞고 시작한 김씨와 유씨는 소송이 전화위복이 되었지만 김씨에 대한 성희롱이 일부만 인정된 것은 아쉽다. 예를 들어 ‘빵현진 먹고 싶다’ ‘성폭행해도 안 버릴 거지’라는 카톡 문자는 인정하고, 야한 시를 보겠냐고 들이밀고 ‘키스나 섹스 해 봤어?’라고 물은 것, 김씨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로 신고하겠다고 하는데도 집요하게 사귀자고 추근댄 것은 인정하지 않았다. 미성년자에게 선생님이 보낸 이런 문자가 성희롱인지 아닌지 이해를 구해야 하는 현실이 아쉽다.”

성범죄 인식 조사


성범죄 인식 조사


성범죄 인식 조사

-성폭력 피해자가 무고로 맞고소당하는 이유나 배경이 있나.

“내가 맡았던 성폭력 사건들 중 김씨처럼 어린 나이에 우월한 지위의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한 사건들이 더러 있다. 그 피해자들이 대체로 어리고, 가난하고, 기댈 어른이 없는 이들이었다. 한부모 엄마 밑에서 어렵게 자란 유도선수 신유용씨는 검찰 진술에서 ‘왜 일찍 피해사실을 말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그는 2019년 8년 전 코치 손모씨의 성폭행을 폭로했고 손씨는 징역 6년 5개월을 받았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엄마가 혼자 남매 키우며 운동 잘하는 것 보는 게 유일한 낙인데 차마 내 일로 부담을 줄 수 없었다’며 처음으로 울었다. 나도 검사도 다 같이 울었다. 그의 엄마를 만났을 때 표정에서 딸의 피해도 미투도 몰랐고 알았어도 도와주지 못했을 거라는 미안함과 분노와 자괴감이 읽혔다.

가수 박유천씨 성폭행 피해자 A씨는 대학에 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등록금을 벌기 위해 유흥업소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한달 만에 피해를 당했다. 룸 내 화장실의 위험성을 알기 전이었고 앞서 고소한 여성이 무고와 공갈로 실형을 선고받은 상황에서 앞선 변호사들이 손을 놓아 여성단체가 나를 소개했다. 박씨가 A씨를 무고죄로 고소해 구속영장이 청구되기 열흘 전이었다(박씨는 2019년 7월 강제조정으로 5,000만 원 손해배상 명령을 받고 올 1월에야 지급했다).

유튜버 양예원씨도 옷 가게와 사진촬영 모델을 해서 번 돈으로 동생들 학원비를 내고 자기는 삼각김밥을 사먹으며 연예인 꿈을 꾸었던 사람이다. 비공개 촬영장에서 성추행 피해를 입고도 일은 해야 했고, 이미 찍힌 수위 높은 사진들이 행여 유포될까 봐 스튜디오 실장의 연락을 끊지 못했다. 오해 받을 카톡이 퍼지고 안티가 생기고 언론 대응을 해야 할 상황이 되니까 당시 변호사들이 언론 대응은 알아서 하라며 연락을 안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여기저기서 다치고 버려져서 내게 왔다(양씨가 고소한 실장은 사망했고 촬영모집책은 징역 2년 6개월을 받았다). 이들이 성폭력 피해자가 되고 피해 사실을 빨리 알리지 못하고 혼란을 겪으며 무고로 몰린 데에는 가난과 착한 마음이 있다.”

"수사기관과 법원, 성폭력 기준 명료히 세워야"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희롱을 인정한 직권조사마저 취소 소송을 당했다. 이를 토대로 보도한 기자 등에게 사자명예훼손 고소도 제기됐다. 정철승 변호사가 유족을 대리해 소송을 주도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유족이 얻을 게 무엇인지 의문이다. 박 전 시장이 자살한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라. 그가 과연 진실을 파헤친다고 들쑤시고 세간에 다시 회자되는 걸 원할까. 정 변호사 입장에선 손해 볼 게 없다. 어차피 진영에 따라 시각이 갈리는 사건이라 소송에서 어떤 결과가 나와도 기존의 믿음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정 변호사 입장에선 ‘내가 견제구를 날렸다’는 것을 진영 내에서 이미 인정받은 형국으로 보인다.”

이은의 변호사는 "사법체계가 성범죄를 적확하게 판결한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며 "수사기관과 법원이 판단기준을 명료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왕태석 선임기자

-성범죄 가해자가 사망한 경우 성범죄 자체가 부정되기 쉽고 유족도 현실을 못 받아들이는 것 같다. 얼마 전 사망한 로펌 대표변호사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서는 이의신청을 통해 경찰의 불송치 결정문을 받아 공개했는데.

“가해자가 사망한 경우 수사기관이 피해 사실을 확인해 주지 않으면 피해자가 무고 타이틀까지 갖게 된다. 그래서 피해사실이 담긴 경찰의 불송치 결정문을 받아 공개했다. 그랬기에 피해자가 비난과 의심으로 곤죽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피해 당사자가 공개하는 것은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나마 가해자가 로펌 대표변호사쯤 되니까 수사기관이 요청에 부응했을 것이다. 가해자가 유명인이든 아니든, 피해자의 사회적 지위가 높든 낮든, 고소 후 가해자가 사망하면 최소한 피해자에게는 수사 결과를 줘야 한다. 박 전 시장 사건이 다시 고소 대상이 된 데에는 정치적 이유도 있지만 수사기관이 명확히 사실관계를 밝히지 않은 책임도 있다.”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이 강화되고 실제 선고되는 형량이 과거보다 무거워지기는 했는데 사법체계의 신뢰를 어떻게 높여야 하나.

“법원이 성범죄 피해자에게 주는 자리가 넓어졌고 양형이 높아졌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변화한 정도다. 판결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고 대중의 이해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성범죄는 범죄 상황, 진술 등을 일일이 사실인지 아닌지 따지는 식으로 판단할 수 없다. 피해자 진술이라고 해서 사진 찍듯 정확할 수 있겠나. 그걸 요구하는 게 더 이상하다. 특히 상습 폭행은 피해자가 가해자와 계속 반목하지 않는다. 하나하나의 진위가 아니라 첫 피해가 일어났을 때의 진위와 상황, 첫 피해 이후 피해자가 놓인 현실적인 입장과 심리상태 등 총체적 관계를 규정하고 피해를 인정해야 한다. 사법체계가 이런 역할을 해줘야 한다. 판결문은 엄청 엄한데 벌금형을 선고하는 판사도 있고, 합리적 판결을 했지만 판결문이 추상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판결에서 이 성범죄가 왜 유죄인지, 왜 무고가 아닌지를 더 친절하게 설명하고 대중이 납득하게 하면 사람들이 억울하게 성범죄자로 몰릴까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수사기관도 가해자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으로 끝낼 게 아니라 피해사실을 확인해 줘야 한다.”

김희원 논설위원
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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