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법원장 위상… 김명수 사법부도 다르지 않다”

입력
2021.08.19 18:30
[김정곤의 노크] 성창익 민변 사법센터 소장


성창익 민변 사법센터 소장이 17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사법농단 사태에도 불구하고 사법부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김명수 사법부를 비판하고 있다. 송 소장은 "기대했던 사법 개혁은 물론 법관 충원 문제에서도 사법부는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면서 "사법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행정은 물론 재판 과정까지 외부에 문호를 크게 개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지은 인턴기자

법조계가 경력법관 임용 하한선을 두고 소란스럽다. 사법시험 폐지와 법학전문대학원 도입 이후 법원은 변호사로서 어느 정도 경험을 쌓은 경력 법조인 가운데 법관을 선발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5년인 법조 경력의 하한선을 둘러싸고 불거졌다. 내년부터는 7년 이상, 2026년부터는 10년 이상으로 높아지는 법조 경력 하한선을 두고 법원이 수급에 난색을 표시했다. 이에 국회 법사위는 최근 ‘판사는 10년 이상 법률 사무에 종사한 사람 중에서 임용한다’는 법원조직법 42조2항의 10년 기준을 5년으로 조정하는 개정안을 만들어 법안소위에서 통과시켰다. 그러자 시민사회가 ‘개혁의 후퇴’라고 발끈했다.

특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진보ㆍ개혁 법조계의 반발이 심하다. 민변은 “개정안은 다양한 경험을 가진 경력 법관을 채용해서 재판의 신뢰도를 제고한다는 당초 취지를 후퇴시키는 반개혁법”이라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민변 사법센터는 “5년 이상으로 법조경력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것은 젊은 법관을 뽑아 도제방식으로 교육시키는 과거 사법연수원 채용 시스템으로의 회귀”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민변 사법센터 소장인 성창익(51ㆍ사법연수원 24기) 변호사는 경력법관 임용제도뿐 아니라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법 개혁 전반을 비판했다. 한국일보 본사 인터뷰실에서 만난 성 변호사는 “김 대법원장 임명 당시에는 개혁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았다”면서 “4년이 지난 지금은 실현된 게 거의 없다”고 김명수 사법부에 강한 실망감을 표시했다.

"신규법관 경력 완화하면 도제식 판사 양산될 것"

-경력법관 임용 계획 변경은 무엇이 문제인가.

“애초에 10년 경력을 정한 이유가 있을 거다. 20대 초·중반 사법시험에 합격한 법관들이 경험도 일천한 상태에서 재판을 하다 보니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세상 다양한 경험을 한 법조인에게 재판을 맡겨 신뢰도를 높이자는 게 법조일원화의 취지인데, 해보지도 않고 5년으로 돌아가는 것은 개혁 취지에 어긋난다.”

-7년, 10년으로 하한선을 높이면 법관 수급에 차질이 생긴다는 게 대법원의 반론이다.

“법조 경력 하한선을 5년으로 정하는 것은 변호사 시험 5년 차 중심의 젊은 변호사를 뽑겠다는 의미다. 실제 신규로 임용되는 법관들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법원에서 선발하는 로클럭(판사실에 배속된 재판연구원)으로 2~3년, 이어 대형 로펌에서 2~3년 근무한 비슷한 경력의 변호사들이 다수다. 5년의 경력 하한선 기준을 제시하지만 평균 40대 중·후반 이상 법조인을 신규 법관으로 선발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 법원은 젊은 법조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수급 문제보다는 강도 높은 재판을 감당할 수 있는 젊은 법관을 계속 수혈하겠다는 법원의 의지가 더 큰 문제다.”

-젊은 법관들을 충원하는 것은 법조계 사이의 벽을 허물고 경험 많은 법조인을 법관으로 임용하겠다는 법조일원화 취지에도 어긋나는 것 아닌가.

“판사를 어떻게 양성하겠다는 생각에 차이가 심하다. 5년 경력을 주장하는 근저에는 옛날처럼 젊은 법관을 뽑아 도제시스템으로 양성하겠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자마자 다른 경험도 없이 판사를 하는 폐단을 없애겠다며 경력법관 또는 법조일원화 정책을 도입했는데, 지금도 로클럭과 대형로펌에서 5년 최저 경력을 맞춘 젊은 변호사 위주로 법관을 임용하고 있다. 과거 사법연수원 때랑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법관 선발 방식 자체에 문제점은 없나.

“경력법관 선발이 과거의 필기시험 중심의 제도를 탈피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로펌 변호사나 로클럭으로 근무하면서 다양한 법조 경험을 하기보다 법관 시험 준비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다양한 사회적 경험과 법조 경력을 구비한 인재를 뽑기 위해서는 새로운 선발 방식 도입이 시급하다.”

법관 임용 방식 변화


"행정처 폐지·상고심 해결 등 핵심 사법 개혁 실종"

경력법관 논란은 사법 개혁 후퇴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게 성 변호사의 주장이다. 고등부장 승진제도 폐지 등 일부 진전이 있으나 법원행정처 폐지나 폭증하는 상고심 해결, 인사제도 혁신 등 김명수 대법원장이 약속한 사법 개혁 어느 것도 성과가 없다는 것이다.

-취임 4년을 맞은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평가가 대체로 박하다. 큰 틀에서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을 잘했나.

“진보 보수 양쪽 진영 모두에서 비난을 받고 있다. 임명 당시만 해도 나름대로 사법 개혁의 그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고등부장 승진제도 폐지와 법원장 추천제 등 일부 바뀐 부분이 있지만 시민사회가 요구한 사법행정권 비대 해소나 하급심 강화 등 핵심적 기대는 실현된 게 거의 없다. 판사 임용 경력 하향이나 대법관 업무 경감 등 법원이 원하는 방향에 중점을 둔 결과로 보인다. 비대한 법원행정처나 제왕적 대법원장의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게 아쉽다.”

-일부에서는 고등부장 승진제도 폐지로 이른바 ‘웰빙 판사’들이 늘었다고 도리어 비판한다. 그만큼 재판이 지연되면서 사법 수요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지적인데.

“변호사들의 불만이 큰 부분이다. 실제 종전에는 민사재판의 경우 소장을 접수한 지 3개월 내에 변론기일이 지정되는 것이 통상적이었지만, 지금은 3개월은커녕 7, 8개월을 넘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예외적으로 행해지던 변론 재개나 선고 연기가 이제는 일상화하다 보니 재판이 2, 3년씩 늘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전에는 승진과 발탁이라는 인센티브가 있어서 야근과 주말근무를 자처하면서 신속 처리가 가능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하급심 법관 숫자를 늘리지 않고 판사 개인에게 과도한 업무를 부담시키면서 법관이 과로사하는 비극까지 발생했다. 법관 숫자를 늘리지 않는 과거 체제를 정상이라 할 수 없다.”

-폭증하는 상고심 해결도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 개혁의 일환으로 약속했다.

“상고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대법원에 개선위를 만들기는 했다. 하지만 대법원 위상은 유지하면서 업무는 경감시키는 방향으로 논의하다 보니 대법관 증원은 아예 논외로 제쳐두고 상고심사제나 고등법원 상고부 등만 테이블에 올라와 있다. 대한변협에서 설문조사를 해 보면, 상고심 재판청구권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많다. 그렇다면 상고심 사건을 줄일 게 아니라 대법관 수를 늘려야 한다. 대법관 수를 그대로 둔 채 대법관 아닌 대법원 판사를 늘린다는 복안도 거론되는데 법관의 계층화ㆍ서열화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

-상고심 해법을 논의하는 구조와 방향이 잘못됐다는 것인가.

“사법 개혁이 동력을 얻으려면 시민사회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대법원에서 방향을 설정하고 자체적으로 안건을 제시하는 형태로는 한계가 있다. 대법원이 원하는 방향의 사법 개혁은 그만큼 좁고 토대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 법원과 변호사, 학자, 시민단체 등 각계가 참여하는 사법개혁추진위를 통해 많은 성과를 냈던 참여정부 때의 경험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보수 일각에서 대법원이 우리법ㆍ국제인권연구회에 장악됐다고 비판한다. 김명수 사법부를 대법원의 다양성 측면에서 평가한다면.

“(보수의 평가는)과거 너무 엘리트법관 위주 대법관 제청에서 벗어나는 전환기의 우려일 수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우리법ㆍ국제인권법 출신만 제청한 건 아니다. 오히려 시민사회에서 보기에는 대법관 다양성을 강화하기 위해 조금 더 스펙트럼이 넓어져야 한다. 김명수 사법부에서도 여전히 고위 법관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대법관 후보를 제청할 때 10중 8, 9를 판사 출신 위주로 한다. 대법관 숫자를 늘리지 않으면 외부에 개방할 여력도 생기지 않는다.”

-대법관추천위원회의 구성에는 문제가 없나.

“대법원장이 추천위원회 구성을 좌지우지하는 구조에서는 대법관 다양성을 기대할 수 없다. 추천위원을 위촉하는 단계에서 대법원장의 영향력을 배제해야 한다. 법관대표회의나 변호사단체, 국회 등이 추천위원을 지명할 수 있도록 위원회의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재판에서 다른 대법관과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는 대법원장이 동료 대법관을 제청하는 제도 자체가 모순을 안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대법관을 독립적으로 선출하는 개헌도 고려해야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약속한 법원행정처 폐지는 왜 답보 상태인가.

“대법원장의 권한에 속하는 사법행정권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은 거 같다. 행정처가 대법원장 위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시스템이라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사법농단에 연루된 행정처 인사들이 크게 물갈이 됐지만, 사람만 바뀌었지 일사불란한 행정처 업무 방식은 크게 차이가 없다. 상명하복식 행정처 조직이 애초에 독립적 판단을 생명으로 하는 판사들과 맞지 않다. 법원 밖의 사법수요자들도 참여하는 개방적 합의제 사법행정 시스템 구조가 법관관료화를 막고 사법민주화를 앞당기는 해법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법농단에 연루된 고위 법관 일부에 대한 징계도 있었지만 유야무야된 측면도 많다. 사법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태를 맞아 대법원장이 응분의 조치를 다했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사법농단의 원인이 뭐였는지, 어떻게 재발을 방지할 것인지 등에 대한 고민 자체가 옅어진 거 같다.”

"국민참여재판 개선해서 국민편익 제고해야"

성 변호사는 고사 위기에 처한 국민참여재판의 개선책도 주문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야심 차게 도입한 제도는 실제 피고인과 재판부의 무관심 속에 점차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08년 처음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은 매년 증가세를 보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을 고비로 실시 건수가 급격히 줄었다. 일부에서는 이럴 바에는 폐지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성 변호사는 “법조일원화와 마찬가지로 축소ㆍ폐지로 갈 것이 아니라 개선책을 찾아 활성화시켜야 사법이 민주화되고 사법 수요자의 편익도 커진다”고 강조했다.

-국민참여재판 건수가 급격하게 줄고 있는 원인은 무엇인가.

“과거에는 법원마다 실적 경쟁하듯이 참여재판에 매달릴 때가 있었다. 참여재판 건수는 승진 등 보상으로도 이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피고인들이나 변호인들이 참여재판이 기대한 것 같지 않다는 이유로 신청을 기피하고, 재판부도 번거롭다는 이유로 참여재판을 배제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승진이나 발탁이 없어져 재판부 입장에서는 참여재판에 투입하는 시간과 노력을 보상받을 길이 사라지다 보니 참여재판을 굳이 선호할 이유가 없어졌다. 참여재판을 배제할 수 있는 사유가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어 재판장이 마음만 먹으면 배제할 수 있다는 제도적 한계도 분명하다. 법률상 근거를 더욱 명확히 해서 재판부의 배제 결정을 줄여가야 한다.”

-참여재판을 아예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의견도 나오는 형편이다.

“참여재판은 궁극적으로 영미의 배심원 재판으로 가는 과도기적 재판 형태다. 배심원단의 평결에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아 재판부가 만장일치 평결과 다른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사법절차에 참여함으로써 사법의 민주화를 제고하고 재판의 설득력을 높이자는 도입 취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가 있다면 개선하는 방법을 모색해야지 경력법관 논란처럼 후퇴해서는 안 된다. 재판의 객체로 취급하고 있는 국민을 사법의 주체로 참여시켜 좋은 법원을 만들어가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대법원에서도 국민참여재판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법조일원화와 마찬가지로 참여재판 역시 시민사회의 제안으로 법원이 마지못해 도입한 면이 있다. 그러다 보니 법원이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경제적 약자의 소송 비용을 지원하는 소송구조제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현상과도 다르지 않다. 번거롭고 귀찮은 걸림돌 정도로 생각하는 접근 방식 자체가 문제다. 사법행정 조직을 법원 외부로도 개방하고 재판 옴부즈맨제도를 도입하는 등 국민의 참여를 높여야 한다. 국민 편익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재판을 운영하는 법관에 대해서는 재임용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견제해야 한다. 법원 외부의 의견을 고깝게만 생각할 게 아니라 좋은 재판을 함께 만들어가는 ‘법원의 좋은 친구들’의 조언으로 생각했으면 한다.“

김정곤 논설위원
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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